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고(故) 이선균씨 사망 관련해 야권 정치인들은 이씨를 추모하면서 일제히 수사 당국을 향해 비판을 쏟아냈다. 각종 ‘사법 리스크’로 실제 수사를 받았던 당사자들이 그의 죽음을 발판 삼아 검찰과 경찰을 비난하는 모양새다.
30일 정치권에 따르면, 문재인 전 대통령은 지난 28일 페이스북을 통해 “배우 이선균님의 안타까운 죽음을 애도한다”면서 “수사기관의 수사행태와 언론의 보도 행태가 극단적 선택의 원인으로 보여 더욱 가슴 아프다”고 적었다.
문 전 대통령은 “이처럼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도록 후진적인 수사 관행과 보도 관행을 되돌아보고 벗어나는 계기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면서 “지금처럼 범죄혐의가 확인되기도 전에 피의사실이 공표되거나 언론으로 흘러나가면서 추측성 보도가 난무하고, 과도하게 포토라인에 세우는 등 명예와 인격에 큰 상처를 주어 극단적 선택으로 내모는 일은 이제 끝내야 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X(옛 트위터)에 글을 올려 “범죄로부터 국민을 지키라는 국가 수사 권력에 의해 무고한 국민이 또 희생됐다. (이씨의 죽음에) 저의 책임도 적지 않은 것 같아 마음이 참 아프다”고 남겼다. 다만 이 대표는 게시글을 올린 지 1시간여 만에 삭제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도 자신의 SNS에 “검경의 수사를 받다가 자살을 선택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남 일 같지 않다. 분노가 치민다”면서 “검찰과 경찰은 평시 기준 가장 강력한 ‘합법적 폭력’을 보유하고 행사한다. 무죄추정의 원칙? 피의자의 인권과 방어권? 법전과 교과서에만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검찰 수사를 받은 경험이 있는 다른 야권 인사들도 이씨에 대한 공감을 호소했다.
황운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28일 페이스북에 “과잉 수사, 포털 클릭 수에 노예가 된 선정적 보도가 끝내 비극을 불러왔다”며 “검사는 언론의 생리를 교묘하게 이용해 자신이 정당한 수사를 하고 있다는 여론 몰이를 한다”고 했다.
민주당 출신 윤미향 무소속 의원도 페이스북에 “생전 이씨가 수사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이미 범죄자 취급을 받았다”며 “검경은 언론 보도를 통해 대중이 그를 범죄자로 확신케 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이씨 사건은 인천경찰청 소관으로, 3차례에 걸친 이씨 조사도 인천 논현경찰서에서 이뤄졌다. 문재인 정부 때인 2021년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검찰의 마약 수사 범위가 대폭 축소되면서 ‘마약 투약’ 범죄는 검찰의 직접 수사 범위에 해당하지 않는다.
여권 “정치권, 죽음 이용해선 안 돼”
여권에서는 “안타까운 비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고 비판했다.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조용히 추모의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자. 특히 이번 사안과 상관도 없는 검찰을 끌어들여 본인이 마치 피해자인 양 코스프레하지 말라”며 “조 전 장관, 연예인의 안타까운 비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고 가슴으로 추모하자. 공인이라면 유족들과 그를 사랑했던 국민들이 조용히 추모의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자“고 밝혔다.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도 페이스북에서 “정치권은 죽음을 이용해서는 안 된다. 조 전 장관은 자중하시길 바란다“고 썼다.
그는 ”조 전 장관은 공직자로서 부당하게 처신했고 이미 일가족은 법적 처벌을 받았다. 이제는 고인이 된 배우마저 자기변명의 아이템으로 소비했다“고 비판했다. 다만 권 의원은 “인천경찰청의 과잉수사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언론도 과도한 보도를 쏟아내며 개인 명예에 치명상을 가했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진중권 광운대 교수는 28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서 ”정치인들은 이 사안에 대해 입을 닫았으면 좋겠다”고 일침했다.
진 교수는 “민주당에서 뭐라고 했나. 검찰을 못 믿으니까 수사권을 경찰에 주자고 했다”며 “그 경찰이 이런 무리한 수사를 하다가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지 않나. 그렇다면 입을 닫고 있어야 하는데 또다시 특정 집단을 공격하는 무기로 사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씨는 지난 27일 오전 서울 종로구의 한 공원 인근에 주차된 차량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는 유흥업소 여실장 A씨(29)의 주거지에서 대마초 등 여러 종류의 마약을 투약한 혐의로 입건돼 올 10월부터 총 세 차례 경찰 조사를 받았다.
이 씨는 줄곧 마약 혐의를 부인해 왔다. 이 씨는 마약 간이 시약검사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1·2차 정밀검사에서 모두 음성 판정을 받았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A씨가 나를 속이고 약을 줬다”며 “마약인 줄 몰랐다”고 주장했다. 지난 26일 세 번째 소환조사를 마치고서는 변호인을 통해 거짓말 탐지기 조사를 의뢰한다는 내용의 의견서를 경찰에 제출하기도 했다.
이 씨의 사망에 경찰은 “안타깝다”면서도 “강압 수사를 진행한 적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경찰은 이 씨 사건은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하고 남은 피의자에 대한 수사는 절차에 따라 진행할 예정이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앱,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