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선 경쟁력에서 트럼프 제친 헤일리의 예사롭지 않은 상승세
뉴햄프셔주에서 깜짝 이변 일어날 경우 경선판 요동칠 수도
(시사저널=김현 뉴스1 워싱턴 특파원)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를 뽑는 첫 번째 경선인 아이오와주(州) 코커스(당원대회)가 2주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니키 헤일리 전 유엔대사의 부상이 주목받고 있다. 여전히 당내 경선에선 유력 대권주자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압도적인 우위를 보이고 있는 양상이지만, 각종 여론조사에서 헤일리 전 대사의 지지율 상승세가 예사롭지 않은 데다, 민주당 대선후보가 될 가능성이 높은 조 바이든 대통령과의 가상 양자대결에서도 앞서는 것으로 나타나는 등 본선 경쟁력을 입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헤일리 전 대사가 사법 리스크 등 여러 불안요소를 안고 있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안'이 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미국 역사상 최연소 주지사 기록
51세의 헤일리 전 대사는 1960년대 미국으로 이주한 인도 펀자브주 출신 시크교도 이민자의 딸이다. 20대에 가족이 운영하는 중소 의류기업을 맡아 경영하면서 여성 경영인으로 이름을 알렸고, 2004년 중간선거에서 사우스캐롤라이나주 하원의원으로 선출돼 이듬해 1월 주하원에 입성했다. 2010년 3선의 주하원의원 시절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지사 선거에 뛰어들어 주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 주지사에 당선됐고, 미국 역사상 최연소 주지사라는 기록을 세웠다. 그는 2014년 11월 중간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했다. 헤일리 전 대사는 2016년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당초 트럼프 전 대통령을 반대하면서 마코 루비오, 테드 크루즈 등 다른 후보를 지원했다가 트럼프가 후보로 확정된 후엔 그를 공개 지지했다. 트럼프는 대통령 당선인 시절 헤일리 전 대사에게 첫 국무장관직을 제안했지만 그의 사양으로 유엔대사에 기용됐다.
헤일리는 공화당 주류의 경제적 자유주의와 사회적 온건보수주의 노선에 충실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주지사 시절 △보잉사의 B787 여객기 생산라인 △볼보·벤츠 자동차 공장 △글로벌 에너지 기업들을 유치하는 등 친(親)기업적 행보로 경제적 성과를 거뒀다. 그는 재선 주지사 재임 때인 2015년 사우스캐롤라이나 찰스턴에서 20대의 백인 우월주의자가 흑인 교회에 난입해 10여 명을 총으로 살해한 사건이 발생하자, 100년 이상 주청사에 걸려 있던 '남부연합기'를 철거하기도 했다.
헤일리는 이번 공화당 경선에 뛰어든 유일한 여성 후보지만, 경선 레이스 초반 한때 '트럼프 대항마'로 불렸던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와의 2위 대결 구도에 밀려 스포트라이트에서 다소 비껴나 있었다. 그러나 디샌티스 주지사가 좀처럼 답보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자 트럼프 전 대통령의 귀환에 우려를 표시하고 있는 공화당 비(非)트럼프 진영의 시선은 헤일리 전 대사에게 옮겨가고 있는 분위기다.
실제 선거분석 업체 '파이브서티에이트(538)'에 따르면 지난해 1월초 2.6%에 불과했던 헤일리의 지지율은 12월26일 기준 11.0%로 두 자릿수까지 상승했다. 같은 기간 34%였던 디샌티스의 지지율은 줄곧 하락해 11.7%를 기록하고 있다. 의회 전문매체 '더힐'이 전국 단위로 실시된 324개 여론조사를 분석한 결과, 12월27일 기준 공화당 경선 관련 여론조사에서 트럼프가 압도적 우위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헤일리의 지지율 평균은 10.8%로 디샌티스(10.6%)를 앞서는 것으로 집계됐다.
