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부장제의 성 역할 ‘족쇄’ 풀고 행복해지기를

한겨레 2023. 12. 30.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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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손희정의 영화담(談)][한겨레S] 손희정의 영화담(談) 조이랜드
남편, ‘트랜스젠더 백댄서’ 취직
드러내진 못해도 해방감 느껴
부인은 직업 버리고 전업주부로
재능 억압…원치 않은 임신까지
㈜슈아픽처스 제공

※ 영화의 주요 줄거리를 다루고 있어 관람 경험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연말이 되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올해의 ○○○’ 리스트를 작성한다. 극장에서 보낸 빛나는 순간을 기억하려는 혼자만의 의식이다. 그중에서 ‘올해의 오프닝’을 놓고 두 편의 영화가 경합을 벌였다. 가장 유력한 후보는 ‘더 퍼스트 슬램덩크’였다. 파워풀한 ‘러브 로켓’이 울려 퍼지면서 북산고 5인방이 한 명씩 펜 아트로 모습을 갖춰가는 오프닝은 ‘슬램덩크’ 팬이 아닌 나조차도 뜨거운 심장을 품게 했다. 우리가 알던 바로 그 세계로의 초대. 지금부터 펼쳐질 그 가슴 뛰는 한판 승부를 향한 도입부. 가히 최고의 오프닝이라 할 만하다.

‘성별 이분법’ 질문하는 파키스탄 영화

또 하나의 후보작은 완전히 다른 시작을 보여주는 사임 사디크의 ‘조이랜드’였다. 영화가 시작되면 여자아이가 열부터 하나까지 거꾸로 숫자를 세는 소리가 들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한 사람이 하얀 천을 뒤집어쓴 채 화면 중앙에 등장한다. ‘고스트 스토리’에 등장할 법한 유령의 형상이다. 그는 천천히 주변을 살피는 듯하다가, 갑자기, 빠르게 몸을 움직인다. 펄럭. 하나의 춤동작 같은 움직임을 따라 하얀 천이 소리를 낸다. 그는 아이들과 술래잡기를 하는 중이다. 이내 천이 벗겨지면서 드러나는 건 하이더르, 아이들의 삼촌이다. 그는 양수가 터졌다는 형수의 부름에 술래잡기를 멈추고 오토바이에 형수를 태워 병원으로 향한다.

‘조이랜드’의 오프닝은 우리를 낯선 공간으로 이끈다. 영화가 파키스탄의 라호르를 배경으로 하기 때문에 ‘낯설다’는 것은 아니다. 익숙한 일상이 가리고 있던 비극을 드러내고, 자연스럽게 여겼던 관념으로부터 거리 두기를 요청하기 때문에 그곳은 생경한 공간이 된다. 사람이 남자와 여자, 두 개의 성으로 구분되고, 남자의 자리와 여자의 자리가 강고하게 정해져 있으며, 그 자리에 부여된 성 역할을 완수해야만 공동체의 떳떳한 구성원이 될 수 있다는 ‘성별 이분법’에 대해 영화는 질문한다. 정말 성별 구분은 그렇게 명확한가요? 모두가 성 역할을 당연하다는 듯 수행할 수 있나요? 아니 다 됐고, 그런 관념이 우리로 하여금 제대로 살고, 제대로 사랑할 수 있도록 해주나요?

하이더르를 감싼 천은 그가 갇힌 세계에 대한 은유이기도 하겠지만, 스스로가 자신이 누구인지를 깨닫고 그 깨달음을 통해 ‘나’를 드러내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를 제대로 알 수 없다는 어떤 지혜에 대한 암시이기도 하다. 그건 파키스탄만이 아니라 한국에서도 여전한 문제이므로, 우리는 영화의 엔딩에 다다라선 오히려 ‘조이랜드’의 공간이 아주 익숙하다는 걸 깨닫게 된다. 여러 날을 생각한 끝에 나는 ‘올해의 오프닝’으로 ‘조이랜드’를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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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아픽처스 제공

“사랑하는 이를 위해 기쁨의 순간을”

작은 몸집에 아름다운 얼굴을 하고 조심스럽게 움직이는 하이더르. 그는 아버지와 형, 형수, 조카 넷, 그리고 아내 뭄타즈와 함께 산다. 뭄타즈는 미장원에서 일하고, 하이더르는 형수와 함께 ‘집안일’을 하는 전업주부다. 보수적인 이슬람교도이자 가부장인 아버지는 늘 ‘바깥일’을 하지 않는 그를 못마땅해한다. 그러던 어느 날, 하이더르가 드디어 취직을 한다.

