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찾아…하늘로 소풍 떠난 아빠에게[남기자의 체헐리즘]
[편집자주] 수습기자 때 휠체어를 타고 서울 시내를 다녀 봤습니다. 세상이 처음 불편해졌지요. 직접 체험해 알리는 기사를 써보기로 했습니다. 이름은 '체헐리즘', 체험과 저널리즘을 합친 말입니다. 사서 고생하며 깊숙한 이면을 알리고, 가장자리가 보이도록 힘쓰려합니다.
오늘 문득, 아직도 2023년이라는 걸 깨달았어. 아빠가 떠난 지난 5월 10일 이후로 아직 1년도 안 되었다는 걸.
어젯밤 내 꿈에도 특별 출연해 준 아빠였지. 호스피스에 있을 때 버썩 마른 모습만 머릿속에 남아 그런가, 꿈결의 아빠는 영 건강한 모습인 적이 없어.
처음 호스피스 병동에 가서 진통제로 인해 며칠은 '혹시 우리에게 기적이 온 게 아닐까' 싶을만큼 마지막 불꽃 같은 활력을 되찾았었잖아.
다시 집에 가면 건강관리 잘하겠다고. 엄마 없이도 밥도 잘 챙겨 먹겠다고. 아빠의 소박하지만 굳은 결심에도, 퇴원은 언제 하면 좋겠냐던 재촉에도 응원해주고 솔직하게 답해 줄 수 없던 상황이 괴롭고 또 미안했어.
거짓말 조금 보태서 목숨을 건 4월 어느 봄날 산책이 아빠와 나의 병원 생활에 유일한 위로이자 소중한 추억이라 종종 떠올라. 아빠는 하얀 얼굴로 나를 보고 있고, 벚꽃은 속절없이 아름답고.
그날 담배를 무척 피우고 싶어 했었잖아. 평생을 엄마에게 잔소리 들어가면서도 끊지 못했던 담배인데 얼마나 생각났겠어.
근데 병원 근처를 떠날 수 없던 휠체어 위 아빠를 어디로 데려가야 담배를 태울지 막막했어. 각종 약으로 점철된 아빠 몸에 한줄기 담배 연기가 안 좋을까 무서운 마음에 안된다고 다그치기만 했어, 미안해.
의사 선생님이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드라마 대사 같은 말씀을 하실 때도 설마하는 한 줄기 희망은 사라지지 않더라. 아빤 이미 의식이 없었고, 눈을 감고 호흡기에 의지한 채 가슴을 들썩들썩하기만 했는데도.
그래도 그날 밤 놀랍게도 아주 잠깐 번쩍 눈을 떴잖아. 아빠의 옅은 회갈색 눈동자와 선명한 시선을 기억해.
아빠. 아빠가 생전에 자주 듣던 나훈아의 '무시로'를 듣는데 이별보다 더 아픈 게 그리움이래. 그 말이 맞는 거 같아. 그리움이 더 아파. 시간이 흘러도 더, 더, 보고 싶어.
오늘 밤 꿈엔 그런 아픈 모습 말고 나랑 어린이 대공원에 갔던, 아니 아빠 인생에서 가장 빛나던 청춘이었던 멋지고 건강한 그 모습으로 만나자. 엄마도 꼭 데리고 와.
사랑해.
막내딸 올림.
귀여운 남자친구 시절, 더 귀여웠던 새신랑 때 사진들 보며 함께한 7년이란 시간이 너무 소중하게 느껴지더라.
오빠 퇴근하고 오면, 아이랑 이러고 놀았단 얘기만 했었잖아. 오늘은 추운 날 고생했을 오빠 안부를 묻고 싶어. 힘들었을 하루를 걱정했다고. 너무 보고 싶었다고.
오빠, 올해 진짜 고생 많았어.
30년 넘게 남으로 살다, 가족이 돼 나와 아이를 책임지는 오빠에게, 말할 수 없이 여러 감정이 들어.
아이가 먹고 싶단 젤리를 편히 살 수 있고, 좋아하는 만두를 고민 없이 살 수 있고, 오늘같이 추운 날 걱정 없이 보일러를 틀고 따듯하게 지낼 수 있는 건, 오빠가 힘들게 버텨내고 있는 고생 덕이잖아.
오빠가 힘들어할 때마다 올해는 뭔가 잘 안 되는 해인가보다, 내년엔 다 잘될 거다 입버릇처럼 말했잖아. 조금만 버티면 다 잘될 거고 올 한해 고생한 거 다 보상받을 거야.
