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Depth Story] 한동훈은 도대체 어떤 인간인가
● 장관 1년 7개월, 대선주자급 행보
● 신선하지만 검사 출신 정치 신인이라는 한계
● 강남8학군·서울법대·엘리트 검사, 그 이상의 무엇
● “검사가 된 건 ‘운’이 좋았기 때문일 것”
● 날라리들도 동훈이한테는 함부로 못했다
● 자기편에도 엄격했나, 생각해 볼 문제
● 윤석열 부하 이미지로는 자기 길 못 가
[+영상] 73년생 한동훈을 말하다⓵
[+영상] 미리 본 22대 총선
2022년 4월 13일 윤석열 당시 대통령 당선인은 한동훈(51·연수원 27기) 당시 사법연수원 부원장을 제69대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했다. 문재인 정권 말기에 검찰을 이끌던 김오수(61·연수원 20기) 전 검찰총장보다 기수가 7년씩이나 낮은 검사장급 인물을 장관 자리에 앉힌 파격 인사였다. 직전 장관이던 박범계 의원도 연수원 23기로 한 장관과 4년이나 차이가 났다. 이 인사 하나로 윤 대통령은 지난 정권에 순응한 검사들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던졌다.
취임 전 인사청문회 때부터 1년 7개월여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 한동훈 의 인기는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호감형 외모에 반듯한 차림새, 야당의 어떤 공격도 자기 논리로 조목조목 반박하는 말솜씨, 그러면서도 시민들에겐 웃음을 잃지 않는 면모까지. 표면적으로는 장관이라기보다 표심을 공략하는 국회의원, 나아가 차기 대선주자에 가까운 행보였다.
일거수일투족이 화제가 되다 보니 2023년 말에는 그의 총선 출마는 기정사실화되고, 어느 지역구 혹은 비례대표로 나갈지가 더 관심을 모았다. 강남 8학군, 서울대 법대 출신의 엘리트 검사로 '강남 우파' 이미지가 강하지만, 부모가 각각 강원 춘천, 홍천 출신이고 유년 시절 충북 청주에서 생활한 이력도 있어 한때 각 지역에서 모두 출마가 거론되기도 했다.
한동훈은 12월 26일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취임하며 "운동권 특권 정치를 청산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역구에 출마하지 않겠다. 비례로도 출마하지 않겠다"며 "승리를 위해 뭐든 하겠지만, 승리의 과실을 가져가지는 않겠다"고 말했다.
한국갤럽이 2023년 12월 5~7일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 남녀 1000명에게 차기 대통령감을 물은 조사(여론조사 관련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서 한동훈(16%)은 민주당 대표 이재명(19%)에 이어 2위를 기록하며 바짝 다가섰다. 어느 지역에 출마한다고 해도 이 대표와 맞붙지 않는 이상 당선은 안정권이란 추측이 가능했다. 한동훈이 야당 대선주자에 버금가는 인기를 끄는 요인은 무엇일까.
중산층 엘리트 집안의 장남
유년 시절 그는 비범했으나, 그렇다고 배경이 남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한마디로 압축하자면 그는 '지방에서 상경해 서울에 정착한 중산층 엘리트 집안의 장남'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1973년 4월 9일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 부친의 고향인 강원 춘천시에서 살다가 충북 청주시로 이사했다. 글로벌 반도체 장비업체 어플라이드 머티리얼의 한국지사에 근무하던 부친이 청주 공장 임원으로 발령을 받으면서 가족이 모두 옮겨갔다.1980년 청주 운호초에 입학해 5학년 때까지 다니던 그는 부친의 서울 본사 발령으로 서초구 잠원동으로 이사했다. 이후 잠원동의 신동초, 경원중과 강남구 압구정동의 현대고에 차례로 진학했다. 당시 현대고는 지금과 같은 자율형사립고가 아닌 일반고여서 인근에 사는 학생들이 무작위로 배정을 받았다. 그렇다고 해도 학구열이 높은 부촌인지라 공부로 한가락 하던 학생들이 많았다. 한동훈은 그런 곳에서 초·중·고교 시절 내내 전교 1등을 하고, 반장으로도 뽑혀 또래들 사이에 유명세를 치렀다.
