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게임산업의 꿈…판교 벗어나 부산에서 꾸면 안 될까요?
게임회사 창업·운영 지원사업
“지역 맞춤한 강소게임사 육성”
구인난 여전…주거지원 등 필요
지난 21일 부산 해운대구의 인디게임 개발 스타트업인 ‘써니사이드업’ 사무실. 20대 직원들이 ‘숲속의 작은 마녀’ 게임 업데이트 작업에 한창이었다. 이 게임은 견습 마녀인 엘리가 다양한 마법으로 마을의 삶을 개선하고 정식 마녀로 인정받기 위한 과정을 경험하는 피시(PC) 어드벤처 롤플레잉 게임이다. 개발자들은 이 게임 완성본에 들어갈 새로운 기능과 캐릭터 등 새 콘텐츠를 창작하고 있었다. 아티스트는 새로 넣을 그래픽 이미지를 만들고 있었고, 품질보증담당자(QA)는 버그가 없는지, 게임을 재미있게 진행해갈 수 있는지 ‘플레이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었다.
‘숲속의 작은 마녀’는 지난해 온라인 게임 판매 플랫폼인 스팀의 ‘앞서 해보기’(얼리 액세스. 미완성 게임을 저렴한 가격에 체험하고 제작사는 평가를 반영)를 통해 발매됐다. 총 3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며 ‘앞서 해보기’ 부문 판매 1위에 올랐다. 북미·중국 등 외국 판매 비중이 90% 이상이었다. 처음부터 외국 진출을 타깃으로 설정했고, 5개 언어(한국어, 영어, 중국어 간체와 번체, 일본어)로 제작한 것이 주효했다. 박은현(33) 써니사이드업 대표는 “부산글로벌게임센터로부터 받은 지원이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부산센터, 최장 6년간 사무실 제공
한국 게임산업의 중심지는 넥슨·스마일게이트·엔씨(NC)소프트·엔에이치엔(NHN) 등 대형 게임사들이 몰려 있는 경기도 성남시 판교를 둘러싼 수도권이다. 지방에 사는 청년들은 관심이 있어도 게임산업 접근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지난달 서울에서 열린 ‘2023 리그오브레전드(LoL) 월드 챔피언십’(롤드컵)에서 ‘페이커’ 이상혁이 이끈 한국팀이 우승하면서 역대급 흥행을 기록했지만, 지방의 낙후한 게임산업과는 거리감이 있는 이벤트였다.
이런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은 2015년부터 지방자치단체와 지역 문화산업진흥기관과 함께 ‘지역 글로벌게임센터’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지방에서 청년들이 게임 개발 회사를 창업하고 운영할 수 있도록 지원해 한국 게임산업의 미래를 이곳에서 찾겠다는 취지다. 첫해인 2015년 부산·대구·전북 3곳에서 지역 글로벌게임센터가 문을 열었다. 현재는 전국 광역지자체 11곳으로 확대됐다. 내년에는 경남에서도 출범할 예정이다. 지역 글로벌게임센터는 게임 인재 양성과 제작 지원, 창업과 수출 지원 등을 통해 청년들이 굳이 수도권으로 가지 않아도 살고 있는 지역에서 게임 관련 교육을 받고 개발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관계자는 “지난해 1년 동안 지역 글로벌게임센터를 통해 지원을 받은 기업 수는 모두 530여개이고, 이들이 지역에서 창출한 청년 일자리는 1300개에 이른다”고 말했다.