많이 힘들고 외로웠을 내 남편. 내가 정말 많이 응원하고, 버팀목이 되려 애쓰니까 조금만 더 힘내서 우리 같이, 사랑하는 아들 지켜주자.
처음 만난 7년 전에도, 4년 전 결혼식을 앞두고 콩깍지 최절정이던 그때에도, 그리고 한 아이의 아빠가 된 지금도 여전히 오빠는 나한테 귀여운 존재야.
평생 내 품에서 귀엽게만 지내. 정말 많이 사랑해, 내 남편. 아중이 아빠!
난임 병원 다니고 기간이 길어지며 참 많이도 울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해주는 얘기도 안 들렸지요.
아기가 발이 작아 늦게 찾아온단 말. 그 말도 첨 들었을 땐 위로가 전혀 안 되었어요. 누구는 걱정 없이 어쩌다가 생기기도 하는데 난 왜 이리 힘든 걸까. 부모님들은 기다리는 눈치이신데, 나이도 많은데 점점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아기가 찾아왔어요. 5주4일 첫 초음파 사진을 봤어요. 얼마나 예쁘게 아기집을 지어놨는지 벌써 대견합니다.
벌써 입덧이 시작되고, 몸이 힘들지만, 아기가 잘 있다고 하는 것 같아 뭉클합니다.
사실은 아직 너무 초기라 소문내지도 못했습니다. 하지만 많은 분들께 축복받으면 아이가 더 건강해질 것 같아 자랑해 봅니다. 그리고 10년 동안 저와 잘 살아준 신랑에게도 고맙습니다.
하트야, 8월에 건강하게 만나자. 엄마가 잘해줄게!
항상 고비 때마다 놀랍도록 회복을 잘했잖아. 이번에도 그럴 줄 알았어. 짜잔, 하고 멋있게 말이지. 그래서 며칠 남지 않은 스무 살 생일파티도 당연히 할 거라 생각했어.
밥을 거부하기 시작했을 때 눈치채고 종일 같이 있었어야 했는데. 답답한 병원 말고 집에서 편하게 있게 해줘야 했는데. 눈 감는 순간까지 뾰족한 바늘 꽂아 놨던 게 아직도 너무 아파. 무뎠던 내가, 네 숨이 옅어지는 순간까지 눈치가 없었어. 미안해.
네가 썼던 베개를 지퍼백에 넣어두고 오늘 열어봤어. 아직 너의 냄새가 그대로 남아있더라. 오래 맡고 싶었는데 냄새가 날아가 버릴까 살짝 열어보고는 후다닥 닫았어.
언젠가는 없어질 텐데 지금 냄새를 더 많이 맡아둬야 할까? 아니면 아끼고 아껴 조금씩 맡아야 할까? 아직도 고민 중이야 우습지.
똘아, 모든 게 처음이었던 나에게 와줘서 정말 고마웠어.
네가 없는 시간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여전히 모르겠어. 많이 방황하지만, 20년 동안 네가 나에게 보여줬던 사랑 조금씩 전하려고 노력 중이야. 널 다시 만났을 때 부끄럽지 않도록 좀 더 나은 사람이 되어볼게.
우리 다시 만나면 못했던 스무 살 생일 파티 멋지게 하자. 꼭 다시 만나자.
너무 보고 싶다 우리 애기. 사랑해.
올 한해가 엄마에게 어땠는지 궁금해. 스무 살 이후 처음으로, 일하지 않는 한 해를 보내며 허무하거나 쓸쓸하진 않았는지.
엄마에게 뭘 하고 싶은지, 뭐에 관심 있는지 물을 때마다 "괜찮아, 됐어, 돈 들어"하며 손사래 쳤잖아. 그런 엄마가 답답하던 때도 있었는데. 문득 철이 들고나니 엄마의 삶도 살아보지 못한 내가, 성급히 판단했단 생각이 들었어.
엄마에게 남은 또 다른 삶도 길기에 후회 없이 즐겁게 보내길 바라거든. 그래서 자꾸 이거 해봐라, 저거 해봐라, 잔소리하는 걸 이해해줘.
놀아본 적이 없어 뭘 하고 놀지 모르겠다고 했잖아. 맘 아프게. 키보드 몇 번 치면 원하는 걸 찾을 수 있는 좋은 시대에 날 낳아줬으니, 이 정도는 나도 해주고 싶어서 그래.
