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의 잔영 "원조 맛집 쌀국수에 고수를 너무 많이 넣었네"

홍수민 기자 2023. 12. 30.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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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는 맛있지만 최적화, 프레임 드롭 등 해결할 숙제 여전히 존재
- 이 리뷰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창세기전: 회색의 잔영' 체험판은 창세기전 시리즈가 리메이크된다는 소식을 듣고 한껏 기대에 부풀었던 이용자들에게 시원하게 찬물을 끼얹었다. 기자 역시 창세기전 3를 재밌게 플레이했던 사람으로서, 체험판을 플레이한 뒤 기대를 내려놓았다.

미디어 인터뷰에서 "체험판은 2월 빌드이며, 데이원 패치가 적용된 제품판은 이보다 훨씬 나을 것이다"라는 말도 듣고, 직접 시연 버전을 플레이해봤다. 내심 "분명 선녀가 되긴 했는데… 이 정도는 요즘 출시되는 게임이라면 기본적 수준 아닌가"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여전히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초조하게 창세기전: 회색의 잔영의 정식 출시를 기다렸다. 마침 발매일이 크리스마스 연휴를 앞둔 22일이라 플레이할 시간도 충분했다. 연휴 내내 열심히 플레이했고, 약 70여 시간 만에 엔딩을 봤다.

그래서 어땠냐고? 향신료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기자 쌀국수에 그릇에 누군가 고수를 왕창 넣어버린 것 같았다. 달리 설명하자면 "나름 할 만한 게임이지만 단점이 뚜렷하다"고 할 수 있겠다.

 

장르: SRPG



출시일: 2023년 12월 22일



개발사: 라인게임즈



플랫폼: 스위치



■ 체험판보다는 선녀지만 여전히 아쉬운 그래픽

- 초필살기 중 가장 공들인 듯한 그 분의 아수라파천무

체험판을 이미 플레이한 사람이라면 그래픽 자체에는 별 기대가 없었을 것이다. 아무리 체험판이 2월 빌드였다지만, 고작 10개월 만에 모델링을 전부 갈아엎고 환골탈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체험판에 비하면 제품판 그래픽은 훨씬 깔끔하고 선명해졌다. 월드맵의 구름도 더 이상 깨지지 않으며, 컷신의 카메라 워크 역시 역동적으로 바뀌었다. 각 캐릭터의 초필살기 컷신에도 거슬리는 점이 사라졌고, 연출도 화려해서 보는 맛이 있다. 눈물나던 이올린의 블리자드 스톰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다만 프레임과 최적화는 여전히 부족하다. 선명하게 옵션을 켰을 경우, 다수의 캐릭터가 참여하는 대규모 전술 전투에서 프레임 드롭 현상이 발생했다. 조작하는 캐릭터 외의 다른 캐릭터 움직임이 부자연스럽게 끊기거나 버벅대기도 했다. 그래픽을 보통으로 낮추면 해결된다지만 추후 개선이 필요한 대목이다. 

- 비장한 장면인데 표정이 변하지 않으니 몰입을 와장창 깨버린다

3D 모델링 퀄리티야 3DS에서 스위치로 전환한 개발 과정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지만, 대사 창의 일러스트가 미동도 없는 점은 여러모로 아쉽다. 대부분의 대화가 컷신 대신 대화문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아쉬움은 더욱 도드라진다. 

창세기전: 회색의 잔영과 동일하게 고전 작품을 리메이크한 '스타 오션 더 세컨드 스토리 R'만 해도 대사에 맞춰 입을 움직이거나 표정이 변화하는 등 라이브 2D를 활용해 대화에 생동감을 불어 넣었다. 컷신이 없는 장면에서도 대화가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다.

30년 전이야 급박한 장면과 대사에서 밝은 표정의 일러스트가 출력돼도 그러려니 했지만, 2023년에 출시된 게임이라면 이런 위화감도 신경써야 했던 게 아닐까. 

