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아픔 날리고 2024 소망 모아…다시 점프, 스매시![아듀 2023 송년 기획-경향신문 사진기자들이 뽑은 ‘2023년 나의 한 컷’]
전국의 교수들이 선정한 올해의 사자성어는 ‘견리망의(見利忘義)’라고 합니다. 자신의 이익을 좇다 보니 의로움이 뒷전으로 밀려나게 됐다는 뜻이죠. 경향신문 사진부 기자들이 선정한 올해의 보도사진들에는 어떤 장면이 담겨 있을까요? 교수들의 진단처럼 각박한 모습들이 많이 포착되었을까요? 2023년의 마지막 <포토다큐>는 사진기자들이 각자 선정한 올해의 한 컷들을 모았습니다.
■29년 만의 금빛 순간
한국 여자 배드민턴이 아시아 최정상을 차지했다.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이후 29년 만이었다. 10월 1일에 열린 제19회 항저우 아시안게임 여자 단체 결승전에서 김가은이 점프하며 스매시를 날리고 있는 장면이다. 개최국 중국을 상대로 한 세트도 내주지 않고 ‘3대 0’이라는 압도적 스코어 차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2024년 새해에도 이 같이 통쾌한 장면들이 카메라에 자주 포착되길 기대한다. 문재원 기자
■오송지하차도 참사
참사는 올해도 일어났다. 충북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가 7월 15일 오전 8시 40분경 침수됐다. 집중호우로 인해 인근의 미호천이 범람했기 때문이다. 14명이 죽고 11명이 다쳤다. 사진은 참사 다음 날 119 구조대원들이 수색 작업을 벌이고 있는 모습이다. 검찰은 미호천교 확장공사의 감리단장을 구속기소 했다. 공사 편의를 위해 기존 제방을 불법 철거하고 임시 제방을 설치한 혐의다. 자기 일만 편해지기를 바랐던 미봉책이 11명의 목숨을 앗아간 것이다. 성동훈 기자
■43년 만의 사과
아직은 쌀쌀했던 3월의 마지막 날이었다. 전직 대통령 전두환 씨의 손자 전우원 씨가 외투를 벗어 43년 전 민주화운동을 하다 숨진 고 문재학 씨의 묘비를 닦았다. 고인의 어머니 김길자 씨는 “이 어린 학생이 무슨 죄가 있어서…. 재학아, 전두환 손자가 와서 사과한단다”라며 전 씨의 참배를 눈물로 지켜봤다. 전우원 씨는 전두환 일가 중 처음으로 5.18 민주화운동 유가족을 만나 사과했다. 참배를 마친 전 씨는 “저 같은 죄인에게 소중한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다”며 “너무 늦게 와서 죄송하다”고 말했다. 진정으로 사과해야 할 이는 평생 광주를 능멸하다 숨졌다. 권도현 기자
■대화와 타협 없던 2023 정치판
2023년의 정치는 그야말로 견리망의였다. 국회와 대통령실 사이에는 대화와 타협이 실종된 상태였다. 정치가 없었던 셈이다. 입법기관은 수의 힘으로 법률안을 의결했고, 대통령실은 의결된 법률안을 재의요구 하는 이른바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했다. 세 차례나 반복됐다. 양곡관리법 개정안(4월 4일), 간호법 제정안(5월 16일), 노란봉투법과 방송 3법 개정안(12월 1일). 사진은 지난 5월 30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간호법 재투표를 방청하던 대한간호사협회 회원들이 법안이 부결되자 퇴장하고 있는 뒷모습이다. 간호사의 근무환경과 처우개선에 관한 국가의 책무를 규정하는 내용이 담긴 법안이었다. 대장동과 김건희 여사 의혹을 다루는 연말의 ‘쌍특검’ 법안은 새해 벽두에 또다시 거부권이 행사될 공산이 크다. 박민규 선임기자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반대한다”
후쿠시마 원전이 폭발한 지 12년이 되는 3월 11일 일본방사성오염수방류저지공동행동 회원들이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청사 부근에서 오염수 장기 보관을 요구하는 퍼포먼스를 하는 장면이다. 5개월 후인 8월 24일, 일본은 한국 정부를 제외한 주변국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오염수를 방류했다. 윤석열 정부는 통 큰 양보를 한 것처럼 국내외를 향해 자평했지만, 일본 정부는 한 가지를 더 요구하고 있다. ‘오염수’가 아니라 ‘처리수’라고 말하라는 것. 다핵종제거설비(알프스, ALPS)로 처리한 냉각수라는 주장인데, 그린피스 서울사무소는 일본 정부가 비용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세계 여러 곳에서 제시한 해결책을 외면하고 알프스 처리 방식을 채택했다고 비판했다. 김창길 기자
■영정 속에서 바라보는 홍범도 장군
교과서에서 보고 잊었던 이름이 눈앞에 다시 나타났다. 청산리전투의 영웅 홍범도 장군이다. 육군사관학교가 소련공산당 활동 이력을 문제 삼아 홍 장군의 흉상을 철거하겠다고 결정해 논란이 됐다. 역사를 둘러싼 이념 충돌은 각자의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홍범도 장군을 해석했다. 역사도 견리망의였다. 홍범도 장군 순국 80주기 추모식 및 청산리전투 전승 103주년 기념식이 10월 25일 대전현충원에서 열렸다. 참석자들은 제단 위에 꽃을 놓으며 홍 장군의 업적을 기렸다. 흰 천이 깔린 제단에 하얀 국화를 든 참배객의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그림자와 제단 같은 흑백의 영정 속의 홍범도 장군은 무표정이었다. 조태형 기자
■공사장이 아니라면 어디일까
공사장 사진이 아니다. ‘2023 세계스카우트잼버리’가 열렸던 전북 부안 새만금 간척지의 모습이다. 정식 폐막을 4일 앞둔 8월 8일 스카우트 대원들이 짐을 쌌다. 견디기 어려웠다. 들끓는 벌레와 불볕더위, 열악한 화장실과 샤워장, 그리고 부족한 의료 시설에 태풍 ‘카눈’까지 북상했던 터였다. 150개국 4만여 명의 인원이 참가했는데…. 비난의 여론에 누구 하나 책임지겠다고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한수빈 기자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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