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석을 들러리로 세운 기안84, MBC 연예대상이 시사하는 것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이견이 없었다. <2023 MBC 연예대상>의 대상은 기안84에게 돌아갔다. 대상 후보로 기안84와 더불어 유재석과 전현무가 올랐지만, 마지막 대상 시상을 앞두고도 그들은 그다지 기대하지 않는 눈치였다. 그도 그럴 것이 기안84가 올해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로 거둔 성과가 워낙 확실했기 때문이다.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는 최근 급변하는 매체 환경의 과도기에 가장 잘 적응한 예능 프로그램으로 꼽힌다. 즉 이미 예능의 트렌드는 지상파, 케이블, 종편에서 유튜브나 넷플릭스 같은 OTT로 옮겨가는 추세다. 실제로 올해 대부분 주목받은 예능 프로그램은 OTT에서 나왔다. 유튜브의 <피식대학>이 그렇고, 넷플릭스의 <피지컬: 100>이나 티빙의 <환승연애2> 같은 프로그램들이 단적인 사례다.
그래서 사실 연말이면 모두의 관심과 화제가 집중되던 지상파 3사 연예대상에 대한 관심은 이미 점점 사라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미 치러진 KBS 연예대상이 <1박2일> 팀에 대상을 수여했다는 소식은 그래서 상징적이다. 물론 <홍김동전>이나 <골든걸스> 같은 성과들이 있었지만 그것이 시청률까지 담보하는 두드러진 결과로 이어지진 않았고, 결국 KBS는 보수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도대체 언젯적 <1박2일>인가.
이런 사정은 SBS 연예대상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아직 대상이 누가 될지 알 수 없지만 공개된 후보 7인의 면면과 그들이 출연한 프로그램들을 보면 뭐 하나 이렇다할 올해의 성과라는 느낌이 별로 없다. 그래서 이제 연말 지상파의 연예대상은 권위 있는 상의 느낌이라기보다는 한 해를 정리하는 방송사들의 잔치 같은 느낌이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심이 가장 쏠린 건 <MBC 연예대상>이었다.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라는 새로운 프로그램이 확고한 성과를 냈고, 이를 이끈 기안84가 비연예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대상 후보에도 올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국 기안84가 대상을 받았다는 건, 연예인만이 아닌 인플루언서나 유튜버 같은 비연예들이 예능 분야에서 점점 활약하게 된 현실을 말해준다. 이제 방송이라는 전문분야의 전문가에서 날것의 리얼리티를 가감없이 보여주는 일반인들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는 것이다.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는 기안84를 중심으로 빠니보틀과 덱스 같은 유튜버와 인플루언서를 포진시켜 달라진 예능의 트렌드에 맞춰진 극사실주의 여행을 선보였다. 여행 예능에서 많이 다뤄지지 않은 남미와 인도 그리고 아프리카의 낯선 곳을 찾아가 현지인들과 밀착 소통하며 그들의 삶을 실감나게 전해줬다. 유튜브 여행 예능이 가진 이러한 성격에 지상파스러운 색깔도 더해졌다. <나 혼자 산다>를 통해 지상파에서 많이 해오던 캐릭터쇼적 모습을 보이면서도 비지상파에서 하는 리얼 예능의 성격까지 담아냈던 기안84는 이 두 색깔을 하나로 묶어내기에는 적임자였다. 여기에 빠니보틀과 덱스까지 더해지니 보다 균형잡힌 색깔이 만들어졌다.
주목해야 할 건 기안84가 대상을 받은 프로그램으로 <나 혼자 산다>와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 두 프로그램이 모두 거론됐다는 사실이다.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가 탄생하게 된 건 알다시피 <나 혼자 산다>라는 텃밭이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기안84가 존재감을 만들었고, 김지우 PD와 의기투합해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가 나오게 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한 프로그램이 중심이 되어 마치 스핀오프처럼 타 예능 프로그램으로 새끼를 쳐 또 다른 성과를 내는 방식은 MBC 예능의 시스템적 자산이라고 볼 수 있다. 그 중심적 역할은 한때 <일요일 일요일 밤에>가 했었고 또 <무한도전>이 그 바통을 이어받았다. 그리고 지금은 <나 혼자 산다>가 리얼리티쇼의 시대에 맞는 MBC 예능 인큐베이터 역할을 하고 있다. 프로그램은 물론이고 출연자들까지 매력적인 캐릭터로 탄생시키는 이 프로그램은 그래서 올해 가장 큰 성과를 낸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에도 분명한 지분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올해 기안84에게 돌아간 <MBC 연예대상>의 대상은 이 급변하는 매체 환경 속에서 레거시 미디어가 되어가고 있는 지상파나 케이블, 종편에 분명하게 시사하는 바가 있다. 당장의 시청률도 중요하겠지만,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더 중요하고 그렇게 적응된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새로운 프로그램이나 인물들을 발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물론 여기에는 유재석을 들러리에 머물게 만든 <놀면 뭐하니?>처럼, MBC 예능 역시 예외가 될 수는 없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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