 

■ 나쁘지 않은 전투와 미국 가버린 육성 자유도

- 모험 모드의 기본은 선빵 필승이다

창세기전: 회색의 잔영은 필드 탐험이 위주인 모험 모드와 대규모 전투가 메인인 전술 모드로 나뉘어진다. 모험 모드는 심볼 인카운터 방식으로 원하지 않는 전투는 피하면서 진행 가능하다. 스틱을 살짝 기울이면 리더 캐릭터가 걸어가는데, 이 때는 어그로가 덜 끌려 전투를 회피하거나 후방 선공을 잡기 쉽다.

모험 모드의 선공 어드벤티지는 일정량의 전체 대미지와 턴 우선권이다. 체험판과 달리 매우  근접하지 않는 이상 적대 개체를 인식하지 않으며, 근거리 리더 캐릭터라도 공격 범위가 넉넉해 선공을 차지하기는 어렵지 않다. 인식 후에도 한 텀 쉬고 공격하기까 피하거나 역습하기도 쉬운 편이다.

전투 시스템은 SRPG 장르의 가장 기초적인 틀만 활용했다. 지형의 고저차 등 유불리 요소가 없어 SRPG 초심자라도 어렵지 않게 적응할 수 있다. 증가한 배속과 자주 사용하는 기본 공격 탭을 바로 선택 가능하도록 한 것이 체험판 대비 가장 직접적으로 느껴진 변화였다. 

이 변화로 인해 전반적인 전투 템포가 빨라졌다. 대규모 전술 전투에서 유닛이 많아 맵이 좁게 느껴지는 것은 장점이자 단점이었는데, 초필살기를 사용해 한 방에 시원하게 밀어버리는 재미가 더 크게 느껴졌다.

- 확실히 체험판에 비해서 전투 측면은 많이 개선됐다

다만 모험 모드에서 이동 속도가 너무 느려 진행이 루즈해지고, 탐색이 가능한 필드에 정작 오브젝트가 적고 보상이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은 점은 아쉽다. 몇 번 시원치 않은 보상을 받은 이후에는 탐색 없이 목적지로만 직진했다.

스킬은 게임을 진행하며 드롭되는 강화 재료를 소모해 배울 수 있는데, 어떤 트리를 선택할 필요 없이 배운 스킬의 상위 스킬을 습득하는 방식이다. 클래스 승급 역시 단 한 번 가능하며 한정 재화인 승급 명령서가 필요해 생각보다 육성 자유도가 높지 않았다. 수많은 캐릭터가 등장하고, 이들을 한 번씩은 활용하게 되는 게임 특성을 생각하면 안타까운 점이다.

적대 AI 역시 다소 아쉽다. 전투 난이도 하락을 위해 일부러 이렇게 설정했나 싶을 정도다. 특히 바리케이트를 뚫어야 하는 전투에서 스스로 걸어 나오는 모습을 볼 때는 조금 웃겼다. 바리케이트를 활용해 전투하려 하는데 적보다 바리케이트를 우선으로 공격하는 동맹 진영 AI 역시 웃픈 한숨이 나왔다.

 

■ 스토리 원조 맛집 음식에 고수 넣은 사람 누구야

- 무도회 장면만 보면 눈물이 멈추지 않는 병에 걸렸어요

사실 원작인 창세기전 2를 플레이한 적이 없어 창세기전: 회색의 잔영이 원작에 비해 어떻게 변했는지를 구체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 창세기전 3 유저 입장에서는 익숙한 설정들이 반갑기는 했지만, 이러한 연결점으로 인해 변경된 점이 아쉬울 사람도 분명 있기는 할 터다.

