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 행사 0순위가 ‘김건희 방탄’…거부권 사유화는 반헌법 [논썰]
“법 앞 예외 없다”던 한동훈, ‘윤 격노’에 꼬리
안녕하세요. 논썰의 손원제입니다.
‘김건희 주가조작 특검법’이 2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지난 4월 국회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에 지정된 지 8개월 만입니다.
특검법 통과는 그 자체로 의미가 큽니다. 2020년 4월 첫 고발 이후 4년이 다 돼 가도록 김건희 여사에 대한 검찰 수사는 올스톱 상태입니다. 핵심 공범들이 지난 2월 1심에서 유죄 선고를 받은 지도 1년이 다 돼 갑니다. 재판 과정에서 공판검사도, 판사도 김 여사 가담 정황을 짚었습니다. 그러나 검찰 조직은 부끄러움도 모른 채 ‘수사 중’이라는 말만 되풀이해 왔습니다. 특검 수사는 이런 비정상을 바로잡고 정의를 바로세우는 비상 수단인 셈입니다.
그러나 아직 특검법의 운명은 위태롭습니다. 대통령실은 곧바로 거부권을 행사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대통령은 법안이 정부로 이송되는 대로 즉각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다.”(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 28일 브리핑)’
“부인 특검에 거부권 행사, 헌법위반”
법안이 정부로 이송되면 보름 이내에 공포할지 거부권을 쓸지 결정해야 합니다. 이번 김건희 특검법에 대해선 그 보름 동안 숙고하는 시늉조차 하지 않고, 넘어오는 대로 바로 거부권을 쓰겠다는 것입니다. 특검을 바라는 다수 민심과 국회 입법권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도 보이지 않는 오만한 태도입니다. 국민이 위임한 대통령의 권한은 공공선을 위해 사용돼야 합니다. 사적 이해충돌이 빚어지는 사안에 대해서는 권한 행사를 회피·자제하는 게 공직자의 바른 자세입니다.
그러나 지금 윤 대통령이 보이는 모습은 자기 부인의 방탄을 위해 대통령의 권력을 사적으로 행사하겠다는 것과 다를 게 없습니다. 염치라곤 없을 뿐더러,반헌법적입니다.
진행자 “근데 이건(거부권은) 모든 거에 다 적용될 수 있는 거 아닙니까?”
김용민 “아닙니다. 내재적 한계가 있어요. 쉽게 얘기하면 판사가 재판할 때 자기 사건 판결 못하지 않습니까? 제척·기피·회피라는 제도가 있어요. 똑같습니다. 대통령도 거부권을 행사할 때는 자기 또는 자기 가족, 배우자와 관련된 사건은 제척·기피·회피가 되는 게 헌법 내재적 한계라고 부르거든요. 그래서 그 한계를 벗어난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은 헌법 위반으로 충분히 해석할 수 있습니다.”
(김용민 민주당 의원, 29일 MBC ‘김종배의 시선집중’)
대통령실은 이미 거부권 행사 의도를 공공연히 내비쳐 왔습니다.
“(‘김건희 특검법’은) 내년 총선을 겨냥해 흠집내기를 위한 의도로 만든 법안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우리들은 확고하게 갖고 있다.”(이관섭 대통령실 정책실장, 24일 KBS ‘일요진단’)
하루 뒤인 25일은 성탄절 휴일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여권은 이날 긴급 고위 당정협의를 열어, 특검법 대응을 논의했습니다. 당·정·대 수뇌부가 모여 ‘김건희 특검법’에 대해 조건부 수용도 불가하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 법안은 처음부터 총선용으로 기획된 국민 주권 교란용 악법이다.”(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 26일 원내대책회의)
“윤 대통령 ‘총선 후 특검’ 주장에 격노”
이런 태도는 윤석열 대통령의 확고한 ‘특검법 거부’ 지침이 내려졌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여권 일부에서 압도적 특검 찬성 여론을 이유로 ‘총선 후 특검’을 수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자, 윤 대통령이 격노했다는 보도(뉴스1)가 25일 나오기도 했습니다. 대통령실은 부인했지만, 실제 같은 날 오후 고위당정협의가 열려 ‘특검법 거부’ 결론을 내렸습니다.
일각의 ‘총선 후 특검’론은 애초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의 지난 19일 발언 뒤 불거진 주장입니다.
“독소조항까지 들어 있죠? 무엇보다 딱 시점을 특정해서 만들어진 악법이다. 그런 부분을 충분히 고려해서 국회 절차 내에서 고려돼야 한다.”
조선일보 등에선 “국회 절차 내에서 고려돼야 한다”고 덧붙인 대목을 두고, 한 전 장관이 자신이 지적한 ‘독소조항’을 빼거나 수사 시점을 총선 뒤로 미루는 조건으로 특검법을 수용할 뜻을 내비친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았습니다. 이후 여당 일부에서도 비슷한 주장이 나왔습니다.
