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침체도, 불평등 심화도 없다고? 도전받는 경제 비관론[딥다이브]
연말입니다. 내년 경제 전망을 이야기하기 딱 좋은 타이밍이죠. 하지만 전망 기사를 쓰지 않을 핑계를 찾았습니다. 바로 1년 전 나왔던 올해 글로벌 경제에 대한 전문가들의 예측치가 완전히 빗나갔다는 점이죠.
2023년 미 연준이 물가를 잡으려 금리를 빠르게 올리면 실업률이 치솟고 미국 경제가 침체에 빠지고 증시도 고꾸라질 거라던 1년 전의 그 예측. 다들 기억하시나요? 결국 이런 전망이 완전히 빗나갔음을 지금 확인하고 있는데요. 도대체 경제학자들은 왜 이렇게 많이 틀렸을까요.
경기 전망만 빗나간 게 아니죠. 소득 불평등과 관련된 피케티의 연구가 사실 과장됐다는, 즉 실제로는 불평등이 그다지 심화하지 않고 있다는 새로운 연구 결과가 미국에서 나왔는데요. 이건 또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오늘은 빗나간 경제학과 그 의미를 들여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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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침체는 오지 않았다
1년 전 주요 경제학자 중 85%는 2023년에 미국이 경기침체에 빠질 거라고 예측했습니다. 미국 실업률은 5.5%까지, 어쩌면 7%까지도 치솟을 거라고 봤고요. 지난해 12월 7일 파이낸셜타임스가 전했던 암울한 설문조사 결과였는데요. 기사엔 “연착륙은 극히 어렵다. 경기침체를 피하기엔 너무 늦었다”(조르지오 프리미세리 노스웨스턴대 교수)는 비관적인 전망이 함께 담겼죠. 당시엔 경착륙 또는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인플레이션) 같은 단어를 심심찮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자, 그래서 결과는? 미국 3분기 GDP 성장률이 4.9%를 기록했다는 소식 얼마 전 전해드렸죠. 미국은 호황기를 구가하고 있습니다. 실업률은 1년 내내 3%대를 유지 중입니다(11월은 3.7%). 기준금리가 치솟고, 물가상승률이 꺾였는데도 미국 경제가 휘청거리는 조짐은 보이지 않습니다. 올해 내내 경제 낙관론을 펼쳤던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는 최근 뉴욕타임스에 쓴 칼럼(‘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경제학자들을 조심하세요’)에서 이렇게 승리를 선언합니다. “연착륙을 달성했습니다.”
그러면 왜 그렇게 집단적으로 공급망 이슈를 간과했을까요. 혹시 폴 크루그먼이 열렬한 민주당 지지자인 것과 달리, 나머지 경제학자들은 공화당 지지자이기라도 할까요. 올해 전망이 크게 빗나간 경제학자 중 가장 거물이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인 걸 보면 꼭 그렇게 얘기할 순 없겠는데요(서머스는 클린턴 행정부 시절 재무장관).
바로 이와 관련해 타일러 코웬 조지메이슨대 교수가 쓴 블룸버그 칼럼을 소개합니다. 그는 “많은 경제학자들이 경기침체를 예측한 이유는 재닛 옐런(현 재무장관), 폴 크루그먼 같은 많은 전문가가 수십 년 동안 그렇게 가르쳤기 때문”이라고 말하는데요. 옐런이나 크루그먼 같은 다수의 경제학자들이 신봉하는 케인스주의 거시경제학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입니다. ‘금리 인상→총수요 감소→고용 감소→경기침체’라는 케인스주의적 공식이 현실세계엔 도통 통하지 않더라는 거죠.
유명 경제학자들의 경제 전망과 정책 조언을 전달하기 바쁜 경제기자 입장에서는 상당히 허무한 결론이 아닐 수 없는데요. 동시에 전설적인 투자자 앙드레 코스톨라니가 저서에 남긴 경제학자에 대한 비판이 오버랩됩니다. 이런 내용입니다.
“경제학을 전공한 사람은 대부분 헤어나지 못하는 그들만의 코르셋에 꽉 끼여 분석과 논평을 한다. 경제학자들은 계산만 하고 생각은 거의 하지 않는다. 그들은 책에서 배운 내용을 모두 알지만 학습 내용과 현실과의 상관관계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돈, 뜨겁게 사랑하고 차갑게 다루어라’에서 인용)
소득격차가 커지지 않는다고?
