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쿠아맨2》로 마침표 찍은 DCEU 10년史
(시사저널=정시우 영화 저널리스트)
예정대로라면, 디시확장유니버스(DCEU·DC Extended Universe) 10년의 마침표를 찍을 작품은 《플래시》(2023)였다. 《플래시》를 끝으로 DCEU 세계관을 개편해 DC유니버스(DCU)로 리부트하겠다는 건, 2022년 10월 DC 스튜디오 CEO로 임명된 제임스 건이 직접 발표한 계획. 그러나 《플래시》의 흥행 참패가 영향을 미친 것일까. 계획이 느닷없이 번복되면서, DCEU 마지막 바통을 《아쿠아맨과 로스트 킹덤》이 떠안게 됐다. 지난 10년간 흥행 부진과 감독 교체 등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DCEU는 어째 떠나는 순간까지도 양치기 소년이 된 모양새다.
시작은 창대했으나 끝은 미약한 DCEU
시작은 창대했으나 끝은 미약했노라. DCEU의 10년사(史)를 집약하면 이쯤 되지 않을까. DCEU의 출발은 2013년 《맨 오브 스틸》을 연출한 잭 스나이더의 손끝에서 나왔다. 눈여겨봐야 할 건 이 시기에 영화 산업이 어떠했는가다. 당시는 마블-디즈니가 론칭한 마블시네마틱유니버스(MCU)가 《어벤져스》(2012)로 영화 산업 패러다임을 뒤집고, 《아이언맨3》가 페이즈2 서막을 열 때였다. 그러니까 《맨 오브 스틸》은 경쟁사의 성공을 배 아프게 바라봤던 DC-워너가 칼을 가는 마음으로 내놓은 비장의 카드였다. 'DC의 《어벤져스》 격'인 《저스티스 리그》로 가는 길목에 서있는 작품으로서 말이다. 그러나 헨리 카빌이 S마크를 가슴팍에 달고 나온 《맨 오브 스틸》에 대한 평가는 다소 애매했다. 불균질한 만듦새란 평가 속에서 그나마 입증해 보인 건, 새로운 프랜차이즈를 향한 가능성이었다.
이후 DCEU는 또 하나의 필살기 카드를 내민다. 무려, 배트맨과 슈퍼맨의 콜라보인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2016)이다. 사실, 실패하기 힘든 조합이었다. 배트맨과 슈퍼맨은 할리우드 창작자에 의해 거듭 다시 태어나며 영생의 길을 걷고 있는 DC코믹스 간판스타들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결과물은 전 세계 팬들의 치솟은 기대를 충족시켜주진 못했다. 캐릭터는 과잉 소비됐고, 주인공들의 감정 변화를 이끄는 동기는 허술했다. 특히 배트맨과 슈퍼맨의 대결이 결정적인 순간, 두 히어로의 어머니 이름으로 풀려버린 '느금마사' 논란은 뼈아팠다. DCEU 세계에 불길한 기운이 깃들기 시작한 건 이 무렵. 그 불길함에 기름을 부은 건 안티 히어로들이 뭉친 차기작 《수어사이드 스쿼드》(2016)였다.
악당이 악당을 무찌른다?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계획은 호방했다. 명사수 데드샷(윌 스미스)부터 할리 퀸(마고 로비), 조커(자레드 레토), 캡틴 부메랑(제이 코트니) 등을 한데 모은 캐스팅 전략도 짜릿해 보이긴 했다. 여러모로 캐릭터만으로 반은 먹고 들어갈 수 있는 영화는 그러나 매력적인 캐릭터들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자멸했다. 잘 알다시피, 이 영화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3》 준비 도중 마블-디즈니로부터 퇴출당한 제임스 건에 의해 《더 수어사이트 스쿼드》(2021)로 리부트되면서 소생하긴 했는데, 같은 DCEU 아래 두 개의 비슷한 영화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DC-워너의 심경이 얼마나 급박했는가를 엿보이게 하는 대목이었다.
DCU vs MCU,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과 《수어사이드 스쿼드》로 자존심을 구긴 DCEU의 체면을 그나마 세운 건 갤 가돗 주연의 《원더우먼》(2017)이다. 드라마와 액션, 유머 삼박자가 잘 굴러간 《원더우먼》은 늪에 빠진 DC의 불씨를 되살려내는 회심의 일격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당도한 《저스티스 리그》(2017). 캐릭터들을 솔로 영화로 한 명씩 소개한 후 《어벤져스》로 모았던 MCU와 정반대로, DCEU는 리그를 결성한 후 개별 캐릭터의 단독 영화를 선보이는 길을 택했다. 이때 소개된 캐릭터가 바로 플래시(에즈라 밀러)와 아쿠아맨(제이슨 모모아), 사이보그(레이 피셔)다.