“그 다음에 1월달에 재의에 붙일 때는 물밑에서 여야 대표 간 협상을 해서 이 부분만큼 아까 말씀드린 대로 똑같이 간다. 그대로 가되 시기만 4월 이후로 가자는 거예요. 저는 그건 민주당이 거부할 이유가 없다고 봅니다.”(김근식 국민의힘 송파병 당협위원장, 25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
이런 주장에 윤 대통령이 확고하게 선을 그은 셈입니다. 총선 전이든 뒤든, ‘독소조항’이라고 주장한 특검 브리핑 조항이 들어가든 말든 ‘김건희 특검법’은 무조건 거부한다, 이런 지침을 내린 것입니다.
실제 발언 당사자인 한동훈 비대위원장도 고위당정협의 다음날(26일) 열린 취임식에선 달라진 태도를 보였습니다.
“특검은 총선용 악법이란 입장 충분히 갖고 있다.”
지난 19일 주저리주저리 여러 말을 보탰던 것과 판이합니다. 당시엔 이런 말도 했습니다.
“첫째, 법 앞에 예외는 없어야 한다.”
26일엔 이런 그럴싸한 전제는 싹 떼버렸습니다. 대통령의 격노 한 번에 꼬리를 내린 모습입니다.
이런 일련의 상황이 말해주는 건 두가지입니다.
“윤 대통령, 김 여사 관련 직언하면 화 내”
첫째, 윤 대통령의 ‘분노 버튼’은 김건희 여사라는 사실입니다. 좀더 정확히는 김건희 여사에 대한 바깥의 직언입니다. 고대 중국 사상가인 한비자는 이처럼 통치자를 분노하게 하는 어떤 지점을 ‘역린’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용(군주)에겐 여든한 개 비늘이 있는데, 그 중 목 아래에 거꾸로 붙은 단 하나의 비늘, 곧 ‘역린’을 건드린 사람은 용의 분노를 사 반드시 죽임을 당한다, 이런 내용입니다.
실제 윤 대통령에게 김 여사에 관해 직언한 사람은 친소를 가리지 않고 모두 가차없이 내쳐졌다고 합니다. ‘격노’한 윤 대통령이 누구와 절연하고, 누구는 캠프에서 내보냈다, 이런 류의 증언이 쏟아진 바 있습니다.
금태섭 “제가 (대선) 캠프에서부터 보면 그건(김 여사 이야기는) 정말 금기고, (당시) 제가 몇 번 얘기했는데 (윤 대통령이) 말씀을 안 들으셨다.”
진행자 “캠프 때도 김 여사 문제를 지적했다는 말인가?”
금태섭 “그렇다. 그렇게 얘기를 했는데 전혀, 화를 내면서 그냥 넘어가 버리는데, 정말 이걸 깨지 않으면 선거를 치를 수가 없을 것이다.”
(금태섭 새로운선택 공동대표, 11일 SBS ‘김태현의 정치쇼’)
반면, 윤 대통령이 유례없는 국정 실패인 엑스포 유치전 ‘119 : 29’ 참패에 격노해 경위를 짚고 책임을 물었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외교부 장관과 국가정보원장은 뒤늦게 다른 사유로나마 교체하나 싶더니, 막상 국정원장에 앉힌 건 조태용 국가안보실장입니다. 대통령 부부 순방 외교 총책임자죠.
가장 큰 정무적 책임을 져야 할 인물은 김대기 비서실장입니다. 하지만 총선 출마용 수석비서관 전원 개편 와중에도 꿋꿋이 살려두더니, 28일에야 교체했습니다. 김 실장은 지난해 국회에 출석해 ‘나토 순방 민간인 지인 동행’ 등 김 여사 의혹을 캐묻는 야당 의원 질의에 “우리 여사가 뭘 잘못했느냐”며 철갑 방어막을 쳤던 인물입니다.
김 실장 후임엔 이관섭 정책실장을 돌려막기 했습니다. 앞에서 봤듯이, 이 신임 비서실장은 지난 24일 정책실장 신분으로 “특검법은 총선을 겨냥한 흠집내기 법안”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권력 핵심을 이런 사람들로 계속 채우는 것과 필사적인 김 여사 방탄 사이엔 과연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는 걸까요.
역대 대통령들 가족 수사 수용, 윤 대통령만 특권 행태
윤 대통령은 지난 10월 서울 강서구청장 선거 패배 뒤 “국민은 늘 무조건 옳다”고 말했습니다. 지금 보이는 모습은 ‘내 처 문제는 빼고’입니다. 국정과 민심은 물론, 심지어 정권의 안위조차도 배우자 호위에 비하면 하찮게 여기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입니다. 역대 여러 대통령들이 정권이 흔들리면 아들, 형제 수사를 허용해서라도 성난 민심을 달랬습니다.
“김영삼 대통령도 그러셨고 김대중 대통령도 그랬고. 심지어 이명박 대통령도 본인의 가족과 관련된 문제가 되니까 특검을 받았단 말이에요.”(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 28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
여권에서 ‘총선 후 특검’ 주장이 나온 것도 이걸 풀지 않고선 총선 패배를 피하기 어렵다는 위기감 때문입니다. 나아가 총선에서 지면, 정권의 존속도 장담하기 어렵다는 주장마저 나옵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민심 이반이 뻔히 보이는 길로 직진하고 있습니다.
