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계약' 다음은 '템퍼링'? 중소의 기적도 스러졌다[SE★연말결산]
'중소의 기적' 씁쓸한 말로
표준계약 시행 14년 차···제도적 보완 필요
다사다난했던 2023년 연예계, 서울경제스타가 올해 가장 뜨거웠던 이슈를 정리해드립니다.
올해는 유난히 아티스트와 소속사 간 전속 계약 갈등이 수면 위로 많이 올라왔다. 14년 전 동방신기 전 멤버 3인의 전속 계약 문제가 불거지며 '노예 계약'이라는 단어가 등장하고, 이후 연예인을 보호하는 취지의 표준 전속계약서가 마련됐지만 전속 계약 갈등은 여전히 복잡한 이해관계 아래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특히 올해는 지난 전속 계약 갈등 양상에 비해 '템퍼링'(계약 기간 중 제3자 사전 접촉)이 큰 문제로 떠올랐다.
템퍼링은 사전적으로 '간섭하다', '함부로 손대다' 등의 뜻으로 주로 농구, 야구, 축구, e스포츠 등 스포츠 업계에서 많이 쓰인다. 계약 기간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제3자가 선수에게 접근해 해당 계약을 부당하게 종료시키고, 본인의 팀과 계약 조건을 협의하거나 계약을 권유하는 행위다. 스포츠 업계에서는 이러한 템퍼링 행위가 발생할 시, 타 팀의 선수와 접촉한 팀 뿐 아니라 제3자 팀과 접촉한 선수도 기존 팀에 해당 사실을 알려야 한다는 규정이 존재한다. 기존 팀의 선수 보유권을 확보해주기 위함이다.
◇전속 계약 분쟁 단골 SM? 올해는 '봉합 성공' = 지난 6월, 인기 보이그룹 엑소(EXO)의 유닛 그룹 '첸백시'(첸·백현·시우민)가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를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첸백시 측은 SM이 2007년과 2011년 공정위로부터 받은 시정 사항인 ▲전속 기간의 계약 기간 기산점을 데뷔일로 정하는 조항 ▲동종 업계 타 연예 기획사의 전속 계약서상 계약 기간보다 지나치게 불리한 계약 기간 조항 ▲해외 진출 사유를 들어 연습생에게 연장된 계약 기간을 적용하여 연습생에게 불이익을 주는 행위가 여전히 첸백시의 계약서에 명시돼 있다고 주장했다. '노예 계약'이 아직도 SM 내에서 이어지고 있다는 것. 아울러 첸백시 측은 SM이 13년간 정산 사본 자료를 제공하지 않고, SM이 일방적으로 작성한 정산 자료만 제공했다고 주장했다.
SM은 계약서에 반박하기 대신, '템퍼링' 의혹을 꺼내 들었다. '불순한' 외부 세력이 첸백시에 접근해 SM과의 전속 계약을 무시해도 된다고 부추겼다는 것. 제3의 세력으로는 MC몽이 언급됐다. MC몽은 "개인적 친분이 있을 뿐"이라며 즉각 선을 그었다. 다행히 사건은 약 2주 만에 SM과 첸백시의 원만한 합의를 통해 무사히 봉합됐다. SM이 "제3의 외부 세력 개입에 당사가 오해한 부분이 있다"며 일부 잘못을 인정한 것. 사건이 마무리된 지 두 달 뒤인 8월에는 백현이 직접 입을 열었다. "원만한 합의를 통해 서로를 응원하고 있다"는 입장이었다.
◇'중소의 기적' 피프티 피프티, 얼룩진 미래 = 피프티 피프티(FIFTY FIFTY)는 올해 하반기 전속 계약 분쟁을 벌이며 ‘템퍼링’이란 단어를 전국민에게 알린 그룹이다. 지난해 2월에 데뷔한 신인 그룹이지만 곡 '큐피드(Cupid)'로 미국 빌보드 주요 음원 차트인 '핫 100'에서 13주 이상 차트인하며 '중소의 기적'을 넘어 K-팝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었다. 그러나 소속사 어트랙트가 지난 6월 외부 제작사인 더기버스 안성일 대표에게 '템퍼링' 의혹을 제기하며 피프티 피프티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됐다. 어트랙트는 작은 기획사이니만큼 노련한 외부 제작사 더기버스에 기획, 음반 등 전반적인 제작을 맡겼는데, 이 과정에서 더기버스가 피프티 피프티 멤버를 가로채려 했다는 주장이다. 이 과정에서 네 명의 멤버(키나, 새나, 아란, 시오)가 소속사를 상대로 법원에 전속계약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하며 사건은 더욱 커졌다. 해당 가처분 신청은 기각됐으나 멤버들은 항고심까지 이어가겠다며 소속사에 팽팽히 맞섰다.
