닛토덴코, 이런 '먹튀기업'은 또 없었다
연말이 다가오면 무언가 마무리를 지어야 한다는 생각에 조바심이 일어 더 바쁘다.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이하 한국옵티칼지회) 조합원들은 재판부의 가처분 결정을 앞두고 있어 그 대책을 마련하느라 실제로 몸과 마음이 더욱 바쁘고 속이 타들어 가고 있다.
지난 12월 28일 서울 영등포에 위치한 비정규직노동자 쉼터 꿀잠에서 한국옵티칼지회 조합원들과 20여 명의 활동가들이 모여 간담회 자리를 가졌다. 함께 자리한 배태선 민주노총 경북본부 교육국장은 "투쟁이 막히고 답답할 때에는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 좋겠다고 늘 생각했다."라며 간담회 취지를 설명했다. 이어서 최현환 한국옵티칼지회 지회장은 "승리를 향한 투쟁의 방향성을 토론하고 의견을 모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2022년 10월, 구미에 있는 한국옵티칼하이테크(이하 한국옵티칼) 공장에 불이 나자 닛토덴코는 공장 청산 수순을 밟기 시작했다. 지회는 화재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것을 사측에 요했지만 사측은 이에 응하지 않고 한 달 만에 문자로 청산을 통보해 왔다. 닛토덴코는 한국옵티칼 지분 백퍼센트를 갖고 있는 일본 기업이다. 한국옵티칼은 LG디스플레이에 편광필름을 납품해 왔으며, 총 220억 원을 투자해 2004년 문을 연 이후 18년이 지난 2021년까지 총 7조 7102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화재가 발생하자 한국옵티칼은 1300억 원의 화재보험금도 챙겼다. 이 금액은 불탄 공장을 다시 세우고도 남는 액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측은 노동자의 일터를 하루아침에 빼앗으며 노동자의 삶을 짓밟았다. 지회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어 철거를 반대하며 공장을 지키고 있다. 공장 재건이 어렵다면 평택 공장으로의 노동 승계를 요구하지만 이조차도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그러자 사측은 공장철거방해금지가처분 신청을 냈고 12월 말 또는 1월 중에 재판부가 이에 대해 결정할 예정이다. 재판부가 사측의 가처분 신청을 승인할 경우 공장 철거, 경매와 같은 강제집행이 빠르게 진행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이행강제금이 부과될 수 있으며 이는 손배가압류처럼 노동자는 물론이고 그 가족들까지도 극단으로 모는 탄압이 될 수 있다.
차곡차곡 준비된 먹튀
닛토덴코는 구미의 한국옵티칼 외에 평택에도 공장을 두고 있다. 평택 공장의 이름은 한국니토옵티칼(이하 니토옵티칼)이다. 한국옵티칼이 LG디스플레이의 납품을 맡았던 반면 니토옵티칼은 삼성으로의 납품을 맡아 왔다. 현재 니토옵티칼은 구미에서 생산했던 LG디스플레이의 물량까지 생산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2023년 9월에 30명을 신규로 채용했다. 그러면서 노동 승계를 요구하는 한국옵티칼 조합원 11명의 목소리는 듣지 않고 있다.
닛토덴코 입장에서는 한국옵티칼의 화재가 호재나 다름없었다. 2019년부터 LG디스플레이가 생산 거점의 상당 부분을 중국으로 옮기기 시작하자 한국옵티칼의 활용도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9년, 한국옵티칼은 처음으로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그런데 닛토덴코는 영업실적이 나빠지는 데도 불구하고 현금배당금을 늘렸다. 그러는 동안 이익잉여금은 줄었다. 1000억 원대를 유지하던 이익잉여금은 2019년 이후 10억 원 밑으로 떨어졌다. 이는 한국 정부와 구미시의 지원으로 그동안 이익을 챙길 만큼 챙긴 닛토덴코가 한국옵티칼을 언제든지 쉽게 청산할 수 있도록 몸집을 최대한 줄여놓은 것이라 볼 수 있다.
또한 닛토덴코는 한국옵티칼의 물량을 니토옵티칼로 이전할 수 있어서 더욱 쉽게 청산을 결정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는 LG디스플레이의 개입이 전혀 없었다고 볼 수 없다. 납품업체의 생산 과정은 고객사(원청사)의 양해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해 부품 공급망이 크게 불안정하게 변화된 상황에서 원청사의 공급망 관리는 중요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이에 대해 배태선 민주노총 경북본부 교육국장은 "한국옵티칼의 청산은 닛토덴코의 명백한 위장 폐업"이라고 지적했다.
조합원의 투쟁을 천 명의 투쟁, 만 명의 투쟁으로
간담회에서는 현재 한국옵티칼지회의 상황을 공유하며 앞으로의 방안에 대한 여러 이야기가 오갔다. 정은희 사회주의를향한전진 여성운동위원회 위원장은 "한국옵티칼 투쟁이 조합원들뿐 아니라 천 명의 투쟁, 만 명의 투쟁으로 나아가야 한다"며 "한국옵티칼 노동자뿐 아니라 나를 고발하고 우리를 고발하라는 사회적 선언"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명숙 인권운동 네트워크 바람 상임활동가는 "많은 사람들이 한국옵티칼이 화재를 핑계로 한국에서 철수하겠다고 하며 먹튀하는데 대안이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더불어 "한국옵티칼의 경우 니토옵티칼이 있고 실제로 그곳에서 기존 물량을 생산하고 있다는 점이 다른 먹튀기업과 다르다. 이를 널리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소현숙 한국옵티칼지회 조합원은 "예전 같으면 벌써 포기했을지도 모르는데 여러 동지들 덕분에 힘을 얻는다"고 했다. 박정혜 조합원은 "머릿속으로만 생각하는 방향이 말하고 나면 다듬어야 할 부분이 있는 것을 느낀다. 여러 이야기를 듣고 말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투쟁의 길은 정해진 것이 아무 것도 없으며 정답이랄 것도 있을 수 없다. 그래서 때로 그 길을 걷는 것이 때로 더 고단하기도 하다. 하지만 함께 길을 걷는 사람들의 소리가 있다면 힘을 낼 수 있지 않을까? 한국옵티칼지회의 발걸음에 발걸음을 얹어 주고 그 소리를 널리 알려주길 부탁드린다.
[김경미 숨쉬는책공장 공장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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