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여있으면 안 돼" 故 이선균, 연기 외길 인생이 남긴 것
아이즈 ize 김나라 기자
우리들의 '나의 아저씨', 배우 故(고) 이선균이 48세를 일기로 영면에 들었다.
이선균은 27일 갑작스럽게 세상을 등졌다. 지난 10월 마약 투약 혐의로 수사 선상에 올랐다는 소식이 알려진 뒤 2개월 만의 비극이다.
마약 혐의는 물론, 강남 회원제 유흥업소 여실장 A(29) 씨와 얽힌 스캔들이 일파만파 퍼지며 대중을 충격에 빠트렸다.
비난의 목소리와 관심이 컸던 이유는 그만큼 이선균이 온 국민에게 사랑을 받아온 톱배우였기 때문. 출연작마다 대표작으로 갈아치울 정도로 매번 레전드를 경신해온 이선균이었다. 독보적인 개성의 연기 톤과 날것의 표현력으로 2005년 '베스트 극장-태릉선수촌'으로 대중 매체에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후 '하얀거탑'(2007)으로 본격 배우 이선균의 서막을 연 뒤 '커피 프린스 1호점'(2007)으로 일명 '서브병', '서브 남주' 신드롬을 일으켰다. 주연으로 우뚝 선 후에는 '파스타'(2010), '골든 타임'(2012), '미스코리아'(2013), '이번 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2016), '나의 아저씨'(2018), '검사내전'(2020), 애플TV+ 'Dr. 브레인'(2021), 올해 SBS에서 세 번째로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법쩐' 등 시청자들에게 숱한 인생 드라마를 선사했다.
이선균은 안방극장뿐만 아니라 영화계, 또 충무로를 넘어 세계를 휩쓸었기에 더욱 대중이 애정할 수밖에 없는 특별한 배우였다. 원체 연기력이 출중하면 첫 원톱 주연 영화 '끝까지 간다'(2014)부터 범상치 않은 결과물을 이뤄냈다. 작품성을 세계적으로 인정받아 제67회 칸 국제영화제의 '감독 주간' 부문에 공식 초청되었다.
배우 인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영광스러운 세계 무대를 제집 드나들듯 들었던 이선균.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2019)으로 제72회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제92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4관왕 달성 등 경이로운 트로피 릴레이를 펼친 주역 중 한 명으로서 대한민국의 자랑으로 떠올랐다. 이에 그치지 않고 이선균은 올해 영화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PROJECT SILENCE)'(감독 김태곤), '잠'(감독 유재선) 두 편으로 제76회 칸 국제영화제의 러브콜을 받은 바, 커리어의 정점을 찍었다.
영화 '쩨쩨한 로맨스'(2010), '내 아내의 모든 것'(2012), '화차'(2012) 또한 이선균의 진가를 확인할 수 있는 작품들이다.
지난 1999년 그룹 비쥬의 '괜찮아' 뮤직비디오로 데뷔, 무명 배우에서 뒤늦게 빛을 본 스타로, '오스카의 남자' '칸의 남자'로 월드 클래스를 찍기까지 오롯이 뚝심 있게 연기력으로 일군 성과였기에 모두의 인정을 받았던 이선균이다.
성공한 톱스타가 되어서도 오히려 '다작 행보'에 열을 올린 것만 봐도 이선균이 얼마만큼 연기에 순수한 열정을 쏟았는지 가늠할 수 있다. 실제로 이선균은 "'기생충'이라는 큰 작품을 하긴 했지만 저한테는 좋은 경험인 거지, 기존과 달라진 건 없다"라며 인터뷰 때마다 초심을 잃지 않고 되새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2014년 '끝까지 간다' 때는 19층 높이에서 대역 없이 와이어 액션을 직접 소화, 갈비뼈에 실금이 가는 부상 투혼을 발휘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는 "힘들었지만 또 해보고 싶다. 김성훈 감독님의 'OK' 소리가 난 장면도 욕심이 생겨서 한 번 더 촬영하고, 아파도 욕심이 많이 나서 몸이 저절로 움직여졌다"라고 못 말리는 연기 열정을 과시하며 깊은 인상을 남겼었다.
"삶의 원동력이기도 한 연기는 저한테 현실이에요. 늘 절실함을 느낀답니다. 하지만 어떤 큰 미래나 계획을 꿈꾸기보다는 책임감을 갖고 맡은 일을 잘 하고 싶어요. 그동안 연기해보지 않은 악역, 사극 장르 등 겁내지 말고 도전해서 제 것을 많이 만들어 나갈 거예요."
결국 이후 이선균은 '미옥'(2017)의 악역으로, 퓨전 사극 '임금님의 사겁수첩'(2017)으로 기어코 새로운 얼굴을 갈아끼우며 앞으로 나아갔다. 데뷔 24년 차인 올해 '킬링 로맨스'에서 코믹한 악역으로 등장, 배우 이선균의 도전을 주저하지 않는 연기 철학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다소 우스꽝스러운 인물마저도 매력적인 역할로 승화시킨 이선균. 그는 "다양한 '짤'이 제조, 확산되어 저를 마음껏 갖고 노셨으면 좋겠다"라며 작품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기꺼이 자처하는 배우였다.
2017년 이미 베테랑 배우였음에도 연기에 푹 빠져 살던 모습도 참 놀라웠다. "어떤 배우가 되고 싶은가"라는 으레 하는 질문조차 쉽사리 답을 내리지 못하던 이선균. 그는 "고민을 해봐도 답하기 참 어려운 질문이다. 이 질문은 다음 인터뷰 때 말씀드리겠다. 요즘 저의 화두다. 배우로서 고민이 많은 시기라. 어떤 배우가 될 것인가보다는, '어떤 배우로 살 것인가'에 대한 생각이 많다. 제 인생도 그렇고. 가을 하늘을 보면서 고뇌 중이다. 고민이 많지만 하루하루 행복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라고 호탕웃 웃음을 지었었다.
이선균은 "늘 '현장에 필요한 배우가 되자' 생각한다"라며 겸손하게 강조하기도. 그는 "고민하지 않고 자기 연기에 확신하고 이게 맞다고 정답을 내려 버리면 자만해지고 고여있게 되니까. 제가 많이 부족하지만, 현장과 같이 흘러가면서 주어지는 고민을 통해 또 채워져나가는 걸 느끼고 이렇게 나이 먹음에 따라 현장에 어울려지며 배워가는 배우가 되고 싶다. 언제까지 배우를 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현장에 있고 싶다"라며 진심을 다해 임했다.
최정상의 위치에 오르기까지 스스로 "정말 용됐다"라고 표현했지만, 한결같은 열정으로 연기 외길 인생을 걸어온 이선균에게 꽃길을 깔아준 건 순전히 그의 힘이었다.
인터뷰 때마다 "연기에 대한 갈증도 있고 모자란 부분도 있고 채우고 싶은 게 많다. 내가 하는 표현이 고여있으면 안 될 텐데, 정체되지 않고 흘러가야 하는 것, 이런 게 배우로서 제일 큰 고민이다"라며 연기밖에 모르는 얼굴을 보여주며 감탄을 금치 못하게 했다.
지난 여름, '잠'으로 뜨거운 호평을 받았던 당시 "어떤 큰 변화를 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관객들과 같이 호흡하고 맞아떨어졌으면, 그런 배우가 되고 싶다"라는 소망을 이야기했던 이선균. 안타깝게도 깊은 잠에 들었지만, 배우 이선균은 그의 바람처럼 영원히 대중과 호흡하는 '나의 아저씨'로 남았을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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