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내 휴대폰, 베트남에?…해외로 팔아넘긴 '배과장' 딱 걸렸다
[편집자주] [편집자 주] 한 번 걸리면 끝까지 간다. 한국에서 한 해 검거되는 범죄 사건은 113만건(2021년 기준). 사라진 범죄자를 잡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이 시대의 진정한 경찰 베테랑을 만났다.
"장물업자가 잡혀 들어가야 (재범) 유혹에 빠지지 않을 테니 제가 알고 있는 정보 다 드릴게요."
지난 1월 지하철 '부축빼기범' A씨가 경찰에 붙잡혔다. 부축빼기란 술 취한 사람을 부축해주는 척 접근해 주머니에 든 물건을 훔쳐가는 범행 수법이다. 서울경찰청 지하철경찰대(지하철경찰대) 수사계장 김기창 경정(48)의 끈질긴 설득 끝에 A씨는 부축빼기범과 장물업자, 해외 밀반출 점조직으로 이어지는 범행 구조에 대해 털어놨다.
김 경정이 지하철경찰대에 부임한 2021년 지하철 경찰대는 부축빼기범을 현장에서 검거하는 데 집중했다. 그런데 부축빼기범을 수없이 검거해도 비슷한 사건이 계속 일어났다. 이에 김 경장과 동료들은 부축빼기범이 훔친 물건을 사들이는 장물업자까지 소탕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지하철 승객들이 도난당한 휴대폰의 최종 기지국 위치와 절도범들의 이동 동선 등을 분석한 결과 장물 거래가 서울지하철 1호선 동묘앞역 인근에서 주로 이뤄진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A씨가 제공한 첩보와도 일치하는 내용이었다. 또 일명 '배 과장'이라 불리는 베트남 국적의 B씨가 수도권 일대에서 장물을 많이 거둬들인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A씨가 B씨와 장물을 거래했다던 현장과 주변 CCTV(폐쇄회로TV)를 찾아 분석하고 수사를 이어가던 중 배 과장으로 추정되는 인물과 그가 이용하는 차량 번호, 주거지 2곳을 특정할 수 있었다.
당장 B씨를 붙잡을 수도 있었지만 증거부터 확보하는 것이 중요했다. 부축빼기범과 장물업자가 정말 훔친 휴대전화를 거래하는지가 입증돼야 했다. 이를 위해 배 과장으로 추정되는 인물의 주거지 앞에서 잠복하며 미행했다. 보름에 걸쳐 B씨를 따라다닌 결과 평일 낮에는 주거지 2곳을 오가며 머물고 밤 11시쯤 차를 타고 나가 새벽 4시쯤 집에 돌아오는 것으로 파악됐다.
B씨는 밤에 나가 서울 마포구, 강남구 등을 차량으로 돌면서 절도범 3~4명으로부터 장물 휴대폰을 수거한 뒤 귀가했다. 부축빼기범들은 절도한 당일이나 이튿날 아침 빨리 장물업자에게 훔친 휴대폰을 넘겼다. 혹여나 경찰에게 꼬리를 잡힐까 염려해서다.
거래는 새벽 시간대에 주로 이뤄졌고 장물 거래 후 3~4일이 지나면 도난당한 휴대폰은 해외로 밀반출됐다. 정상적인 휴대폰 택배 속에 장물을 끼워 넣거나 보따리상을 이용해 훔친 휴대폰을 해외로 보냈다.
경찰은 B씨가 차 안에서 도난 휴대폰을 거래하는 모습을 몰래 사진으로 촬영해 증거를 남겼다. 약 2개월에 걸친 수사 끝에 B씨를 검거할 날짜를 정했다. 형사 15명을 현장에 미리 배치하고 주거지 인근에서 B씨를 체포했다. B씨와 거래한 부축빼기범과 장물업자를 비롯해 B씨의 지시로 베트남 등 해외로 도난 휴대폰을 밀반출한 보따리상 등 총 15명을 순차적으로 검거했다. 이 중 8명은 구속상태로 재판에 넘겨졌다.
B씨는 2021년 7월부터 지난 3월5일까지 약 1년7개월간 도난 휴대폰을 대당 20만~110만원에 매입해 베트남으로 밀반출하고 1800만원의 이익을 얻은 것으로 조사됐다. 그는 경찰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사촌 동생의 명의로 차량을 계약하고 대포통장과 대포폰을 사용하기도 했다. 경찰 조사 과정에서 진술을 거부했지만 김 경정과 동료들이 미행과 잠복을 거듭하며 남겨놓은 증거 덕에 어려움 없이 구속할 수 있었다.
김 경정은 3년째 지하철경찰대 수사계장으로 일하고 있다. 26년 전 경찰의 길로 들어선 그는 형사, 수사, 과학수사 등 분야에서 15년간 실무경험을 쌓았다. 지하철경찰대에 온 뒤로는 지하철 범죄 판례 연구회를 만들어 지하철 범죄를 분석하고 인지·추적 수사전담반을 운영해 지하철 범죄 수사에 전문성을 더하는 데 일조했다. 또 수법 범죄 데이터를 수집해 이를 바탕으로 수사를 진행한 결과 지난해에 비해 2배가 넘는 검거율을 기록했다. 지난해 검거된 부축빼기범과 장물범은 각각 13명과 5명이었지만 올해는 30명과 15명으로 그 수가 대폭 늘었다.
김 경정은 "앞으로도 지하철경찰대가 서울시민의 발이 돼 운행 중인 지하철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최지은 기자 choiji@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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