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서비스원 위기, 사회적 돌봄의 백래시다

한겨레21 2023. 12. 30.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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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 기고][연속기고―돌봄노동과 서울시사회서비스원 ⑥ 초고령사회의 돌봄] 시장에 맡겨진 돌봄을 방치할 것인가
인천의 한 방문요양보호사가 2022년 1월21일 오전 허리 수술로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의 재활운동을 자택에서 돕고 있다. 한겨레 김혜윤 기자

모두가 돌봄 위기를 이야기한다. 물론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2025년이면 우리나라는 전체 인구에서 노인이 차지하는 비율이 20% 이상인 초고령사회에 이르는데, 당장 2024년이면 65살 이상이 1천만 명에 이를 정도로 노인인구 증가율은 가히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 와중에 출생률은 2022년 합계출산율 기준 0.78명이고, 2023년 분기별 출생통계를 보면 2023년 합계출산율은 0.6명대를 기록할 수도 있다는 전망이다.

이와 같은 우리나라 인구구조 변화는 돌봄 위기와 밀접하게 연관됐다. 노인인구 증가는 베이비붐 세대(전후(戰後) 세대로 1955~1963년 출생자)가 노인인구층으로 진입하며 생기는 어찌 보면 불가피한 현상이다. 다만 출생률이 역대 최저 수준으로 이어지지만 않았더라면 이렇게까지 빠른 고령화 속도는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노인인구 비율 증가는 당연히 돌봄·의료 측면에서 사회적 부담을 가중한다.

지역사회에서 나이 들기, 돌봄 받기

현대 복지국가 대부분이 우리만큼은 아니지만 심각한 수준의 인구 위기를 앞서 경험했고, 그 대응으로 전통적 모형인 여성이 선두에 서는 가족 내 돌봄 전담 방식을 폐기하고 보육, 방과 후 돌봄, 요양, 장애인 활동지원 등 주요 영역에서 공공이 선두에 서는 사회적 돌봄 방식으로 대체하는 제도화 과정을 빠르게 진행했다. 제4차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저출산·고령화에 대한 정책적 대응 관점을 기존 출산율 제고를 중심에 둔 접근에서 사회정책을 중심으로 하는 개인 삶의 질 제고에 초점을 맞추기로 한 결정은 이런 문제인식에 기반을 둔 것이다.

문제는 우리 사회가 어떤 사회적 돌봄으로 이 위기에 대응할 것인가이다. 우선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사회적 돌봄은 지역사회 중심이어야 한다. 여기서 지역사회는 주민에게 익숙한 공간으로서 지역사회이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 별도의 시설이 아닌 주민의 주거지를 포함하는 지역사회이기도 하다. 집단 거주시설 방식의 돌봄시설에서 발생하는 비인권적 상황이나 사건·사고의 문제는 코로나19 시기에 이미 많이 알려졌다. 이런 맥락에서 서구 중심으로 장애인인권운동 흐름에서 탈시설화가 지니는 의미는 그 자체로도 중요하다. 지금 논의하려는 지역사회에서의 돌봄, 즉 커뮤니티 케어 역시 탈시설화를 주요 내용으로 포함하고, 이를 넘어 ‘지역사회에서 나이 들기’(Aging in place), ‘지역사회에서 돌봄 받기’(Caring in place)로 그 개념을 확장한다.

우리나라에서 지역사회 돌봄 확장의 필요성을 보여주는 주요한 통계 중 하나가 ‘임종 장소’ 관련 통계다.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우리나라 노인이 선호하는 임종 장소 1위는 ‘자택’이지만, 통계청이 발표한 2022년 통계를 보면 65살 이상 노인 사망자 100명 중 76명은 집이 아닌 의료기관에서 사망했다. 여러 제도적 요소가 얽혔지만, 기본적으로 병원이나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 살면서 필요한 돌봄과 요양을 받으며 일상성을 유지할 수 있는 조건과 환경이 갖춰지지 않은 것이 중요한 이유일 듯싶다.

