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움은 불안인 동시에 거대한 포용이다 [박미란의 속닥이는 그림들]

2023. 12. 30.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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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수연, 밤바다에 뜬 섬
타자가 없는 곳에서 자아의 성립은 불가능
무인도에 표류한 이는 자체가 무인도이다
어제를 먹은 오늘과 다가오는 미래의 순환
화면 위에 둥근 시간의 흔적들이 서성인다
빛이 세상의 기억이면 어두움은 망각이다
어둠은 생명의 시작점이며 종착점이 된다
지난 세기 철학자의 생각을 빌려, 이름 모를 무인도를 떠올려 보자(질 들뢰즈, ‘무인도 및 기타 텍스트 Desert Islands: and Other Texts, 1953-1974’, 2004). 일정하지 않은 간격으로 부서지는 파도와 보통의 날들처럼 흐르지 않는 시간을 상상해 보자. 그 섬에 한 사람이 있다. 무인도는 자아에 앞선 세계이며, 또한 자아가 존재하지 않는 세계다. 타자가 부재하는 장소에서 자아의 성립이란 불가능하다. 자신의 의식과 대상의 존재, 즉 주체와 객체를 구별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인도에 표류한 사람은 결국 그 자신이 무인도가 된다. 어둠에 고립된 밤들 가운데서 작가는 언젠가 한 번쯤, 스스로 무인도가 되어 보았을까.
‘동그라미와 동그라미’(2021)
◆둥근 시간에 대하여

물과 수증기, 안개 사이로 부서지는 결정들. 방수연(39)의 시야에는 그런 것들이 맺혀 있다. 풍경은 망막과 피부에 반쯤 흡수되고, 또 반쯤 스러진다. 인식의 주변을 스쳐 가는 것들 가운데 건져 올린 진실마저 순간마다 잊힌다. 들숨과 날숨 사이 지금이 휘발하고, 현재는 곧 과거에 은둔한다. 그러므로 모든 것은 사실 저마다의 얕은 기억 속에서만 산다.

세상은 정말이지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환영인데 우리는 거꾸로 그 환영 안에 거주하고 있다. 어제의 시간을 먹고 오늘이 자라남을 알기에, 곧 내일이 다가옴을 기대하기에 그렇다. ‘휘어지는. 사이’(2021)의 화면 위에 둥근 시간의 흔적들이 서성인다. 일과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 마주한 한 공터의 풍경을 담은 회화다. 바람의 모양을 따라 둥글게 떠오르는 모래 먼지와 그것을 바라보는 작가의 마음을 상상해 본다. 도망칠 듯 차마 떠나지 못하는 속도와 궤적, 그 반복의 무상함을 곱씹어 본다. 그러다 문득 모래바람이 그려내는 둥근 순간, 짧은 찰나의 이룸을 기록하려는 회화를 본다. 흩어지지 않기 위한 잠시의 순환이 마치 우리의 오늘을 닮은 것 같다. 회화의 화면, 사라지는 날들의 유령이 여기 머물다 간다.
‘휘어지는. 사이’(2021)
방수연의 화면에는 물이 자주 등장한다. 순환하는 것들에 대한 관심을 투영하는 소재다. 생명과 죽음을 동시에 암시하며, 자신과 그 바깥의 세계를 매개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밤 자국’(2021)은 비 오는 저녁 시간 바라본 물가의 모습을 그린 회화다. 섬세한 물결의 묘사가 무색할 만큼, 수직으로 내리꽂는 직선들이 시야를 장악한다. 빗줄기는 수면의 위층에 무거운 어두움을 내려놓는다. 이토록 가시적인 화면의 층위에 대하여 질문해 본다. 까만 비가 불안이라면, 수면이 그것을 한 꺼풀 밀어내는 이유에 대해서다. 그것이 정서의 시차라면, 불안은 왜 과거를 스스로 순환하지 못하며 작가의 현재에 한 걸음 가까운 층위에 자리해 있는가. 화면에 내리는 비는 아마도 과거의 수면이 아닌 현재와의 대면을 목표하는 것 같다. 어제를 두드리는 따가운 불안을 오늘의 시간 속에 순환시키려는 것이다.
빛의 언저리에 새겨지는 둥근 무지개와 밤이 뱉어내는 어두움의 덩어리, 삼킬 듯 커다란 달의 그림자가 화면으로부터 조금 더 멀리 떠오른다. 그리고 이곳의 현재를 향하여 한 뼘 가까이 다가온다. ‘동그라미와 동그라미’(2021)가 품은 어둠은 앞서 언급한 작품들의 그것과 대조적이다. 화면 하단부의 수면은 고요한 동시에 필연적인 생동을 암시한다. 화면 중앙을 가득 메운 달의 형상은 모자람 없이 완전한 원형을 띤다. ‘밤 자국’의 불안과는 상반된 포용적 존재다. ‘휘어지는. 사이’의 둥근 궤적보다 견고한, 그래서 더 무거운 완전함이다. 시시각각 다른 모양을 띠는 달은 그럼에도 때마다 약속된 충만에 도달한다. 방수연은 그러한 완전함을 동경하는 것일까, 두려워 피하고 싶은 것일까. 바로 그것을 알 수 없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가장 먼 곳의 대상과 보다 가까운 회화의 시간이 작가의 눈동자 위에 중첩된다. 두 개의 둥근 원이 화면 위에 공존한다.
‘밤 자국’(2021)
◆무인도의 밤