엄마가 도예와 난타를 너무 즐겁게 배우러 다니는 걸 보며 나도 너무 기분이 좋더라. 그리고 엄마가 만들어오는 그릇들도 너무 예뻐. 내가 엄마한테 재능이 있다고 했던 건 정말 빈말이 아니거든! 그러니 계속 꾸준히 배워 봤음 좋겠어.
엄마 삶이 호기심과 성취감으로 가득 차기를 누구보다 바라. 원하는 걸 조금만 말해주면 함께 찾아보고 시도해보려 해.
즐거운 마음으로 즐길 취미가 있는 삶이 되도록 나도 항상 응원할게.
파이팅, 사랑해. >_<
30년 공직 생활의 마무리를 준비하고 계신 아버지. 지금껏 가족과 국가를 위해 헌신과 노력해오신 모든 날들에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어요.
매일 아침 일찍 출근하신 아버지의 부지런함엔 더 나은 세상을 위한 고민이, 퇴근 후 사 오시던 아이스크림 봉지엔 아버지의 자식을 생각하는 따뜻한 마음이 담겨 있었겠지요.
아버지 삶이 밝게 빛나던 순간도 있었겠지만, 칠흑 같은 저녁 하늘처럼 어두운 순간도 분명 있으셨을 거예요. 태양이 365일 떠오르고 지고를 반복하듯이.
힘들 때도 단 한 번도 내색하지 않으셨잖아요. 늘 가정의 안정과 직장 동료들에게 선한 영향을 주기 위해 애쓰신 아버지. 아버지야말로 마지막까지 자신이 지닌 여러 빛깔을 뿜고 지는 태양처럼 지난 세월에 최선을 다했던 건 아닐까요.
다가오는 2024년엔,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새로운 삶이 잘 그려지도록 응원할게요. 매일 아침 힘껏 솟아오르는 태양의 기운을 담으시기를. 사랑합니다.
막내딸 소영 올림.
생일, 추석, 각종 기념일, 그리고 연말. 몽땅 싫어했던 날들인데 여기 온 뒤론 좋아졌어요.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아 의미를 모르던 날들이었는데. 여러분들과 함께하며 왜 그토록 소중한 날인지 깨달았어요. 특히나 추위와 외로움을 많이 타는 저에게 연말은 항상 쓸쓸한 기억이 가득했는데, 올해는 처음으로 좋은 기억이 가득해요. 연말이 좋고 한 해를 보내기가 아쉬운 기분이에요. 이리 저를 변화시켜주고 올해 얼마나 행복했는지를 깨닫게 해줘서 고마워요.
우연히 얻은 맹구 인형에게 온갖 소품들을 선물하는 순수한 마음씨를 가졌고, 누군가 써 놓은 메모지 하나도 함부로 버리지 못하고 간직해 놓는 착한 사람들. 그런 여러분을 만나 2023년을 함께 보낼 수 있어서 정말 좋았어요. 올해가 지나더라도 이곳에서의 추억은 평생 간직될 거예요. 곧 다가올 2024년도 우리 잘 지내봐요.
애기가 되어버린 엄마. 어제도 내가 사랑한다고 말했는데 "응~" 해주었지? 아직 내가 누군지 모르고 대답도 "응~"밖에 못하지만 난 그마저도 진심으로 고마워. 생사를 오가며 회복한 걸 잘 아니까.
올 한해 치료받느라, 한 걸음 더 걷느라, 먹기 싫은 약 먹느라, 뒤죽박죽 생각들 정리하고 한마디라도 하느라 정말 고생 많았어.
늘 그렇듯 우리 모두는 엄마가 우리 곁으로 돌아올때까지 최선을 다할거야.
암흑같은 상황에서도 힘을 내게 해줬던 그 말을 하고 싶어.
너무너무 사랑해.
- 엄마 큰딸 선화
나의 2023년은 '고양이의 해'라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아.
우리 집에서 지내게 된 호떡이. 얼마 전 구조해 공방에서 지내게 된 룽지. 비 오는 날 다리를 절뚝거리며 내게 뛰어온 보리. 이제 좀 친해졌다고 엉덩이를 내어주는 치치. 혹독한 추위에 형제를 다 잃고 살아남은 설이. 구내염에 걸린 채로 우리 집 앞에 갑자기 나타난 꾸꾸.
나의 올해를 돌이켜보면 거의 모든 날들에 고양이가 있었더라고. 너희를 보며 나도 많은 걸 배우고 느낀단다. 아픈 친구나 약한 아기 고양이가 있으면 사료를 다 양보해 주고 기다리는 너희를 보면, 사람보다 나은 것 같기도 해.