부산글로벌게임센터는 부산시가 소유하고 부산정보산업진흥원이 위탁 운영 중인 지상 9층짜리 부산문화콘텐츠콤플렉스 건물(해운대구 수영강변대로)에 있다. 게임 스타트업들이 이곳 사무실 입주 지원을 하면 심사를 통해 입주 여부가 결정된다. 사무실이 무료로 제공되고 개발 지원금도 집행된다. 연평균 경쟁률은 3.4 대 1로 치열한 편이다. 부산센터는 스타트업들의 입주 이후 6개월~1년 단위로 사업 성과나 잠재력 등을 평가해 연장 여부를 결정하고 혜택은 최장 6년까지 가능하다. 기반을 탄탄히 잡을 때까지 든든한 버팀목이 돼주는 ‘지원군’인 셈이다. 올해 부산센터는 65개 스타트업을 지원했고, 이들 업체는 279억원 매출을 올렸으며 152명을 새로 고용했다. 한상민 부산정보산업진흥원 게임산업진흥단장은 “넓은 부지에 대형 게임사들이 집적돼 있는 판교를 중심으로 한 수도권과 달리, 부산은 지역 환경에 맞게 작지만 강한 ‘강소 게임사’들을 집중 육성해 부산의 게임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도권 일극체제 때문에…
써니사이드업의 박은현 대표는 자신처럼 게임을 좋아해 게임 개발을 독학한 두 친구와 함께 창업한 직후인 2018년 7월 부산센터에 입주했다. 입주 5년째인 올해 직원 수는 13명으로 늘었다. 박 대표는 “창업 이후 중요한 시기마다 연쇄적으로 지원해준 부산센터의 도움이 컸다”고 했다. 휴학생 신분이었던 창업자 3인이 월세 200만~300만원에 해당하는 사무실을 공짜로 제공받은 것은 좋아하는 게임 개발을 본격적으로 할 수 있는 기반이 됐다. 게임 개발 지원금 4천만원도 요긴하게 썼다. 1호 사원인 아티스트를 채용해 그래픽과 디자인의 질적 수준을 높였다. 컴퓨터도 게임 개발에 적합한 사양으로 업그레이드했다. ‘숲속의 작은 마녀’를 만든 뒤 판매를 위해 게임 배급사(퍼블리셔)와 협업해야 하는 과정에서도 부산센터로부터 법률 자문을 받아 어려움 없이 계약을 진행할 수 있었다.
2021년 콘솔 게임 ‘울트라 에이지’를 출시해 호평을 받은 게임 개발사 ‘넥스트스테이지’도 5년 동안 부산센터가 키운 스타트업이다. 울트라 에이지 제작 과정에서 받은 자금 지원은 1억5천만원이 넘는다. 육성 프로그램은 단순히 현금 지원에 그치지 않는다. 강현우(33) 대표는 “2020년에 지원 과정을 ‘졸업’할 때까지 직원 수가 증가하면서 발생한 조직 관리 문제, 게임 프로듀서(게임 제작의 전 과정에 대한 총감독)의 역할, 창업가 마인드, 세무, 회계, 법률 문제 등에서 조언을 받으며 회사 운영을 위한 전방위적인 지원을 받았다”고 했다. 개발 능력을 인정받은 넥스트스테이지는 이 과정에서 총 28억원의 외부 투자를 받기도 했다. 4명의 공동창업자로 시작한 이 업체의 현재 직원 수는 15명이다.
열정과 능력이 있으면 성공하는 사례가 나오고 있지만 수도권이 모든 인적 자원을 빨아들이고 있는 일극 체제에서 지역에서의 인재 채용은 여전히 어려운 숙제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지난 9월 게임 개발자 429명을 대상으로 ‘지역 내 게임사 창업 및 취업 관련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를 보면, ‘지역에서의 게임사 창업 또는 지역 게임사 취업을 희망하지 않는 이유’(중복응답 가능)에 대해 ‘교통·생활 인프라 열악’(94.8%)이 압도적이었고 ‘인력 채용이 힘들 것 같아서 또는 취업할 회사가 별로 없을 것 같아서’(75.8%)라는 응답이 2위였다. 박은현 대표는 “개발자를 구하기가 너무 힘들다”며 “다른 지역 인재들이 부산에 와서 일할 수 있도록 주거를 포함한 지원정책들이 시행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부산/글·사진 김규남 기자 3strings@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한동훈 ‘망언 비대위’…“노인네 돌아가셔라” “남자가 결혼 결정”
- “TV에 김홍일 나오면 아직 악몽 꿔”…살인 누명 ‘김순경’ 입 열다
- 현대삼호중공업 40대 노동자 질식사…올해만 3번째 사망사고
- 대통령실, ‘김건희 리스크’ 대책은 입 닫은 채 ‘방탄’ 수순 돌입
- 국방장관 ‘독도=분쟁지’ 교재 사과…“모두 제 책임”
- 코인 매매 의원 11명…김남국이 555억, 나머지가 70억 매수
- 탈당 천하람 “국힘 근본적 개혁 어려워”…이준석 신당 합류
- ‘사진 따귀’ 대한노인회장 이번엔 “한동훈 사과, 민경우 사퇴”
- 배우 이선균, 영면에 든다…“부디 마음으로만 애도해주시길”
- “6년의 도전”…성당·산·달 완벽한 ‘삼위일체’ 어떻게 찍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