방수연은 “어두움을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해한다. 어두움이란 빛의 부재일까, 아니면 그 자체로서 하나의 존재일까. 또렷하게 빛나는 낮의 색채는 밤의 시간 동안 사라지는 것일까, 또는 가려 보이지 않을 뿐일까. 회화의 과정 속에서 이러한 질문들은 보다 실제적인 문제가 된다. 어두움을 재현하는 물감의 물성이 만져지는 감각 세계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지금을 밀어내는 시간의 무게가 붓의 움직임에 가중을 더한다. 처음의 바라봄 이후 변모하는 마음의 생김새를 겹겹이 품은 화면은, 그러므로 무겁도록 적막하다.

밤의 어둠은 세상의 이미지를 분절시킨다. 형상은 윤곽으로 탈바꿈하고, 전체의 시각보다 부분의 촉각이 우선 드러난다. 짙은 어둠에 익숙해지기 위해서는 신체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오래 적응해야 한다. 작가는 교외 레지던시에 머물며 마주한 밤이 상대적으로 기다란 어둠이었다고 고백한다. 도시보다 한층 더 고요한 한밤중의 세상은 스스로의 감각에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 주었다. ‘떠오른 밤’(2021)은 그러한 밤을 그린 회화다. 수많은 밤중에서도 유독 깜깜한 밤이었다. 얼마나 어두웠던지 실제 풍경 속에 나무가 서 있다는 사실조차 알 수 없었다. 시야를 향해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리는 순간 어둠을 헤치고 나온 커다란 나무의 형상이 너무나 놀라웠다고, 그리고 한편 두려웠다고 한다. 화면 가득 어두움이 열매처럼 피어난다.

작가의 질문에 조심스레 대답해 본다. 빛의 세상이 기억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라면, 어두움을 만드는 것은 반대로 망각이 아닐까. 시각의 무기력한 빈자리이고 기억의 불가피한 탈각인 것이다. 그것은 불안인 한편 거대한 포용이기도 하다. 나무와 나의 거리를 메운 밤의 색채처럼, 무지의 감각이 불러오는 두려움은 자신과 타자 사이 경계의 사라짐 또한 의미하기 때문이다. 어둠은, 그리고 망각은 모든 생명의 시작점이며 마찬가지로 종착점이다.
‘떠오른 밤’(2021)
◆무인도에 표류한 이는 스스로 자신의 우주가 된다

다시 한번 무인도를 떠올려 보자. 그리고 그곳의 밤을 상상해 보자. 고립된 어둠 속에서 섬과 섬의 모든 의식은 하나가 된다. 그래서, 무인도에 표류한 사람은 스스로 자신의 우주가 된다. 기존의 자아를 지우고 공동의 의식으로서 새롭게 순환하는 세계다. 밤바다에 뜬 무인의 섬처럼, 어둠이 내려앉은 방수연의 화면은 장면의 층위를 분열하는 한편 통합시킨다. 나와 대상, 진실과 환상, 경험과 신화가 회화의 방식으로 뒤섞인다. 시간은 분절적으로 흐르고 기억은 선택적으로 수집된다. 이야기의 기원과 종말이 함께 자라나는 가운데 신비를 좇는 무언의 호기심이 까맣게 드리운다.

무인도를 무인으로 만드는 것은 사실 섬의 내적 환경과 큰 연관이 없다. 그러한 상태를 결정하는 것은 바깥의 바다, 섬을 세상으로부터 단절하는 동시에 연결 짓는 매개다. 개입하지 않는 바다, 그러나 늘 그곳에 일렁이는 바다를 상상한다. 방수연의 화면 속 수면에 그러한 바다를 잠시 투영해 보아도 될까. 과거와 현재, 미래를 관통하는 시간의 진동이며 운명의 그림자일 것이다. 순리를 약속하는 물의 떨림이 의식의 둥근 가장자리를 끊임없이 두드린다. 작가는 자신의 섬 바깥으로 나가고자 하는 것일까, 또는 그대로 머물고 싶은 것일까. 섬의 의식은 바다에 동화되는 순간 사라지는 것일까, 아니면 더 멀리 확장되는 것일까. 무엇을 원하든 발목이 잠길 정도의 깊이까지 디뎠다면 판단해야 한다. 나아가 헤엄칠 수 있는 종류의 물결인지, 또는 이로써 충분한 모험이었는지.

작가 방수연은 건국대학교 현대미술학과에서 수학했다. 세움아트스페이스(2017), 갤러리 도올(2018), 오!재미동 갤러리(2019), 이유진갤러리(2020), 화이트블럭 천안창작촌(2021),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2022), 갤러리 루안앤코(2023)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2024년 8월, 갤러리 루안앤코에서 또 다른 개인전을 선보이기 위해 준비 중이다.

박미란 큐레이터·미술이론 및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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