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진심이 가득 찬’ 사진 [곽윤섭의 사진 뒤집어보기]
2023년도 이제 곧 막을 내린다. 돌아보면 해마다 다사다난했고 올해도 그러했다. 슬프고 화나는 일보다 기쁘고 좋은 일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을 것인데 국내외에서 전해지는 사진을 보면 우울한 일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슬프거나 화나는 사진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서 감각이 점점 무뎌지고 있음을 느낀다. 반면에 기쁘고 즐거운 소식을 전하는 사진은 드물기 때문에 눈에 더 솔깃하게 다가온다. 기쁘거나 즐거운 사진 한장의 힘은 슬픈 사진 여러 장보다 훨씬 강하다.
사진, 특히 보도사진의 힘은 사실성에 기반을 두고 있다. 글로 소식을 전할 때는 그 안에 행여 거짓(일부러 거짓말을 하여 기만하는 경우도 있겠지만)이나 추측이 들어있지나 않을까 의심을 해보기도 하지만 보도사진은 다르다. 조작하거나 AI로 생성한 사진이 아니라면 보도사진은 실제로 일어난 일들을 전한다. 그런데 가끔 사진도 믿을 수 없는 때가 있다. 사진이 글보다 더 강력한 사실성을 담보하는 것은 맞지만 앞뒤 맥락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상태에서 불쑥 등장한 한장의 사진은 본의든, 본의가 아니든 독자들을 기만할 수도 있다. 본의를 가지고 그랬다면 범죄라고 부를 수도 있다. 그런데 본의가 아니라면…. 어떻게 봐야 할까?
2011년에 눈빛출판사에서 브레히트의 책 ‘전쟁교본’이 출간되었을 때 서평을 쓴 적이 있다. 내가 쓴 그 기사에서 재인용해왔다.
동시대를 거치면서 브레히트와 서로 지적인 영향을 주고받았으며 역시 사진에도 관심이 많았던 발터 벤야민은 그가 쓴 글 ‘생산자로서의 작가’에서 다음과 같은 요구를 했다.
“우리들이 사진작가에게 요구해야 하는 것은 사진에 글을 붙이는 능력이다. 이를 통해 사진작가는 유행을 따르는 소모품으로 전락한 사진을 구해 내 그 사진에 혁명적 사용가치를 부여하게 된다.”
그 3년 전인 1931년 브레히트는 ‘노동자-화보신문’ 창립 10주년 기념사에서 아래와 같이 썼다.
“르포사진이 눈부시게 발전했음에도 불구하고 사진술은 세상을 지배하는 상황에 대한 진실을 밝히는 데에 전혀 도움을 주지 못했다. 사진은 부르주아의 수중에서 진실에 역행하는 무서운 무기가 되었다. 매일 인쇄기가 뱉어내는 엄청난 양의 사진자료들은 진실의 성격을 띠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사실의 은폐에만 기여해왔다. 사진기 역시 타이프라이터처럼 거짓말을 할 수 있다.”
전쟁교본은 잡지나 신문에 난 전쟁 관련 사진을 스크랩해서 모았던 브레히트가 그 사진 옆에 4행시를 쓴 것을 묶은 책이다. 사진에 담겨 있는 진실을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설명이 있어야 한다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책이다. 브레히트가 책을 완성하지 못하고 세상을 뜨자 그의 곁을 지켰던 루트 베를라우가 책을 만들었고 서문도 썼다. “이 책은 사진을 해독하는 기술을 가르치려 합니다. 그 이유는 훈련받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사진 해독이 상형문자를 해독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렵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가 세심하면서도 야비한 방법으로 유지시키고 있는 사회의 연관관계에 대해 사람들은 너무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무지로 인해 잡지에 실리는 수천장의 사진은 그야말로 상형문자로 그려진 그림들이 되어 아무것도 모르는 독자들에게는 해독 불가능한 것이 되고 있습니다.”
곽윤섭의 사진 뒤집어보기는 이런 취지에서 시작한 것이다. 그렇지만 무겁지 않게 풀어나가려 한다. 무거울 수도 있는 사진은 다루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으니 ‘사진 뒤집어보기는 무거워질 수는 없을 것이다. 가끔 예외가 있겠다.
2023년에 내가 주관적으로 볼 때 기쁘거나 즐거움을 담은 사진 중에서 ‘진심이 가득 찬 사진’을 모았다. 아무 설명이 없어도 내용이 전달되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왕왕 있다. 사진을 찍은 사람의 의도와 상관이 없는 경우도 있는데 그게 보도사진에서 재미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미 소개했던 사진도 있다.
맨 위의 칠레 바다사진 사진은 12월 28일(현지시각)에 일어난 일이다. 같이 보내온 사진들을 보면 어부들이 타이어를 불태워 바리케이트를 치고 경찰은 물대포를 동원해 진압하는 등 시위가 가볍진 않다. 그런데 난데없이 바다사자 두 마리가 등장했다. 이들이 왜 여기 있는지 다른 설명은 없다. 그렇지만 실제 일어난 일이다. 이게 진심이 담긴 사진이냐고? 글쎄다.
