툭하면 폭격·암살·공작…중동의 무법자 이스라엘
‘이란 연계, 테러 지원’ 이유로
시리아·레바논·이라크 등 타격
유엔 반대에도 핵 보유하면서
‘핵 개발 의혹’도 공격 명분으로
성탄절이던 지난 25일 이스라엘이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 외곽을 공습했다. 현장에 있던 이란 혁명수비대 고위급 인사가 사망했다. ‘알자지라’ 방송은 숨진 사람이 세예드 라지 무사비라고 보도했다. 무사비는 “이란의 역내 동맹 네트워크의 중요한 축인 시리아와의 군사동맹을 조율하는” 책임자였으며, 혁명수비대 안에서도 시리아와 레바논 지역에서 가장 오래 활동한 사령관이었다. 1980년대부터 이 지역의 동맹을 강화하는 일을 했고, 그 과정에서 이스라엘이 암살을 시도한 것도 여러차례였다고 한다.
이스라엘과 서방은 이란이 이라크에서 시리아를 거쳐 레바논의 헤즈볼라까지 이어지는 이른바 ‘시아파 벨트’를 구축하고 있다고 주장해왔다. 거기에 종파의 딱지를 붙이는 것이 합당하든 아니든, 이란이 특히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이후 저 지역들을 잇는 군사적 연결망을 강화한 것은 분명하다. 이란은 시아파 벨트가 아니라 ‘저항의 축’이라 주장하고 있지만 말이다. 이스라엘은 무사비를 저 ‘벨트’ 혹은 ‘축’의 핵심 인물로 보고 있었다.
미국의 이란 압박 뒤엔 이스라엘
미국이 2020년 1월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혁명수비대의 ‘셀럽’이었던 가셈 솔레이마니 사령관을 살해해 후폭풍이 거셌다. 그러더니 이번엔 이스라엘이 같은 짓을 저질렀다. 딱히 놀랍지도 않다. 이스라엘은 툭하면 중동 국가들에 공습을 했다. ‘핵 개발 의혹’을 이유로 들 때도 있었고, ‘테러 지원’을 명분으로 내놓을 때도 있었다. 이스라엘군은 무사비 사망에 대해 “언론 보도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것이 우리의 입장”이라면서도, 지난 10년 새 ‘이란의 지원을 받는 시리아의 테러단체’를 겨냥한 공습을 수백차례 감행한 것은 인정했다. 팔레스타인 무장조직 하마스의 대규모 공격을 받았던 지난 10월에도 이스라엘은 시리아 다마스쿠스 공항을 공격했고, 이달 초에도 역시 시리아를 공습해 군사고문으로 활동하던 이란 혁명수비대원 2명을 살해했다.
첩보전과 암살작전, 공습 등 이스라엘의 무법자 같은 행동이 중동을 휘저은 지는 오래됐다. 1970~80년대에 그 주된 대상은 이라크였다. 1979년 4월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 요원들은 프랑스의 툴루즈에서 이라크 원자로 부품을 건설하는 공장에 폭발을 일으켰다. 1981년에는 이라크의 원자로를 공습으로 파괴했다.
2000년대에 이라크가 미국의 침공으로 무력화된 이후로는 이란 핵 개발 의혹을 부추기는 쪽으로 초점을 옮겼다. 모사드는 이란 반정부 인사들의 외국 망명을 돕고, 이란 핵과학자와 핵기술자들을 살해하고, 사이버 공격을 했다. 2011년 10월 이란 혁명수비대의 한 군사기지에서 폭발이 일어나 미사일 프로그램을 담당해온 고위 간부 등 18명이 사망했는데 모사드 개입설이 제기됐다. 2018년 모사드는 테헤란에 있는 이란의 핵 문서보관소에 침투해 10만건 넘는 문서와 컴퓨터 파일을 빼낸 뒤 미국에 내줬다. 미국이 이란을 압박하고 고립시키려 한 데에는 ‘정보’를 끊임없이 물어다 주는 이스라엘이 있었던 것이다.