한동훈은 유독 눈에 띄는 스타일이었다는 평판이 지배적이다. 서초구 잠원동에 거주하는 경원중 출신의 50대 주부 A씨는 "그 당시 경원중 다니는 애들치고 한동훈을 모르는 이는 거의 없었다. 키가 크고 얼굴이 작고 하얘서 눈에 띄었는데, 공부까지 잘하니 유명할 수밖에 없었다. 여자애들한테 인기가 많은 것은 물론이고 남자애들 사이에서도 평이 좋았다. 그렇다 보니 매년 반장으로 뽑혔고, 따르는 친구들이 많았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외모나 성적 이외에 다른 인기 요인도 있었다고. A씨는 "집이 잘사는 애들은 많았는데 한동훈처럼 공부도 잘하고 성격까지 좋은 애는 드물었다. 늘 성실한 타입이어서 학생들은 물론 선생님들 사이에서도 신임이 두터웠다. 이런 이유로 좀 노는 애들, 이른바 날라리들도 한동훈한테는 함부로 못했다"고 말했다.
그가 성격까지 좋았다는 평판은 가정환경에서 비롯됐음을 추측할 수 있는 증언도 있다. 서초구 반포동에 거주하는 현대고 졸업생 40대 B씨는 "한동훈의 부모님도 인품이 좋다고 들었다. 부친은 그가 대학 졸업할 즈음부터 아들이 나랏일을 하게 될지 모르니 부동산 거래 하나도 문제가 없도록 자진신고도 철저히 했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1970~80년대 서초와 강남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부촌이 형성되긴 했지만, 지금처럼 대기업 사원 월급으로는 30억 원이 넘는 강남 아파트 매매를 꿈꾸기 어려울 정도는 아니었다. 열심히 공부하고 좋은 대학을 졸업해 대기업에 취직하면 가정을 꾸리고 서울 요지에 집 한 채 정도 장만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던 시절이었다. 그러한 시대 배경에서 보자면 한동훈의 부친 역시 글로벌 기업의 임원이기는 했으나 특권의식에 젖어 있던 부류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동훈은 캠퍼스의 낭만을 누리기보다 일찌감치 사법고시를 준비했다. 대학교 4학년 때인 1995년 만 22세의 나이에 37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보통 2년 정도 휴학하면서 사시를 준비하는 학생들과 달리 그는 재학생일 때 합격해 동기들보다 임관이 빨랐다. 연수원 27기 동기인 이원석(55) 검찰총장보다 한 장관이 네 살 적다.
‘조선제일검'의 초고속 승진
2006년 귀국 이후 대검 중앙수사부로 복귀했다. 한동훈은 이때 윤석열 대통령과 함께 수사했는데 당시 현대차 비자금 사건을 맡아 정몽구 당시 현대차 회장을 구속하는 데 공을 세웠다. 또한 론스타 주가조작 사건 수사 당시 유희원 대표의 주가조작 혐의를 밝혀 실형을 확정 짓게 했다. 2007년에는 부산지검으로 발령을 받았는데, 이때도 뇌물수수 혐의를 받던 전군표 국세청장을 수사 끝에 구속했다. 현직에 있던 국세청장을 구속한 이례적 사건이었다. 한동훈에게 '조선제일검(檢)'이라는 별명이 붙은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수사를 했다 하면 성과를 올리는 '스마트한 검사'라는 소문이 검찰 밖으로까지 퍼진 건 당연지사. 그 덕에 2009년 이명박 대통령 집권 시절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실의 민정2비서관실 행정관으로 파견을 나가 선임행정관으로 2년간 일하기도 했다. 이후 2011년 그는 법무부의 꽃이라고 불리는 검찰국으로 발령받는다. 검찰국은 인사를 담당하는 곳으로 검찰 내 엘리트 코스로 꼽힌다. 대검 중수부와 청와대, 법무부 검찰국을 차례로 거친 그를 두고 검찰 내부에서는 못해도 검사장은 할뿐더러, 총장 재목이라는 인식이 자연스레 확산됐다.