지난여름 늦은 밤 어린 치즈 냥이를 땅에 묻어줄 때 말야. 나 정말 혼자 무서웠는데, 우연히 뒤를 돌아보니 어디선가 동네 고양이들이 다 나타나서 나를 지켜보고 있더라. 마치 장례라도 치르는 것처럼. 그땐 너희가 사람인가 싶었었어.
나는 365일 너희를 늘 걱정하고 많이 애정해. 내가 해줄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해 너희를 지켜줄게! 다 집에 데려오지 못해서 늘 미안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족한 나를 항상 반겨줘서 진심으로 정말정말 고마워.
앞으로도 오래오래 우리집 곁에 머물러줘, 사랑해!
원래 몸이 약했던 엄마였는데 그 모든 걸 초월하는 엄마의 힘이 생겨났나 봐.
엄마는 늘 너희들이 건강하게만 태어나길 간절하게 기도했어. 어릴 때 크게 아팠던 일이 많아 너희들만큼이라도 건강하게 태어나길 무엇보다도 간절하게 바라왔단다.
다행히 그런 바람을 이뤄준 너희들에게 무엇보다도 감사하네.
올 2월, 정말 안기조차 겁날 정도로 작디작은 너희들이 엄마의 바람대로 건강하게 태어나주었지. 손가락 하나하나 조심스러웠던 너희들인데 지금은 제법 자라주어 스스로 설 수 있게 되어 정말 고마워. 너희들이 태어난 이후의 모든 날들이 엄마에게 얼마나 큰 축복이고 감사함인지, 그저 매번 하루하루가 감사하단다.
늘 고마운 나의 아들딸 너무 사랑해.
그대가 외국으로 떠난 지도 나흘이 지났네. 살면서 숱한 이별을 겪어봤고 또 그대와는 예상했던 이별이지만 이제야 실감이 나서 잠을 잘 못 이루고 있어. 당신은 오늘도 축복받는 크리스마스 되라고 행복하라 연락했지만. 그 연락이 끝나면 다시 내 마음이 허해지고 가슴이 쿵 내려앉더라. 시간이 약일 거야. 6개월이란 시간은 금세 지나갈 거고.
2020년 10월 초 내가 암 선고를 받고 그 새벽에 울며 전화했던 첫 사람. 바로 주경 씨였지. 응급실에서 받은 진단이니 오진일 거라고, 걱정말라던 당신의 흔들리는 음성과 한숨을 생생히 기억해.
우리가 처음 만났던 2019년 가을, 그 후로 지금까지 함께 시간을 이어갈 수 있었던 건, 틈만 보이면 돌아서던 나를 붙잡고 돌려세웠던 당신 덕분이란 걸. 그만큼 당신이 많이 힘들었을 거야. 암 환자라 항암을 계속해 예민하고, 컨디션이 안 좋다는 이유로 모진 말로 가슴에 대못을 박아도 며칠, 몇 달을 기다려주었기에 결국 우린 2023년 연말을 '서로'라는 이름으로 지나고 있네.
함께 있지 못해도 가는 발자취마다 서로를 제일 먼저 떠올리고.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사진을 전송하며 추억을 떠올리고. 읽고 있는 책의 훌륭한 문장을 공유하며 지금을 즐기곤 했지. 그곳이 동해든 서해든 부산이든 제주도든 아니 미국에서도 영국에서도.
영혼을 닮은 사람은 찾기 힘들어 애당초 기대하지 않았었는데. 어렵게 찾아온 당신 같은 소중한 보물에 감사해하지 않고 당연시 여겨서 미안하고 고마워. 크리스마스이브라 성당도 갔고 친구를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가족들과 근사한 곳에서 야경을 보며 식사를 했는데도 외로운 건, 당신이 지금 내 곁에 없어서겠지.
매주 항암을 하러 가며 두렵고 힘들 때도 있지만 병원까지 찾아와 응원해준 특별한 사랑을 떠올리며 견디고 이겨내 볼게. 우리 6개월 후엔 몸도 마음도 더 건강하고 성숙한 모습으로 다시 만나. 사랑해.
네가 쓰러지던 날 새벽 내가 직접 119를 불러주었다면, 지금 너는 몸이 조금 덜 불편했을까? 조금 덜 힘들었을까?
그날의 아픔과 슬픔 그리고 너를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 고작 서른셋에 지주막하출혈이라는 갑작스러운 질병에 그날 너를 잃을까 봐 모두가 초긴장 상태였어. 그저 울다가 기도하는 것밖에 할 수 없었어.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단 생각에 또 슬퍼했었지. 그날 부모님과 우리 세 남매는 참 힘들었어.
