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 '박사장' 이선균 연기 보고 깨달은 것[이승환의 노캡]

이승환 기자 2023. 12. 3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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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조어 No cap(노캡)은 '진심이야'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지만 자본주의적인 박 사장을 어지간한 연기력으로는 소화할 수 없을 것이다.

'기생충'의 박 사장을 연기할 수 있는 배우가 얼마나 될까? 새해를 하루 앞두고 이선균의 부재가 크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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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하루 앞두고 이선균씨를 추모하며

[편집자주] 신조어 No cap(노캡)은 '진심이야'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캡은 '거짓말'을 뜻하는 은어여서 노캡은 '거짓말이 아니다'로도 해석될 수 있겠지요. 칼럼 이름에 걸맞게 진심을 다해 쓰겠습니다.

배우 이선균이 19일 오전 서울 중구 소공로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영화 ‘기생충’ 기자회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20.2.19/뉴스1 ⓒ News1 김진환 기자

(서울=뉴스1) 이승환 기자 = 선과 악이 분명한 소재를 기사로 쓰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쪽은 착하고 저쪽은 나쁘다'는 단순 논리로 쓰면 되기 때문이다. 어려운 기사는 선악이 모호한 소재의 기사이다. 이쪽 말도 맞는 것 같고, 저쪽 얘기도 수긍할 만할 때이다.

역설적으로 기자의 내공은 이런 '회색지대'를 보도할 때 드러난다. 회색지대에 숨겨진 사회 구조적 문제를 취재해 설득력 있고 촘촘하게 쓰기는 참으로 쉽지 않다는 의미다.

◇'권선징악' 클리셰 뒤집는 연기

영화 '기생충'에서 고(故) 이선균이 연기한 '박 사장'은 선과 악이 불분명한 캐릭터다. 그래서 고난도 연기력이 필요한 배역이었다. 이 영화는 '부자는 나쁘고 가난한 자는 착하다'는 클리셰를 다소 비틀고 뒤집는데, 박 사장은 부유층임에도 주변에 호감을 줄 만큼 신사적이고 얼핏 순수해 보인다.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 최고경영자(CEO)인 박 사장은 평소 운전수 기택(송강호 분)을 깍듯하고 친절하게 대한다. 하지만 선을 넘을 듯, 말 듯 한 기택의 아슬아슬한 언행에 내심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반지하에 사는 기택의 '냄새'에 남몰래 혐오감도 품고 있다. 박사장은 상류층 또는 자본가를, 기택은 하류층 또는 노동자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요컨대 기생충은 우리 현실의 계급 문제를 상징과 풍자로 표현한 영화이다. 회색지대가 많아 단순히 '선악' 문제로 판단할 수 없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를 촘촘하게 보여준다. 지난 2020년 10월 '기생충'은 비영어권 영화로는 처음으로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했다.

개인적으로 박 사장을 연기한 이선균이 가장 돋보였다. 해외 언론도 '기생충의 그 배우'라고 이선균을 호명·호평했다. 박 사장은 권선징악 클리셰를 거부한 봉준호 감독의 연출 의도가 집중 반영된 인물이다.

"돈은 구김살도 펴준다"는 영화의 핵심 메시지이자 대사에 관객이 공감할 수 있도록 연기해야 하는 배역이었다.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지만 자본주의적인 박 사장을 어지간한 연기력으로는 소화할 수 없을 것이다. 무명 배우로 시작해 '기생충의 배우'라는 세계적인 타이틀을 얻은 24년차 배우 이선균의 내공에 힘입어 탄생한 인물이다.

최근 만난 영화감독 출신의 문화예술 관계자는 이런 말도 했다.

"영화판에서 대체하기 힘든 배우 두 사람이 이선균과 김주혁이다. 이들은 주조연급 인물을 맡아 본인 스스로 빛나면서도 주연의 연기를 빛나게 해준다. '기생충'에서 기택을 연기한 주연 송강호를 빛나게 해주는 지분 중 상당 부분은 그의 카운터 파트너인 박사장으로 열연한 이선균이 갖고 있다."

김주혁은 2017년 10월30일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고, 이선균은 2023년 12월27일 안타까운 선택으로 세상을 등졌다.

특히 이씨의 수사 상황을 흘렸다는 의혹을 받는 경찰, 사생활과 가짜뉴스를 생중계하듯 방송한 유튜버 같은 콘텐츠 생산자는 이씨를 비극으로 내몰았는 비판에 휩싸였다. 경찰을 출입하는 필자도 이씨의 마약 투약 혐의 건을 담당하지는 않았지만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박 사장' 연기할 배우 얼마나 될까

나이를 먹을수록 세상을 선과 악의 기준으로 판단해서도, 이념과 진영을 기준으로 재단해서도 안 된다는 생각을 한다. 사회 곳곳에는 회색지대가 더 많기 때문이다. 판단 자체도 어렵고, 기사 쓰기도 점점 어려워진다.

이렇게 혼란스러울 때마다 박 사장이 나오는 기생충을 보며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꼈던 것 같다. 그리스 단어 카타르시스는 관객이 창작물인 비극을 보고 연민과 공포에 사로잡히다가 마음을 정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기생충'의 박 사장을 연기할 수 있는 배우가 얼마나 될까? 새해를 하루 앞두고 이선균의 부재가 크게 느껴진다. 고인이 편히 잠들길 바라며 유가족에게 진심으로 위로의 말을 전한다.

이승환 시회부 사건팀장

mrle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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