이스라엘은 시리아와 이란이 연결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도 안간힘을 썼다. 2007년 7월 시리아의 무기저장고에서 폭발이 일어나 시리아군 15명과 이란인 10명이 목숨을 잃었다. 역시 이스라엘의 소행이었다. 2013년에는 다마스쿠스 외곽의 연구시설, 군사기지와 공항 등을 집중적으로 폭격했다. ‘시리아가 치명적인 지대지 미사일을 헤즈볼라에 내주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고 했다. 2018년에는 시리아 고위 과학자 아지즈 아스바르가 차량 폭탄으로 살해됐는데, 이스라엘이 시리아 화학무기 프로그램 책임자로 지목한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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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살인면허’ 누가 줬나
2019년 여름 이스라엘은 이라크·시리아·레바논에 쏟아붓듯이 공습을 했다. ‘이란의 지원을 받는 무장조직 기지’, ‘이란의 지원을 받아 구축 중이던’ 이라크군 미사일 기지, ‘이라크의 무장조직과 연계돼 있는’ 여단 사령부 등 이라크의 여러 시설이 공습을 받았다. 이스라엘을 규탄하고 미군 철수를 요구한 이라크 의회의 결의는 무시당했다. 미국은 지난 25일 친이란 세력의 공격으로 미군 3명이 다쳤다며 이라크 내 ‘무장세력 거점’을 보복으로 공습했는데, 문제의 무장세력 ‘카타이브 헤즈볼라’는 2019년 이스라엘의 집중공격을 받은 조직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이스라엘은 시리아로부터 날아오는 살상용 드론 공격을 막는다며 ‘시리아 내 이란 혁명수비대 병력’을 공격했고, 레바논 남부의 헤즈볼라를 겨냥해 수시로 드론 폭격을 했고, ‘시리아에 충성하는 팔레스타인 무장조직의 사령부’라며 레바논 동부도 공습했다. 이스라엘의 행위가 주권침해이며 혼란을 부추긴다는 나지브 미카티 레바논 총리의 비판은 역시나 묵살당했다. ‘이란과 연계된’ ‘이란의 지원을 받는’이라는 수식어만 붙으면 이스라엘이 마음대로 타격할 권리라도 갖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시리아와 북한의 ‘핵 커넥션’ 의혹도 이스라엘을 통해서 나왔다. 2007년 9월 시리아의 ‘원자로’를 이스라엘이 공습했다. 이른바 ‘과수원 작전’이라고 불린 이 공습 뒤 이스라엘은 현장에 북한 핵기술자들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무려 40년도 더 전인 1980년 이미 유엔 총회는 이스라엘의 핵무기 보유에 반대하는 결의안을 채택했고, 이듬해 다시 같은 내용의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1982년 유엔 총회는 3년 연속으로 이스라엘의 핵 보유에 반대하는 결의를 했다. 이때 나온 결의안 37/82호에는 중동에 비핵지대를 설립하자는 것과, 이스라엘이 남아프리카공화국 백인 정권의 핵무기 보유를 도운 것을 비난하는 내용도 담겼다. 이스라엘이 핵확산금지조약(NPT)을 거부하는 것에 우려를 표하면서 안전보장이사회가 이스라엘의 핵 활동을 조사해야 한다고 촉구하는 문구도 포함됐다. 하지만 그 후 수십년 동안 ‘핵 개발 의혹’을 이유로 공격을 당한 것은 이스라엘이 아닌 주변 국가들이었으며 이스라엘은 언제나 압박받는 국가가 아닌 공격하는 국가였다. 하마스의 공격을 빌미로 이스라엘은 또 주변국 폭격에 나섰다. 누가 이스라엘에 그런 권리를, 아니 권력을 준 것일까.
국제 전문 저널리스트
신문기자로 오래 일했고, ‘사라진, 버려진, 남겨진’, ‘10년 후 세계사’ 등의 책을 냈다. 국제 전문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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