이건 어쩌면 설명이 없어도 이해할 수 있는 사진이다. 미국의 앨리 유잉과 독일의 에스더 헨셀라이트가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쉐도우 크리크 골프장에서 열린 LPGA 매치플레이 첫날 8번 홀 벙커에서 잃어버린 공을 찾고 있다.
설명이 없다면 살짝 오해를 할 수도 있겠다. 경기 도중 태업이라고 하는 건가? 플라멩구와 크루제이루 선수들이 5월 27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마라카나 경기장에서 열린 크루제이루와의 2023 브라질 챔피언십 경기에서 브라질 축구선수 비니시우스 주니오르를 지지하는 헌사를 하는 동안 경기장에 앉아 항의표현에 동참하고 있다. 레알 마드리드의 슈퍼스타 비니시우스는 지난주 축구 경기 도중 인종차별 공격을 당했다. 관중석으로부터 ‘원숭이’라는 함성이 들려온 것이다.
설명을 봐도 이해하기 힘들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사진설명을 보면 “29일 영국 글로스터셔 브록워스에 있는 쿠퍼스 힐에서 열린 구르는 치즈 잡기 대회 남자부에서 참가자들이 언덕 아래로 굴러가고 있다.” 정확한 설명이고 아무런 거짓도 없다. 이 대회는 180미터에 달하는 언덕을 굴러내려가면서 치즈를 잡는 것이 목적이다. 딱 봐도 위험하기 짝이 없고 실제로 부상자도 많이 발생한다. 우승자에게 주어지는 것은 치즈 한 덩어리다. 그래도 대회에 참가한 사람들은 진심으로 가득차있다.
한 남자가 송골매의 새끼들이 있는 곳에 침입한 것처럼 보인다. 게다가 다 자란 성체 송골매가 옆에서 지켜보고 있다. 물론 아니다. 설명을 보면 “뉴욕시 환경보호부의 연구 과학자 크리스토퍼가 송골매 프로그램의 자원 봉사자로 참여하여 네 마리 병아리 송골매들의 다리에 식별 밴드를 끼운 뒤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이 둥지는 근처의 유지관리 직원들에게도 위험을 가하는 극도로 공격적인 새들에게 안전한 피난처를 제공하기 위해 지어졌다.”라고 되어 있다.
별다른 설명이 없어도 전달이 되고 오해할 일도 별로 없는 사진이다. 국제 요가의 날 하루 전인 20일 요가인들이 세션에 참가했다.
이 사진엔 어떤 거짓이 담겨있는가? 거짓이 담겼다면 우리를 화나게 하는가, 아닌가?
먼저 설명을 보자. “이매뉴얼 주일 미국대사가 2023년 8월 31일 일본 후쿠시마현 소마시에 위치한 후쿠시마 제1원전 방류에 대한 지지를 보여주기 위해 하마노에가 수산시장과 푸드코트를 방문해 시식하면서 엄지를 세우고 있다.” 역시 사진 자체는 합성도 아니고 실제 일어난 일이니 거짓이 들어있지 않다. 그렇지만 뒤집어봐야 보인다. 진심이 혹은 거짓이 담겼는가?
남자 102kg 급 경기에서 멕시코의 호수에 메디나가 실패하는 장면이다. 실패했지만…
“새만금신공항 백지화공동행동 회원들이 27일 국회 앞에서 새 머리 모형을 쓰고 갯벌복원 촉구 궐기 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 어쩌다 엄마 잃었니”…젖먹이 해달 알래스카서 구조 라는 제목으로 소개했던 사진이다. 새끼 해달 입장에서 보면 어미를 잃은 불쌍한 처지라서 진심 운운할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인간들이 이 해달을 돌본다는 내용을 알고 나면 다르다. “알래스카에서 영양실조 상태로 발견된 새끼 해달이 새 보금자리를 찾았다. 6일(현지시각) 에이피(AP) 통신은 시카고 쉐드 아쿠아리움에서 사육사들이 생후 8주 된 새끼 해달을 보살피고 있는 모습을 보도했다. 이 해달은 10월 말 알래스카 셀도비아에서 홀로 있는 상태로 발견되어 구조되었고 수워드에 있는 알래스카 ‘씨라이프’로 이송됐다. 이후 씨라이프의 연락을 받은 시카고 아쿠아리움 해달 팀이 긴 대륙횡단 여행을 거쳐 이 해달을 데리고 왔다.”
인생에는 리허설이 없는 것 같은데 가끔 크고 작은 행사를 앞두고 리허설을 하는 모양이다. 뉴욕 타임스퀘어에서 열린 신년 전야 리허설에 참가한 꼬마가 색종이 조각이 떨어지자 찌푸리고 있다.
중국 동부 산둥성 린이시 탄청현 관탕유치원에서 교사들이 어린이들과 함께 다가오는 새해를 맞이하기 위해 ‘안녕하세요, 2024’라는 인사말이 적힌 카드를 들고 달리고 있다.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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