헤일리 전 대사의 지지율 상승세는 일부 주에서 뚜렷하게 감지된다. 지난해 12월14~20일 아메리칸 리서치 그룹이 실시한 뉴햄프셔주 여론조사에선 헤일리(29%)가 트럼프(33%)를 오차범위(4%) 내까지 따라붙었다는 결과도 나왔다. 12월6일 실시된 여론조사까지만 해도 트럼프가 헤일리를 27%포인트나 앞섰던 것을 고려하면 "놀라움을 자아내고 있다"고 더힐은 전했다.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예비선거)는 새해 1월15일 열리는 아이오와 코커스 이후 8일 만인 같은 달 1월23일 개최된다. 뉴햄프셔는 아이오와만큼 '민심 풍향계'로 평가받는 주다. 두 주 모두 인구가 적어 대의원 숫자는 많지 않지만 초기 대결 구도와 판세를 결정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만약 헤일리가 뉴햄프셔주 등에서 깜짝 이변을 일으킬 경우 향후 경선 판세는 급격하게 요동칠 수 있다.
헤일리 전 대사가 당내 경선에서 주목받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본선 경쟁력이다. 그는 민주당의 유력한 대선후보인 바이든 대통령과의 가상 양자대결 여론조사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보다 더 큰 격차로 승리하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지난해 12월27일 기준 더힐이 36개 여론조사 평균을 분석한 결과, 헤일리는 바이든과의 맞대결에서 42.9%를 얻어 바이든(39.4%)을 3.5%포인트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트럼프(45.4%) 역시 바이든(43.4%)과의 가상 양자대결에서 앞서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지만, 그 격차는 2.0%포인트에 불과했다. 여론조사 표본 수(트럼프-바이든 509개)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본선 경쟁력에선 헤일리가 오히려 트럼프보다 낫다는 평가가 나올 수 있는 대목이다. 헤일리는 트럼프에 비해 상대적으로 젊고, 낙태 등 여성 인권에 대해서도 비교적 전향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어 중도층 공략 등에서 가장 확장력 있는 후보로 평가받고 있다.
"판세 자체를 뒤집긴 어려워" 비관적 전망도
헤일리의 이 같은 상승세엔 지난해 11월 미국 공화당의 최대 큰손으로 불리는 '코크 네트워크'와 산하 전국 정치조직인 '번영을 위한 미국인들(AFP·Americans For Prosperity)'의 지지선언이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가 나온다. AFP는 당시 "트럼프의 부정적 이미지로 인해 많은 좋은 후보가 패배한 게 최근의 선거 환경"이라며 헤일리 전 대사를 "통치 판단과 정책 경험을 갖고 양극단으로 찢긴 나라를 벼랑 끝에서 끌어당길 검증된 지도자"라고 밝혔다.
헤일리 전 대사가 상승세를 타고 있음에도 공화당 내 판세 자체를 뒤집긴 어렵다는 관측이 아직은 중론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뉴햄프셔 외 다른 지역에서 여전히 절대적 우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유권자가 참여할 수 있는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와 달리 당원만 투표권이 있는 아이오와주에선 트럼프가 50% 넘는 지지율로 절대 우위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 NBC방송이 지난해 12월2~7일 실시한 조사에서 트럼프 51%, 디샌티스 19%, 헤일리는 16%를 각각 기록했다. 또한 CBS방송의 12월8~15일 조사에서도 트럼프 58%, 디샌티스 22%, 헤일리 13% 등으로 나타났다.
다만, 헤일리 전 대사가 뉴햄프셔 등에서 선전하고 이른바 '헤일리 바람'이 다른 지역으로 이어질 경우 오는 3월 중순께 과반 대의원 확보를 통해 대선후보 지위를 조기 확정하겠다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구상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그래선지 헤일리 전 대사에 대한 트럼프 전 대통령의 견제도 본격화되고 있다. 트럼프는 최근 여론조사 결과에 대해 SNS에 "새대가리에 관한 가짜 뉴햄프셔주 여론조사가 공개됐다. 이는 또 다른 사기"라고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정치 전문매체 폴리티코와 CBS 등 미 언론들은 소식통들을 인용해 트럼프 전 대통령이 측근 및 고문들에게 헤일리 전 대사가 부통령 후보가 될 가능성이 있는지를 물었다고 보도하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 캠프 인사들은 각종 정책적 시각이 다르다는 점 등을 들어 헤일리 전 대사의 부통령 후보 낙점 가능성에 반대했다고 한다. 헤일리 전 대사 역시 "모욕적"이라며 이 같은 가능성을 일축했다. 일각에선 트럼프 전 대통령의 '헤일리 부통령 후보 검토설'은 헤일리 전 대사의 상승세를 차단하기 위한 게 아니냐는 시각도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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