한동훈은 초고속 승진을 거듭했다. 만 42세이던 2015년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 부장검사로 승진했고, 2016년 서울고검 부패범죄특별수사단 2팀장, 2017년 서울중앙지검 제3차장 검사를 거쳤다. 특히 그는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이던 윤 대통령 밑에서 전 정권을 향한 적폐청산 수사를 이끌며 공을 세웠다. 2019년 7월, 만 46세에 대검 반부패강력부장(검사장급)에 임명되면서 역대 최연소 검사장 타이틀을 달았다.
검찰 내부에선 유명했지만 그가 대중적으로 이름을 알린 건 언론에 대서특필된 굵직한 사건들을 줄줄이 수사하면서다. 2017년 최순실 등 국정농단 의혹 사건을 담당한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파견돼 박근혜 전 대통령 구속 수사에 참여했고, 2018년 양승태 전 대법원장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수사 때는 수사팀장을 맡아 전·현직 고위 법관을 대거 재판에 넘겼다. 특히 2018년 이명박 전 대통령 수사를 지휘하던 중 4월 9일 서울중앙지검 제3차장 검사 신분으로 중간 수사결과 브리핑에 나서 이 전 대통령을 구속 기소한다고 발표했는데, 이 장면이 언론에 생중계되면서 얼굴이 전국적으로 알려졌다.
법무부 장관 취임 한 달 뒤인 2022년 6월경 전·현직 검사들을 대상으로 그에 대한 평판을 취재한 적이 있다. 그를 후배로 뒀던 이도, 선배로 뒀던 이도 공통적으로 "똑똑하다"는 평가를 내렸다. 한동훈과 이원석 총장 두 사람과 모두 일한 경험이 있다는 한 검사는 이런 말을 했다.
"한동훈 장관에게 열심히 작성한 10장 넘는 보고서를 제출하면 질문 몇 개만 던지고서는 핵심을 파악하고 곧바로 결론을 내려줬다. 일처리가 빠르고 머리가 좋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원석 총장도 검찰 내부에서 매우 스마트한 사람으로 정평이 나 있는데, 이원석 총장은 자기 시간을 모두 투입해 부지런히 일하는 소위 '똑부' 스타일이라면, 한동훈 장관은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는, 속전속결 '똑게' 스타일로 차이가 있었다."
인생 최초의 시련
일을 거침없이 처리하는 사람 가운데 자리 욕심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 게다가 검찰처럼 자리가 위신과 직결되는 조직도 드물다. 후배가 검사장이 되는 순간 선배들은 줄사표를 던지고 비켜주는 게 불문율인 조직이다. 한동훈 장관 2년 후배인 검사 출신 한 법조인은 그가 일적인 부분 이외에 직업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일반적인 검찰 간부들과 달랐다고 평가했다."평검사 시절 검사장, 부장 등 간부급 인사들을 보면 승진이나 보직에 연연한다는 느낌을 주는 분들이 있었다. 간부들 중에 그렇지 않았던 이를 한 명 꼽으라면 단연 한동훈 장관이다. 그는 2019년 대검 반부패부장으로 근무할 때 서울중앙지검 등 일선 청에서 진행된 특별수사에 제동을 걸거나 정략적인 판단을 시도하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 한동훈은 '나오는 대로 수사한다'는 말과 딱 어울리는 검사였다."
그가 2019년을 특정한 이유는 잘 알려져 있듯, 당시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이던 그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 관련 수사를 지휘했기 때문이다. 8월 9일 66대 법무부 장관에 임명된 조 전 장관은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딸의 부정 입학, 장학금 지급 의혹, 논문1저자 등재 등 논란이 불거졌고, 검찰은 수사에 들어갔다. 시간이 갈수록 국론 분열이 심화되면서 조 전 장관은 임명 35일 만인 10월 14일 자진 사퇴했다.
현직 법무부 장관 일가의 혐의를 수사하는 검찰을 어떤 대통령도 곱게 볼 리 없다. 2020년 1월 2일 67대 법무부 장관에 임명된 추미애 전 장관은 취임사에서 "검찰개혁은 그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요구"라고 강조하며 일주일 뒤 곧바로 검사장급 인사를 단행했다. 이때 한동훈은 부산고검 차장검사(검사장급)로 좌천됐다. 인사에서 물을 먹기는커녕 영전을 거듭하던 그에게 닥친 최초의 시련이었다.