‘최소한으로 적정화된 질’만 추구하다보니

나이를 막론하고 존엄한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라면 자기에게 익숙한 공간에서, 자기에게 익숙한 환경을 느끼며, 자기에게 익숙한 관계를 마주하면서 그 소중한 일상을 유지하기를 기대한다. 일상 유지를 위해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해서 자기에게 익숙한 공간과 환경, 관계로부터 분리돼야 할 이유는 없으며, 그들의 존엄한 삶을 위해 지역사회에서 나이 들기와 돌봄 받기는 필수 요소 가운데 하나다. 지역사회에서 나이 들기와 돌봄 받기를 실현하는 데 필요한 것은 지역사회 곳곳에 양과 질뿐만 아니라 그 종류까지 충분한 서비스의 존재가 필수적이다.

다음으로 공공이 직접 수행하는 돌봄이어야 한다. 대략 30년 역사를 지닌 우리나라 사회적 돌봄의 제도화는 서비스 공급자 지위를 개인 등 민간이 독점하다시피 한 채 국가는 필요 비용을 지급하는 역할로 제한해온 특징이 있다. 민간 공급자 중심의 서비스 전달 체계와 이로 인한 서비스 제공 구조의 파편화와 비효율성은 우리나라 사회서비스 정책이 지닌 오래된 문제로, 현장과 학계의 많은 전문가가 한목소리로 지적하고 있다. 적잖은 사회자원을 투여하는데도 기대하는 정책목표를 달성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와 연결된 또 다른 중요한 문제가 돌봄노동에 대한 사회적 인정의 불비다. 정부가 공급비용을 규제하는 우리나라 사회서비스 상황에서 민간과 시장에 전적으로 서비스 제공이 위임되는 경우, 시장은 ‘최소한으로 적정화된 질’을 유지하면서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를 위해 서비스 제공 주체(개인·영리·비영리 등)가 취하는 전술은 매우 제한적이고, 대부분 비용절감 수단으로 서비스 제공자의 노동조건을 악화하는 경향이 있다.

결과적으로 돌봄노동자의 노동조건은 지속적으로 열악한 상황을 면치 못했고, 이 상황에서는 양질의 돌봄노동자를 유인하기 어려움에 따라 이는 다시 서비스 질 악화로 이어진다. 그나마 돌봄노동에 대해 적절한 수준의 사회적 인정을 확보하고, 공급구조에서의 파편성과 비효율성을 극복하기 위해 공공이 돌봄서비스 제공 주도자로 나서는 것은 최소한의 필요조건이다. 사회서비스원은 이런 맥락에서 제기된 제도적 시도였고, 현재 진행되는 사회서비스원의 위기는 공공 중심의 사회서비스 공급체계를 구축하려는 시도에 대해 전형적인 백래시(반발)와 다름없다.

우리를 ‘식인 자본주의’의 수탈자로 만들 셈인가

오랜 논의와 실험을 거쳐 설립한 사회서비스원과 같은 공공돌봄체계를 형해화하는 와중에, 한편에서는 빠르게 늘어나는 돌봄서비스 인력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제3세계 이주노동자를 활용한다는 계획을 서울시 등 일부 지방자치단체뿐만 아니라 중앙정부조차 공공연히 밝히고 있다. 돌봄정책을 돌봄관계의 이해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비용 중심으로 생각하는 천박한 인식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접근이다. 미국의 정치철학자 낸시 프레이저는 한 사회의 유지와 재생산을 위해 세계체제 주변부의 인적·물적 자원을 빨아들이는 행위를 이른바 ‘식인 자본주의’(Cannibal Capitalism)의 수탈 행위로 개념화한 바 있다. 그저 믿고 맡길 수 있는 돌봄이 필요한 우리 사회 소박한 주민 모두를 식인 자본주의의 기괴한 수탈자로 만들 셈인가?

김진석 서울여대 교수·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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