[금융無知지옥] 경제가 51개주 필수 교육인 美… ‘실생활 금융 교육’ 중심 선진국들

강정아 기자 2023. 12. 3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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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중심의 금융 교육 과정 설립한 선진국들
개인금융 교육으로 사회생활 속 필요한 금융 지식 익혀

곗돈과 은행 적금이 전부였던 시절도 있었으나 지금은 스마트폰을 활용한 주식, 가상화폐 매매 등 투자처가 다양해졌다. 그만큼 금융 소비자들의 인식도 바뀌어야 하지만,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정신이 바뀌지 않았다. 돈을 다루는 장사를 가장 천한 직업으로 여기는 탓에 그간 우리 사회에서 돈에 대한 얘기는 금기시됐고 금융 교육이 전무했다. 그 결과 3대 사모펀드(라임·옵티머스·디스커버리) 및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불완전판매 논란, 라덕연 사태가 터졌다. 반복되는 금융 사고를 막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짚어봤다. [편집자주]

#미국 인디애나주의 고등학교에서는 개인금융 과목 이수가 필수다. 학점은 0.5학점으로 크지 않지만, 개인금융 과목은 일반 경제 과목보다 개인의 경제 관리에 초점을 맞춘 ‘실생활 활용’ 과목이라는 점이 눈길을 끈다. 배우는 내용은 크게 6가지로 나뉜다. ▲금융 책임과 의사결정 ▲소득과 경력의 관계 ▲계획 수립과 돈 관리 ▲신용과 부채 관리 ▲위험 관리와 보험 ▲저축과 투자 등이다. 한 사람이 살아가면서 금융 생활을 안정적으로 영위하고 돈을 모을 수 있도록 통장 개설부터 저축, 투자하는 법, 신용 관리 방법까지 체계적으로 가르친다.

프랑스의 한 중학교에서 수업이 진행 중이다. /로이터 뉴스1

학교에서는 물론 가정에서도 ‘돈’에 대한 교육이 터부시되는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과 영국 등 경제 대국은 국가가 나서서 금융 교육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미국은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를 기점으로 국민의 금융 이해력 수준을 높이는 데 드라이브를 걸었다. 영국은 금융 교육은 곧 평생 교육이라는 사회적 합의를 형성하고, 청소년에게 생활 밀착형 금융 지식을 제공하는 것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 학교서 은행 계좌 만들고 신용등급 관리법 배운다… 경제 수업 늘리는 美

미국은 2008년 금융 위기를 겪고 난 뒤 대통령 직속의 금융문맹 퇴치위원회를 만들었다. 정부가 국민들의 기초적인 금융 교육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위해서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주요 선진국의 경제교육 동향과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미국은 금융 위기를 겪으면서 본격적으로 금융 교육을 강화했다”고 평가했다.

미국 고등학교 재택 교육 용도로 제작된 개인금융 수업 표지. 해당 수업은 고등학교 선택과목 중 하나로 이수할 수 있다. /Time4Learning 캡처

미국의 주마다 개인금융 수업 방식이 다르다. 개인금융이 독립된 과목으로 있는 주가 있는가 하면, 사회·경제 과목에 포함된 경우도 있다. 텍사스주와 코네티컷주는 역사나 지리 과목에 경제학의 내용을 상당 부분 담았다. 이처럼 형식은 달라도 공통점은 있다. 주로 생활 금융 중심의 교육이라는 점이다.

주마다 금융 교육 시작 시점도 다른데, 고등학교 입학 전 금융 교육을 진행하는 주는 아이들에게 은행 계좌를 만들고 사용하는 법, 수표를 쓰는 법과 신용 등급을 관리하는 법 등을 가르친다. 일례로 미국 코네티컷주는 중학교 개인금융 교육 과정에서 저축과 투자 등 다양한 투자 전략과 신용카드 사용을 통한 부채 관리, 위험 관리 전략 수립 등을 학습한다.

그래픽=손민균

유타주는 교사가 개인금융 교육을 할 수 있도록 관련 교사 연수 비용을 별도 예산으로 책정할 수 있게 했다. 인디애나주는 독립된 개인금융 과목을 교과과정에서 0.5학점 필수 이수하도록 했다.