한동훈은 당시 1년 6개월 사이 4번 좌천됐다. 2020년 3월 그는 방송기자와 유착해 총선을 앞두고 유시민 비리 의혹을 제기하려고 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었다. 이로 인해 부산고검 발령 후 6개월 만에 법무연수원 용인분원 연구위원으로 또다시 좌천됐고, 넉 달 뒤에는 법무연수원 충북 진천본원으로 자리를 옮기며 추가 좌천됐다. 이후 서울중앙지검에서 검언유착 의혹 수사에 나섰고, 압수수색 과정에서 정진웅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 부장검사가 그의 휴대전화를 무리하게 뺏으려다 몸싸움을 벌이는 초유의 사태가 빚어지기도 했다. 수사가 진행되던 2021년 6월 그는 사법연수원 부원장으로 네 번째 좌천을 당했다.
한동훈은 지금껏 언론 대면 인터뷰를 단 한 차례 진행했다. 2021년 2월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있으면서 조선일보 최재혁 사회부장과 인터뷰한 것이 전부다. 당시 문 정권으로부터 미운털이 박힌 것에 대해 그는 "권력이 물라는 것만 물어다 주는 사냥개를 원했다면 저를 쓰지 말았어야죠. 그분들이 환호하던 전직 대통령들과 대기업들 수사 때나, 욕하던 조국 수사 때나, 저는 똑같이 할 일 한 거고 변한 게 없습니다"라고 덤덤하게 심경을 밝혔다. 이어 그는 "그 사건 하나 덮어버리는 게 개인이나 검찰의 이익에 맞는, 아주 쉬운 계산 아닌가요. 그렇지만 그냥 할 일이니까 한 겁니다. 직업윤리죠"라며 자신은 그저 수사를 놓고 앞날을 고민하지 않는 평범한 검사였을 뿐임을 피력했다.
이로부터 1년 3개월 뒤 한동훈은 윤석열 정부 출범과 함께 2022년 5월 사법연수원 부원장에서 법무부 장관으로 영전한다. 그의 나이는 마흔아홉에 불과했다.
목소리를 분명하게 내는 장관
한동훈이 걸어온 길을 보면 그 본류가 '검사라는 직무에 충실하고자 했던 직업인'임을 짐작할 수 있다. 그가 어떤 검사를 지향했는지는 2023년 8월 신임 검사 임관식에서 한 말에서 잘 드러난다. 그는 신임 검사들을 향해 "검사가 된 것은 가족과 친지의 도움이 컸겠으나 무엇보다 '운'이 좋았기 때문일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다른 사람들은 갖지 못한 운을 잡았으니 운으로 받은 혜택을 조금이라도 돌려드린다는 생각을 해야 하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물론 저에게도 해당하는 말이죠. 오늘 하루는 여러분이 어떤 검사로 살지, 어떤 공직자로 살지, 어떤 직업인으로 살지를 비장하고 심각하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 합니다. (…) '어느 편이 옳은가'는 진영에 따라 모호할 수 있어도, '무엇이 옳은가'는 분명합니다. 우리의 일은 '무엇이 옳으냐'를 정교하게 따지고, 설득력 있게 설명하는 과정이라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 기준은, '우리가 하는 일로 국민의 권익이 더 좋아지느냐, 나빠지느냐'여야 합니다. 앞으로 공직 생활하시면서 이 원칙과 타협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1년 7개월간 법무부 장관으로 일해 온 행적에서, 한 장관이 어떤 원칙을 지키고자 했는지 알 수 있다. 그는 기존의 장관들과 달리 이례적으로 억울하게 피해를 보거나 고통을 당한 피해자들의 인권을 생각하는 말과 행동을 스스럼없이 했다. 대표적 사례는 2019년 경남 진주시의 한 아파트에서 불을 내고 밖으로 나오는 주민들에게 흉기를 휘둘러 22명의 사상자를 낸 안인득 방화·살인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법원이 국가가 4억여 원을 지급하라고 1심 판결한 데 대해 "항소를 포기하기로 했다"며 "대한민국을 대표해 유가족에게 사과의 뜻을 전한다"고 발표한 일이다.