어트랙트와 더기버스, 멤버들은 무려 4개월간 고소전과 폭로전을 이어왔다. 사건의 가닥은 지난 10월 말 즈음에나 잡혔다. 안성일 대표가 첫 경찰 조사를 받고, 키나가 어트랙트의 품으로 돌아왔다. 작심한 키나는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안성일 대표가 이간질했다"고 폭로했다. 이에 힘입은 어트랙트는 멤버 3인에게 전속 계약 해지를 통보하고, 이들과 안성일 대표에게 130억 원 규모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진행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다만 긴 여론전과 소송으로 피프티 피프티는 더 이상 이전의 영광을 누리기는 어려워 보인다.
◇유튜버까지 고소전 개입...오메가엑스의 미래는 = 2021년 데뷔한 신예 보이 그룹 오메가엑스(OMEGA X)는 한창 활동해야 할 중요한 시기에 계약 분쟁으로 발목이 묶여있다. 이들은 데뷔한 지 1년이 채 되지 않았을 무렵부터 소속사와 갈등을 빚었다. 특히 전 소속사 스파이어 엔터테인먼트(이하, 스파이어) 대표가 멤버들에게 폭언하는 영상이 공개되며 가요계에는 큰 논란이 일었다. 멤버들은 소속사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며 소속사에 전속 계약 효력 정지 가처분 소송을 제기해 승소했다. 이후 소속사와 합의해 전속 계약을 해지하고 독자적으로 활동해 왔다.
멤버들은 지난 7월 새로운 소식을 전했다. 지적재산권 저작권 관리 대행 업무를 하는 온라인 배급 대행사인 아이피큐의 1호 아이돌이 된 것. 그러나 이 소식이 전해진 후, 전속 계약 해지를 합의로 잘 마무리했다던 전 소속사 스파이어가 나섰다. 아이피큐의 대표 이사가 스파이어-오메가엑스 멤버간 가처분 소송에서 스파이어를 비방하는 내용의 탄원서를 제출해 가처분 소송에서 스파이어가 패소하는 데 일조했으므로 '템퍼링'이 의심된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면서 스파이어는 오메가엑스의 IP 회수 절차를 밟겠다고 나섰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 유튜버가 템퍼링 의혹에 말을 얹으며 사건은 더욱 복잡해졌다. 한 유튜버는 오메가엑스 멤버들이 스파이어와 전속 계약을 해지하고 아이피큐와 전속 계약을 체결하게 된 과정에서 아이피큐의 분명한 템퍼링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아이피큐는 소속사는 유튜브 채널에 게시된 영상들에 대한 방송 금지 가처분 및 허위 사실 유포에 따른 명예훼손, 영업 방해에 대해 형사 고소했다. 이후 소속사는 "법원이 유튜브 채널에 대해 오메가엑스의 인격권을 침해하는 내용 삭제를 명했다"고 밝혔지만, 스파이어 측은 "템퍼링 관련 내용은 허위임을 입증하지 못했으므로 사실상 유튜버의 승소"라고 또다시 엇갈린 주장을 하는 중이다. 아이피큐는 본안 소송까지 간다는 입장이다.
◇템퍼링 근절, 적극적 규제 필요할 때 = 피프티 피프티를 비롯해 올 한해 크고 작은 템퍼링 이슈는 연예계에 경종을 울렸다. 한국연예제작자협회는 "템퍼링으로 산업의 근간을 흔드는 행태는 근절돼야 하며, 템퍼링으로 산업의 이미지를 저하시키고 혼란을 야기하는 모든 제작자와 연예인들은 퇴출돼야 한다"며 "템퍼링을 일으키는 제작자와 연예인을 강하게 대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2009년 만들어져 시행 14년 차를 맞은 표준전속계약서에는 템퍼링에 대한 규제 항목이 없다. 이렇다 보니 업계에서는 대중문화예술인 표준전속계약서가 제도적으로 개정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아울러 K-팝이 한국의 주된 문화 사업으로 떠오른 만큼,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도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크다. 일례로 한국연예제작자협회(이하, 연제협)는 스포츠 업계처럼 FA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본의 논리로 아티스트가 이적하는 건 막을 수 없으니 공식적으로 템퍼링 기간을 제시해, 소속사가 행여나 '뒤통수' 맞을 일 없게 제도화하자는 전략이다.
연매협은 "연예계에 오래전부터 심심치 않게 이루어지고 있는 멤버 빼가기와 템퍼링 등은 정상적인 기업 활동을 가로막아 회사와 소속 연예인 모두에게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해 왔다"며 "자본력을 바탕으로 한 불순한 세력의 기회주의적 인재 가로채기는 K-팝의 근본을 일궈낸 제작자와 아티스트 성장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행위"라며 "'대중음악산업진흥위원회'의 설립 추진은 물론 연예인 FA제도 도입, 아티스트 임대제도 등 건강한 산업 발전을 위한 방안을 모색해 K-컬처가 우리만의 것이 아닌 전 세계 문화 산업을 이끄는 선구자가 되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허지영 기자 heol@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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