미국은 개인금융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경제 수업을 늘리는 추세다. 미국경제교육협의회(CEE) 콘퍼런스에 따르면 1998년 39개주가 경제 교육을 표준 교육 과정에 포함했는데, 2014년 이 수치는 51개주로 늘었다. 고등학교에서 개인금융 교육을 의무로 이수하는 주는 1998년 1개주였지만, 2018년엔 17개주로 증가했다.

◇ ‘평생 교육’ 목표로 금융 지식 강조하는 英

영국의 초중등생이 경제와 금융에 대해 공부하는 교과목은 ‘PSHE(Personal, social, health and economic education)’다. PSHE 중 금융 교육은 ‘더 넓은 세상에서 살아가기’라는 주제로 다뤄진다. 1~2학년인 KS 1과 3~6학년인 KS 2단계에선 수입과 지출 및 저축 등 기초적인 재무 교육을 받는다. 초등학교 경제 교육의 대부분은 금융 교육에 맞춰져 있다. 가정의 수입과 지출, 저축, 대출과 이자, 세금, 사업 등 일상생활에서 초등학생들이 직접 경영할 기회가 높은 현실적인 소재에 맞춰 교육한다.

그래픽=손민균

KS 3~5단계로 올라가면 진로와 직업 교육의 하나로 금융 교육을 이수한다. 학생들은 수학이나 시민교육 교과에서 이자율 등 재무적인 계산과 온라인 금융거래의 안전 문제 등의 내용을 배울 수 있다. 요약하자면 PSHE는 초중등생이 앞으로의 삶을 살아갈 때 맞닥뜨리는 현실적인 금융 문제와 이에 대처하는 법을 담은 과목이다. 이론 중심 교육의 우리나라와는 차이가 있는 것이다.

청소년뿐만 아니라 영국은 금융 교육의 대상을 전 국민으로 확대했다. 영국 근로연금부 산하 법정 기관인 자금연금청(MaPS·Money and Pension Service)은 국민의 금융 역량 제고를 위한 업무를 수행한다. 자금연금청은 ‘영국 국민 누구나 돈과 연금을 잘 이용하도록 한다’가 목표다. 자금연금청은 연금과 부채 문제 등에 대해 전화, 온라인, 프린트물 등을 활용해 직접적으로 국민들이 금융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돕는다.

자금연금청은 2030년까지▲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금융 교육 기반 개선 ▲장기 저축에 참여하는 200만명 국민 확보 ▲식품비와 청구서 비용을 신용 거래로 지출하는 국민 200만명 감소 ▲국민이 필요할 때 부채 관리 조언을 받을 수 있을 것 ▲500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퇴직 이후 삶을 위한 계획을 세우는 데 도움이 될 것 등 5가지 목표를 달성한다는 방침이다.

그래픽=손민균

이처럼 선진국들의 공통점은 금융 과목을 개설해 단독으로 금융 교육을 진행하기도 하지만, 이미 다양한 과목에 금융 지식을 융합해 가르치고 있다는 점이다. 학생들은 금융 과목을 이수하지 않더라도 수학 등 다양한 과목에서 금융 지식을 습득한다. 이를 통해 학생들이 단순히 돈, 투자, 부채의 개념 습득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향후 사회생활을 하며 마주칠 다양한 상황에서 금융 지식을 활용하는 능력을 기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금융 문맹’을 막기 위해 많은 선진국이 청소년들에게 금융 지식을 가르치고 있는 만큼, 우리나라도 정부 중심의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금융 교육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한국은 정규 교과 과정에 아직 금융 교육이 필수로 들어가 있지 않다. 금융감독원에서 생활 금융 교과서를 만드는 등 금융 교육 사업을 진행 중이지만 정규 과목이 아닌 만큼 실제 교육 현장에 적용되기엔 한계가 있다.

한국금융교육학회 이사인 김재근 대구교대 교수는 “미국도 교육 표준이 있고, 캐나다도 금융 교육 전략이라고 해 국가적 전략으로 금융 교육을 추진 중”이라며 “우리나라도 금융위원회가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지만 영향력이 크게 발휘되는 상황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시민 교육 차원의 금융 교육 체계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김 교수는 “재테크, 개인의 재무 건전성 확보에서 더 나아가 넓은 의미에서 금융 교육 공동체를 생각하는 측면의 교육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이어 “아직 한국의 금융 교육은 이론적 경제학원론을 축소해 가르치는 수준이기에 먼저 실무적, 생활 중심적으로 개선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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