창세기전: 회색의 잔영은 수많은 국가와 인물이 등장하는 군상극으로, 극을 이끌어가는 G.S와 이올린, 라시드 일행 외에도 다양한 국가와 인물의 이야기를 챕터 별로 조명한다. 30년 전 명작의 이야기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는 인터뷰를 보고 스토리를 굉장히 기대했는데, 소위 말하는 '안 본 눈' 입장에서는 꽤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원작이 고증한 스토리 자체는 몰입감이 충분했고, 등장 인물들의 발언이나 행동 역시 개연성 뇌가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방향이었다. 특히 주역인 G.S와 이올린 일행의 이야기, 각 국가의 이야기가 평행선을 그리다 교차하며 전개되는 부분이 좋았다. SRPG 장르 재미의 절반이 전투라면 절반은 스토리다. 적어도 절반은 합격점을 줄 수 있는 이유다.

- 체험판에서는 호불호가 갈릴 것 같았던 이올린 성우의 연기가 가장 좋았다

다만 이 재미있는 스토리에 흠뻑 빠지지 못하게 하는 걸림돌이 있다. 바로 아쉬운 성우 연기와 고정 일러스트다. 풀 보이스 지원은 정말 좋았지만, 빵빵한 경력의 유명 성우가 총출동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부족하게 느껴졌다.

몇몇 성우는 듣자마자 "이 사람 누구구나" 파악할 수 있는 수준인데도 동일 성우가 출연한 타 작품 대비 아쉬움을 느낄 정도였다. 이올린, G.S 등 특정 인물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인물의 전반적인 연기 톤 자체에 큰 변화가 없다. 얄팍하다고 해야 할까, 성우의 캐릭터 해석이 묻어나지 않았다.

위에서 이미 언급했지만 비장한 대사를 내뱉는데도 표정 변화가 없는 대사창 일러스트와 합쳐지니 이 단점이 더 크게 느껴졌다. 기자는 스토리에 과몰입하며 플레이하는 타입인데도 가끔 현자 타임을 겪었다. 아마 원작 스토리를 이미 알고 있는 시리즈 팬이라면 더욱 거슬릴 듯 하다.

 

■ 할 만한 게임이지만 단점 역시 뚜렷하다

- 어흑흑… 어흑흑흑… 더 잘할 수 있었잖아

재미가 없는 건 아니다. 체험판에서는 나도 모르게 눈 앞이 깜깜해졌는데, 정식 출시된 버전은 생각보다 제법 즐겁게 플레이했다.

단점을 많이 서술했지만, 워낙 기본적인 이야기 구조가 재미있다보니 아쉬움이 더 크게 느껴진다. 분명히 창세기전: 회색의 잔영은 할 만한 게임이다. 엔딩을 보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70시간 넘게 붙잡고 있을 정도의 매력은 있다.

체험판을 플레이해 본 경험이 있다면야 확실히 선녀가 됐다고 말할 법 하다. 그러나 최적화나 프레임 드롭 등 여전히 개선할 부분이 존재하며, 원작 팬 입장에서 리메이크에서 변화한 점이나 방향성이 만족스럽지 않다거나 실망스럽다는 비판 역시 충분히 나올 수 있다. 특히 엔딩에서 호불호가 많이 갈릴 것으로 보인다.

기왕 이렇게 나온 건 어쩔 수 없다. 다음 시리즈에서는 부디 이러한 단점을 잘 개선해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길 바란다. 기존 시리즈의 팬들은 '그냥저냥 할 만한 평작 게임'이 아니라, 세월이 흐르며 깊어진 내 애정처럼 '원작 그 이상으로 잘 만들어진 게임'을 원하기 마련이다.

장점

1. 군상극임에도 자연스럽게 몰입할 수 있는 매력적인 인물들과 스토리



2. 풀 보이스 지원



3. 진입 장벽 높지 않은 전투 시스템



단점

1. 요즘 게임치고는 아쉬운 그래픽과 변화 없는 일러스트



2. 몇몇 인물 제외하고는 평이한 톤의 성우 연기



3. 프레임 드롭 및 최적화 문제



 

suminh@gameto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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