원래 예측이라는 건 늘 빗나가기 마련이죠. 경제 전망이 틀린 게 한두 번도 아니고요. 하지만 경제 예측이 아닌 냉철한 실증적 경제학 연구도 도전에 시달립니다. 최근 10년 새 가장 유명한 스타 경제학자라 할 수 있는 토마스 피케티 파리경제대학 교수의 소득 불평등에 관한 연구가 그중 하나인데요.
그런데 이런 피케티의 연구를 조곤조곤 반박해 결론을 뒤집는 새로운 논문이 나왔습니다. 저명한 학술지 정치경제저널 게재가 지난달 승인된 따끈따끈한 논문 ‘미국의 소득 불평등 : 세금 데이터를 사용해 장기적 추세 측정하기’인데요. 미국 재무부의 제럴드 오텐과 미 의회 조세합동위원회 데이비드 스플린드는 피케티의 방법론을 수정·보완해 전혀 다른 결론에 도달합니다. ‘미국의 세후 소득 불평등은 1960년대 이후 거의 증가하지 않았다’는 거죠. 그들의 새 연구 결과에 따르면 미국의 상위 1%가 차지하는 세후 소득 집중도는 1962년 8.6%→1979년 7.4%→2014년 9.1%입니다.
어떤가요. 소득세 신고 데이터만 가지고는 실제 소득 분포를 정확히 알아낼 수 없어 보완해야 한다는 이들의 논리, 어느 정도 설득력 있지 않나요. 워낙 꼼꼼하게 각종 변수(혼인율 감소와 부부 별도 신고 증가, 부양가족 감소 등)를 죄다 연구에 반영하고 있어서, 그 집요함만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논문이기도 한데요(소득세법 오타쿠 느낌).
문제는 이 결론을 사람들이 얼마나 받아들이겠냐는 점입니다. ‘불평등이 심화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너무나 대중적으로 호소력이 짙어서 웬만해선 이를 깨기가 쉽지 않죠. 이코노미스트지에 따르면 피케티 교수는 자신의 주장을 반박한 이 연구에 대해 이렇게 평했습니다. “(기후 부정에 이어) 불평등 부정은 그다지 유망한 길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불평등이 심화하고 있지 않다고 주장하는 건 마치 기후위기를 부정하는 것과 같다는 뜻의 답변인데요.
그런데 조금 다른 관점에서 보면 이 연구 결과는 희망적입니다. 연구에 따르면 불평등이 심화하지 않은 건 세금과 이전소득을 모두 반영한 세후 소득을 기준으로 할 때 얘기입니다. 세전 소득으로 따지면 역시나 과거보다 소득 격차가 더 커진 걸로 나오죠. 이게 무엇을 말하느냐. ‘저소득층과 중산층에게 이전소득과 세금 감면 혜택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는 겁니다. 즉, 그동안 소득 격차를 줄이기 위해 정부가 해왔던 각종 노력이 어느 정도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는 뜻이죠. 저소득층을 위한 복지제도를 늘리고, 누진적인 세금 정책을 펼쳐온 덕분에 그나마 현상 유지 중인 겁니다. 양극화를 줄이기 위한 정책적 노력이 헛되진 않은 셈입니다.
고백건대 언론은 원래 비관론을 좋아합니다. 경제 기사는 더 그렇죠. 왜냐고요? 비관론이 더 똑똑하고 우아하게 들리니까요. 모건 하우절은 ‘돈의 심리학’에서 이렇게 썼죠. “낙관주의는 제품 홍보처럼 들리고 비관주의는 나를 도와주려는 말처럼 들린다.” 경제학 중에서도 특히 비관론에 힘이 실리는 건 이런 심리적 요인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주요 내용을 요약하자면
-1년 전 쏟아졌던 2023년 경제 전망이 모조리 빗나갔습니다. 내로라하는 경제학자들이 미국이 경기침체에 빠지고 실업률이 치솟을 거라 전망했지만, 실제로는 미국 경제는 호황이고 고용은 안정돼있습니다.
-왜 그렇게 집단적으로 틀렸을까요. 아마도 이들이 신봉하는 케인스주의 경제학 자체가 현실과 맞지 않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통화정책과 총수요, 고용시장의 상관관계에 대한 이론을 의심할 때입니다.
-‘피케티 신드롬’을 일으켰던 소득 불평등에 관한 경제학 연구도 도전받고 있습니다. 새로운 연구에 따르면 미국의 소득격차는 지난 수십 년간 커지지 않고 그대로 유지됐습니다.
-양극화가 심해지지 않았다? 믿기 어렵고 불편한 결론인데요. 달리 보면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한 제도적 노력이 조금은 효과가 있긴 하다는 뜻 아닐까요. 절망에 빠지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신호로 여길 수도 있겠습니다.
*이 기사는 12월 29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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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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