이외에도 한동훈은 화성연쇄살인 사건 누명으로 20년간 옥살이를 한 윤성여 씨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항소를 포기하며 사과했고, 또 부산에서 일면식도 없는 30대 남성의 돌려차기 폭행으로 해를 입은 여성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사과하고 대책 마련에 나선 바 있다. 조두순·김근식 등 성폭행범이 형량을 채우고 나오더라도 따로 격리해 관리할 수 있는 '한국형 제시카법',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0년 이상 형을 산 모범수의 경우 가석방으로 풀어줬던 것을 제한하는 '가석방 없는 종신형' 등을 추진하며 법무부의 수장으로서 국민 신뢰를 쌓는 행보를 보여왔다.
그는 장관 이상의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국회 대정부 질의나 국정감사에서 야당 의원들과 대립각을 세우는 면모는 보수 지지층은 물론 야당에 염증을 느낀 중도층의 호감을 사기에 충분했다. 이외에도 장관이냐 정치인이냐 하는 물음표가 붙을 정도로 색깔이 분명한 발언을 남기기도 했다. 2022년 8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출석에 앞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른바 검수완박법에 대한 물음에 "깡패가 부패 정치인 뒷배로 주가 조작하고 기업인 행세하면서 서민 괴롭히는 것을 막는 것이 국가의 임무인데 그걸 왜 그렇게 막으려는지 되레 묻고 싶다"고 하거나, 2023년 7월 국회에 출석하며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민주당 의원들이 쌍방울그룹 대북송금 의혹을 수사하는 수원지검에서 연좌 농성을 펼친 것을 두고 "이것은 권력을 악용한 최악의 '사법 방해'이자 '스토킹'에 가까운 행태"라고 비판한 것이 그 예다.
‘어느 편'에 서야 할 시간
그러나 진보정당 지지자 이외에 한동훈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이들 역시 분명히 존재한다. 이재명 대표 비리 혐의나 민주당 돈 봉투 사건 등은 철저히 수사하면서 김건희 여사 비리 의혹 수사에는 어떤 입장도 내놓지 않는 점, 고발 사주 의혹으로 공수처가 5년 형을 구형한 손준성(29기) 검사를 업무에서 배제하지 않고 되레 대구고검 차장검사로 발령을 낸 점 등은 비판을 면키 어렵다. 수도권에서 근무한 검사 출신의 한 법조인은 "어떤 검사가 봐도 수사해야 할 사안에는 입을 다물고 있는 걸 보면 내 편, 네 편이 분명한 사람이라고밖에 보이지 않는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신뢰가 일반인이 생각하는 수준을 뛰어넘는 사람이기에 세간의 기대에 부응하는 정치인이 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한동훈이 신임 검사 임관식에서 말했듯 '어느 편이 옳은가'는 진영에 따라 모호할 수 있다. 그러나 어느 편에 서지 않고서는 정치를 할 수 없다.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으로 정치에 발을 들여놓았으니 어느 편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밝혀야 한다. 이때 정치 신인으로서 미숙함이 드러나면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 이현우 서강대 교수(정치학)는 "빌 클린턴 대통령 시절 엘 고어 부통령이 클린턴보다 똑똑하고 정교하다는 평가가 많았으나 대선후보로 나섰을 때 허술한 면모를 보여 기존 이미지가 깨졌다. 한동훈에 대한 국민 기대치 역시 높기 때문에 자기모순이라든지 부족한 점이 드러나면 '이 정도밖에 안 돼?' 하는 괴리가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무엇보다 한동훈에게 '자기 길을 갈 수 있느냐' 하는 의문이 있다. 총선이 끝나면 대통령 지지율은 더 떨어질 수 있고, 국민의힘은 더 자유로워지게 된다. 지금은 '윤석열 부하'의 이미지가 강한데, 윤 대통령과 차별성 없이는 어렵다"며 우려했다. 김형준 배재대 석좌교수는 "대한민국 정치판에서 크려면 두 가지 길이 있는데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실험을 하거나, 자기희생을 하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영상] 73년생 한동훈을 말하다⓶
정혜연 기자 grape06@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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