여러 의미에서 막대한 임무를 안고 나간 《저스티스 리그》는 그러나 《원더우먼》이 살린 불씨를 키우지 못하고 혹평과 함께 DCEU에 자괴감을 안겼다. 희대의 캐릭터들을 내세우고도 수준 이하의 연출력으로 제 살을 깎아먹다니. 여기엔 영화 외적인 부침도 작용했다. 작품의 첫 삽을 떠서 끌고 가던 잭 스나이더가 그의 딸 사망으로 하차하면서 마블에서 건너온 조스 웨던(《어벤져스》 감독)에게 메가폰이 넘겨졌는데, 결과적으로 그것이 마블 영화도 아닌 그렇다고 DC 영화도 아닌 애매한 결과물로 이어지고 말았다. 당시 분노한 DC 팬들이 잭 스나이더의 감독판을 내놓으라고 청원운동을 벌인 것도 여기에서 연유한다.
그러나 늘 죽으라는 법은 없다. 흥행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오기도 하니까. 제이슨 모모아가 이끄는 《아쿠아맨》(2018)이 DCEU 작품 중 최고의 흥행을 거두리라고 누가 예상했을까. '바다의 수호자'라는 캐릭터 콘셉트에 걸맞게 수중 액션 시퀀스들이 그만의 개성을 입고 있다는 게 관객들에게 호평받았다. 유머 타율도 높았던 편. 국내에서도 504만 관객이 바다의 왕자를 영접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다만, 《아쿠아맨》 이후엔 핸들을 꼭 잡으시길. 《샤잠!》(2019), 《버즈 오브 프레이》(2020), 《원더우먼 1984》(2020), 《블랙 아담》(2022), 《샤잠! 신들의 분노》(2023), 《플래시》(2023)가 연이어 실망스러운 성적표를 받아들며 DCEU의 미래를 어둡게 했다. 앞서 언급한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가 그나마 평단의 호평을 받긴 했지만, 흥행에서는 미진했던 게 사실. 바벤하이머(영화 《바비》+《오펜하이머》) 돌풍 속에서 미국에서 개봉한 《블루 비틀》(2023)의 경우 국내에선 개봉도 못 하고 바로 VOD로 직행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자, 이제 어수선한 상황 속에서 DCEU의 마지막 주자로 나온 《아쿠아맨과 로스트 킹덤》 이야기를 해보자. 전편이 일군 흥행에도 영화는 개봉 전부터 흉흉한 소문에 휩싸였다. 무려 세 차례나 재촬영이 진행되면서 작품에 대한 불신이 커질 대로 커진 게 첫 번째. 조니 뎁과의 법적 분쟁으로 이미지가 손상된 엠버 허드를 향한 팬들의 퇴출 요구 논란이 두 번째. 테스트 시사회에서 흘러나온 작품 완성도에 대한 우려가 세 번째다. 기대치를 너무 낮춘 영향일까. 뚜껑을 연 《아쿠아맨과 로스트 킹덤》의 만듦새는 소문만큼 나쁘진 않다. 그러나 1편을 능가할 신선함도 보여주지 못한다. 전작의 톤 앤 매너를 이어받은 영화는 볼거리에 치중했는데, 여러모로 DCEU와 작별을 고하는 작품으로서 밋밋하다는 인상이 짙다.
《아쿠아맨》을 끝으로 DCEU 리부트에 본격적으로 돌입한 제임스 건은 세계관 변화를 하나둘 발표하는 중이다. 물론 이를 모두가 두 팔 벌려 환영하는 건 아니다. 갑작스러운 변화에는 잡음이 따르기 마련이니. 대표적인 것은 헨리 카빌 스스로도 원하지 않은 슈퍼맨 하차다. 헨리 카빌은 앞서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슈퍼맨으로 복귀한다고 공식 발표하기도 했는데, 그것이 제임스 건에 의해 뒤집혔다. 팬들의 아쉬운 목소리에 대해 제임스 건은 "헨리 카빌은 '슈퍼맨'에서 해고된 것이 아니다. 더 이상 '슈퍼맨' 프로젝트에 고용되지 않았을 뿐이다"라고 말했는데, 누가 이 말 해석 좀 해줄래요? 뭐가 다른 겁니까! 《블랙 아담》 속편을 개발 중이던 드웨인 존스 역시 새로운 리더의 등장으로 인해 프로젝트가 중단됐다며 제임스 건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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