문제는 직장이다. 성인클럽에서 공연을 하는 트랜스젠더 ‘마담 비바’의 백댄서로 일하게 된 것이다. 이건 가족들에게 자랑스럽게 알릴 수 없는 일이다. 하이더르 본인조차 처음에는 주저하지만, ‘마담 비바’에게 첫눈에 매혹당하면서 심장의 열정이 이성적인 판단을 흐려버린다. 함께 연습하는 시간이 쌓여가면서 비바도 하이더르에게 마음을 빼앗기게 되고,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진다.

“가부장적 사회에서 결코 남자답지 않은 젊은이”(사임 사디크)인 하이더르가 유령처럼 부유했던 건 사회가 강요한 옷이 몸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마담 비바의 백댄서가 되면서 평생 어색했던 그 신발과 옷을 벗기 시작한다. 마담 비바가 스텝을 외우지 못해 버벅대는 그에게 다가가 상의를 벗기고 움직임에 자유를 주는 장면은 해방의 순간을 선사한다. 그러면서 하이더르는 점차 자신의 리듬을 찾아간다.

이야기의 한 축에서 하이더르가 정체성을 탐구하고 있을 때, 다른 축에서는 뭄타즈가 생기를 잃어가고 있다. 활달한 성격의 뭄타즈는 재능 있는 메이크업 아티스트다. 사랑하는 일을 계속할 수만 있다면 다른 어떤 것도 상관없는 뭄타즈. 하지만 하이더르가 마침내 일을 구하자, 가족들의 강요에 못 이겨 직장을 그만두고 남편이 하던 가사를 떠맡게 된다. 그리고 원하지 않았던 임신까지 하게 되었을 때, 뭄타즈는 삶 속에서 좌초되고 만다.

‘조이랜드’는 두 개의 서로 다른 시간을 충돌시키고, 그 옆으로 아버지와 형수의 이야기를 더하면서 그들을 질식시키는, 그러나 그들조차 인식하지 못했던 억압적인 성적 체계(gender system), 즉 가부장제를 드러낸다. 그리고 두 개의 시간은 하나의 장면에서 다시 만난다. 그건 하이더르가 마담 비바에게 버림받고(혹은 궁극적으로는 그가 마담 비바를 ‘배신’한 것일 수도 있다) 신발을 잃어버린 채 집으로 돌아온 밤이다. 아들을 임신했다는 걸 안 뭄타즈 역시 가출을 감행했지만, 결국 발길을 되돌려 집으로 돌아온 참이다.

창문 앞에서 마주친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본다. 뭄타즈는 임신 사실을 알리고, 하이더르는 눈물을 터트리고 만다. 아이는 두 사람을 그들이 원한 적 없는 성 역할의 자리에 영원토록 옭아맬 무거운 닻이다.

하이더르와 뭄타즈는 닻에 매인 채 ‘아름다운 부부’로 돌아온다. 하지만 하이더르의 영혼은 뭄타즈의 곁에 머물지 못했고, 뭄타즈의 영혼은 세상에 머물지 못했다. 결정적인 순간에 뭄타즈의 손에 무엇이 들려 있는지, 하이더르는 끝내 알아차리지 못한다. 내가 나일 수 없기 때문에 초래되는 비극은 다른 어디도 아닌 바로 그곳, 하이더르와 뭄타즈의 작은 화장실에 그렇게 도사리고 있다. 가장 친밀하고, 가장 일상적인 그 자리에 말이다.

제작자인 말랄라 유사프자이는 영화가 “가부장제가 남성·여성·어린이 모두에게 상처를 주는 방식을 다루는 작품”이며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매일 기쁨의 순간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말했다. 올해 마지막 원고에서 독자들께 감사의 마음을 담아 ‘조이랜드’를 드린다. 이야말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영화 정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해피 뉴 이어.

영화평론가

‘당신이 그린 우주를 보았다’ 저자. 개봉 영화 비평을 격주로 씁니다. 영화는 엔딩 자막이 올라가고 관객들이 극장 문을 나서는 순간 다시 시작됩니다. 관객들의 마음에서, 대화에서, 그리고 글을 통해서. 영화담은 그 시간들과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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