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면 다 되나'···지난달 형사특례공탁금 사상 최다 접수 [폴리스라인]
쌓이는 공탁금, 우는 피해자들
'사건번호'만 알면 공탁 가능해져
감형 노리고 돈 맡긴 뒤 '먹튀'도
"공탁 취지 변질 막아야" 지적 ↑
지난해 12월 '형사공탁 특례'가 시행된 뒤 가해자가 감형을 노리고 공탁금을 맡기는 사례가 급격히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당초 피해자 사생활 보호 취지로 개정된 법이지만 되레 가해자가 간편하게 죗값을 덜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형사특례공탁, 생기자마자 ‘접수 폭주’
시작은 지난해 12월 9월 시행된 공탁법 개정안이다.
‘형사공탁’이란 형사재판을 받는 피고인이 합의금·손해배상·위로금 등의 명목으로 법원에 돈을 위탁하는 제도다. 이 제도는 통상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용서를 받지 못했을 때 일단 공탁금을 맡겨둔 뒤 ‘깊이 반성하고 있고 금전적 보상 의지도 있다’며 피력하는 수단으로 쓰인다.
피해자의 의사와 관계없이 일방적으로 이뤄지는 만큼 형사 합의보다는 효력이 없지만 재판부가 형량을 결정할 때 흔히 감경 요소로 작용한다. 양형위원회에 따르면 살인·성범죄·강도·사기·절도 등에서 ‘상당한 피해 회복(공탁포함)’은 감경요소(일반양형인자)로 규정되며 특히 성범죄의 경우 집행유예 일반 참작사유로도 반영된다.
기존 형사변제공탁의 경우, 공탁서에 피해자의 이름·주소·주민번호를 반드시 적어야 했다. 하지만 신설된 공탁법 제5조의2항(형사공탁 특례)는 피해자 인적사항을 모르더라도 사건번호만 알면 공탁이 가능하도록 했다.
개정 취지는 피해자의 사생활을 지키고 피해회복을 돕겠다는데 있다. 과거 가해자들이 불법적인 수단으로 피해자의 개인정보를 알아내거나 합의를 종용함으로써 발생하던 2차 가해 문제를 막겠다는 것이다. 손해배상금의 수령을 원하는 피해자조차 자신의 신상이 알려지는 것이 두려워 기존 공탁제도를 이용하지 못한다는 한계점 역시 개정의 이유였다.
문제는 간단해진 공탁 절차가 ‘피해자를 보호할 기회’가 아닌 ‘가해자를 구제할 기회’로 악용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법원행정처에 요청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접수된 형사특례공탁금은 총 2499건으로 제도 시행 이래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시행 첫 달(1486건)보다 68.1%나 증가한 것은 물론, 평균 200여 건을 맴도는 기존 형사변제공탁의 7~8배 수준이다. 피해자와 합의에 이르지 못한 피고인들이 개정된 공탁 제도를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의미다.
기습 공탁-감형-공탁금 회수···반복되는 ‘먹튀’ 공식
맡겨진 돈이 실질적인 피해 회복에 쓰인다면 공탁금이 늘어난 현상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공탁금의 접수·회수 과정에서 피해자의 ‘알 권리’와 ‘거부할 권리’가 모두 침해되고 있다는 지적이 연일 나온다.
현재 피공탁자(피해자)는 인터넷 공고 이외에 공탁 사실을 확인할 방법이 없다. 법원 공탁소는 형사재판부 및 검찰에만 공탁 사실을 직접 통지하는데, 이조차도 우편으로 이뤄져 통지 시간이 소요된다.
결국 피해자는 물론 검찰조차 공탁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 판결이 선고되는 경우가 빈번히 발생한다. 피해자 측에서 공탁금 수령 거부 의견이나 탄원서를 미처 제출하지 못하도록 재판 직전에 돈을 맡기는 사례가 만연하며 ‘기습 공탁’이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심지어 재판이 끝난 뒤 피고인 측에서 공탁금을 도로 되찾아가는 꼼수 사례도 확인됐다. 앞서 10월 국정감사에서 이탄희 의원은 “2022년 1월 2심 재판 선고 6일 전 가해자가 1억 5000만원을 공탁한 뒤 징역 20년에서 16년으로 형량이 감형되자 선고 6일 후 공탁금을 전액 되찾아갔다”며 “이 사건에서 감형된 형량은 그대로 확정됐다”고 지적했다.
피해자는 용서도 안 했는데···“돈 아닌 처벌 원한다”
실제로 형사특례공탁의 경우 피해자들이 공탁금을 수령해간 비율이 확연히 낮다. 대다수가 가해자의 돈을 원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기존 형사변제공탁의 경우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11월까지 접수된 2715건(총 314억 6349만원) 중에 2693건이 출급됐다. 반면 형사특례공탁의 경우 전체 2만 3861건(총 1402억 5702만원)의 절반도 되지 않는 9164건이 출급처리됐다. 다시 말해 10명 중 6명은 공탁금을 거부했다.
이에 한국여성변호사회는 이달 5일 ‘형사공탁특례 제도 시행 1주년 점검과 보완 심포지엄(이하 형사공탁 심포지엄)’을 열고 공탁금 수령 여부에 대한 피해자의 진정한 의사를 확인할 필요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날 김학자 여변 회장은 “살인·성범죄·디지털 성범죄처럼 피해자와 유족의 고통이 심각할 수 있는 범죄에서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는 공탁으로 피고인이 감형되거나 집행유예가 선고된다면 피해자에게 더 큰 고통을 유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국회에서는 공탁법 악용 막기 위한 개정안이 4건 발의된 상태다. (1) 기존안으로 돌아가되 형사공탁 받은 뒤 법원이 며칠 내로 피공탁자 또는 대리인에게 공탁 사실을 알리거나 (2) 변론종결 기일 14일 전까지만 형사공탁을 할 수 있도록 해 ‘기습 공탁’을 막도록 하는 방식 등이 제시됐다.
이를 통해 피해자가 공탁금 수령 의사가 없을 경우 거부하거나 이의 의견을 제출할 충분한 시간을 보장하는 것이 골자다. 현재 발의안들은 모두 법사위에 회부됐지만 본회의 심의는 들어가지 않은 상태다.
대검찰청에서도 개정된 공탁제도의 부작용을 인지하고 제도 개선을 모색하고 있다. 앞서 8월 이원석 검찰총장은 일선 검찰청에 ‘피해자 의사를 적극 반영해 기습공탁을 막을 것’을 지시하기도 했다.
다만 5일 형사공탁 심포지엄에 참석한 박찬영 검사는 “실무상 각 재판부의 소송 진행 방식에 따라 피해자들의 진술권 보장 유무가 달라질 수 있다”면서 “모든 피해자들의 재판절차 진술권을 두텁게 보장하기 위해서는 ‘형사공탁이 접수된 경우 피해자의 의사확인 등 절차에 관한 사항’을 재판 예규 등에 명시적으로 규정해 제도화할 필요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장형임 기자 jang@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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