권력 행사의 목적 0순위가 오로지 ‘김건희 지키기’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일부 심리학자들은 김 여사가 두 사람 관계의 지배력을 쥐고 있을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합니다. 또한 ‘어쩌다 대통령’이 된 윤 대통령이기에, 권력을 통해 이루고 싶은 공적 목표가 빈약하다는 점도 국정보다, 민심보다, 선거보다도 더 ‘김 여사 보호’에 지극정성을 기울이는 이유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국민이 위임한 대통령의 권한을 공공선이 아니라 가족을 위해 사사로이 쓰는 권력자를 용인할 국민은 없습니다. 과거 왕조시대와 달리 현대 민주주의 국가의 주권자는 국민입니다. 윤 대통령의 역린이 김 여사라면, 현대의 주권자 국민의 가장 큰 역린은 바로 권력자의 특권·오만이기 때문입니다.
일련의 상황이 말해주는 두 번째는 ‘한동훈의 굴복’입니다. 한 위원장이 정말 ‘총선 후 특검’ 의도를 갖고 그런 말을 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조선일보 등 친여 매체가 알아서 ‘희망 회로’를 돌린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조차도 요령껏 활용해 민심에 부응하는 결정을 끌어내는 게 여당 비대위원장의 책임이고 능력입니다. 하지만, 격노 한 번에 태세를 전환했습니다. ‘신-구 권력의 충돌’, ‘제2의 6·29’ 어쩌고 하더니, 한 방에 서열 정리가 끝난 것입니다.
이창동 감독의 초기 걸작 영화죠, ‘초록물고기’에는 출소한 조폭이 이제 한 구역의 두목 자리를 꿰찬 옛 졸개를 향해 ‘넌 영원히 내 쫄따구’라고 멸시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지금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의 모습은 바로 이 인상적인 신을 떠올리게 합니다.
“한동훈, 대통령 부부는 성역 ‘야당 탓’만”
대통령의 독단과 당정 주종관계를 바꾸라는 게 지금 여당을 향한 민심의 요구입니다. 누구나 압니다. 그러나 한 위원장이 내놓은 첫 응답은 맹종입니다. 대통령에게 할 말을 하는 대신 야당과 운동권에 독설을 퍼붓고 있습니다. 한 위원장은 통상 쓰는 국민 대신에 ‘동료 시민’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그러나 내부 혁신이 아니라 상대 정당에 대한 독기 서린 정치 공세로 위기를 돌파하려는 정당과 정권을 지지할 ‘동료 시민’은 결코 찾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재명 대표의 민주당과, 그 뒤에 숨어 국민 위에 군림하려는 운동권 특권세력과 싸울 겁니다.”(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 26일 취임식)
전두환 시절 ‘빨갱이 때려잡겠다’던 안기부장 취임사를 보는 것 같습니다. 윤 대통령은 ‘김건희 보호’를 국정과 민생보다 상위에 두고 있습니다. 비슷하게 한 위원장은 야당·운동권 척결을 당 혁신과 국정 쇄신보다 앞세우고 있습니다. 아니, 당 혁신과 국정 쇄신은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기자 “이준석 전 대표가 당에 남기 위한 조건으로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철회’나 ‘이태원 참사 유족 면담’을 언급했다. 전향적 입장을 낼 계획이 있나?”
한동훈 “어…, 저에 대해서 여러가지 많은 말씀을 하신 분들이 많이 있죠. 그렇기 때문에 제가 누구 하나하나 얘기에 대해서 지금 답변할 상황은 아닌 것 같아요.”(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 27일 백그라운드 브리핑)
야당 공격할 시간에 당과 국정 쇄신에 대해 더 고민하고 답을 내놓기 바랍니다. 그러나 한 위원장은 마땅히 가야 할 어려운 길 대신 야당·운동권만 때리는 쉬운 길로 이미 질주하고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에게 변화를 요구할 용기가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조응천 “왜 여당 내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고 계속 야당만 얘기하느냐, 그거는 내재적 한계가 있기 때문이죠. 성역이 있기 때문입니다. 수직적 당정관계와 김건희 여사라는 이 성역이 있기 때문에 이걸 건드리지 못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계속 야당 탓만 하는 거죠.”
진행자 “외부를 침으로써 내부를 단합시키고자 한다?”
조응천 “단합이라기보다는 외부를 침으로써 자신의 못남을 덮으려고 하는 것.”
(조응천 민주당 의원, 28일 MBC ‘김종배의 시선집중’)
한 위원장은 내부의 문제를 야당에 대한 공격으로 가리려는 비루한 행태를 멈추어야 합니다. 그가 무너진 정의를 바로세우길 요구하는 압도적 민심에 이제라도 응답할 수 있을까요. 논썰에서 함께 계속 주시하도록 하겠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지금 바로 영상으로 확인하시죠.
√ 포털 환경상 영상이 보이지 않는 경우 https://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1122351.html 에서 영상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기획·출연 손원제 논설위원 wonje@hani.co.kr 연출·편집 조소영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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