업어 키운 내 동생이 잘못될까 봐.
지주막하출혈이 생기면 3분의 1은 바로 사망하고, 3분의 1은 평생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고. 나머지 3분이 1은 잘 지낸다는 말에 우린 그저 제발 살려달라고 빌수 밖에 없었어.
아영아, 네가 기적처럼 깨어나고, 비록 편마비로 불편한 몸이 되었지만 너무 고맙고 기특한 맘이 들어. 살아 있어주어서.
늦어도 뛸 수 없고, 귤 껍질도 혼자 깔 수 없다고. 이전과는 달라 장애를 인정하는 게 너무나 슬프다는 네 말. 그런데 나는 참 이기적이게도, 그래도 네가 살아서 우리 곁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참 고맙고 또 고마워.
큰언니가 대신 아파줄 수는 없지만 넌 정말 언니에게 소중하고 고마운 동생이야. 정말 사랑하고, 너를 축복해.
우리 새로운 2024년에는 조금 더 힘내서 잘 지내보자. 사랑해 아영아.
- 큰언니 소영
그 아기가 조금 커 유치원에서 피아노 연주회를 한다고 하니, 나는 바쁜 부모님을 대신하여 너의 연주회를 갔고,
조금 더 커 중학교 학예회에서 샤이니 춤을 춘다 하니, 나는 바쁜 부모님을 대신하여 너의 학예회를 갔고,
조금 더 커 고등학교 시험 보조 감독이 필요하다고 하니, 나는 바쁜 부모님 대신하여 너의 고등학교에 갔었다.
돌이켜보면 나도 참 어렸을 때인데, 네가 뭐 그리 이쁘다고 내가 부모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난 매 순간, 한 번도 행복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오히려 너의 성장 과정을 온전히 함께 할 수 있어서 좋았어.
너의 26년이 흐른 지금. 앞으로도 너의 시간에 누나가 함께할 수 있기를 바라.
네 길에서 불철주야 열정을 쏟아붓고 있으니 더 열심히 하라고, 더 노력하라고 말하진 않을게. 대신 주변을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웃길.
늘 사랑한다, 내 동생!
뜨거운 여름, 많은 양의 비가 갑자기 쏟아지던 그날. 누나는 어쩌면 그날 시간이 멈춘 것 같단 생각을 할 때가 있어. 우리 왕자님은 이런 누나 말을 듣고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아프겠지만, 앞으로 매해 다시 여름을 맞이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해.
솔직히 말하면 누나는 여전히 자신 없거든. 누나 참 약하고 바보 같지?
근데 있지, 휘동아. 누나는 괜찮아지는 게 아직은 무서운 것 같아. 그게 휘동이에 대한 사랑의 크기의 반증이 아닌데도 그냥 뭐랄까. 괜찮아지면 안 된다는 강박이 있는 걸까? 그래도 휘동이는 누나가 앞으로 잘 지내길 바랄 테고 우리 마지막 인사할 때 휘동이가 그동안 누나 지켜준 게 헛되지 않게 앞으로 더 멋지게 살아보겠다고 약속했으니까.
얼마 전부터는 괜찮지 않음을 인정하고 약도 먹고 의사 선생님 상담도 받으면서 치료를 시작했어. 이게 누나가 휘동이를 잊거나 지우거나 혹은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는 게 아니라 휘동이를 떠올릴 때마다 눈물이 아니라 미소를 짓고 싶어서 용기 낸 거라고 칭찬해줬으면 좋겠어.
매일, 매 순간, 누나는 일을 하고 길을 걷고 누군가와 함께 할 때도 휘동이를 생각해. 출근하는 길에 아침 해가 뜨는 걸 볼 때, 깨끗한 바람이 기분 좋게 불 때, 나뭇잎이나 꽃잎들이 흐트러질 때, 모든 순간에 휘동이가 누나에게 나타나서 함께 하는 거라고 생각해.
기억 저 멀리에 있는 2007년 1월, 우리 가족으로 와줘서 너무 고마웠어. 17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우리 가족으로 지내줘서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어. 누나는 휘동이가 없었다면 버티지 못했을 순간들이 너무 많았거든. 다시 한 번 정말 고마워.
마지막에 누나가 너무 많이 우느라 우리 휘동이한테 사랑한다고 더 말하지 못한 거, 더 많이 쓰다듬어주지 못한 거, 정말 정말 미안해.
우리 꼭 다시 만나자. 영원히 사랑해, 휘동아. 오늘 밤엔 누나 꿈에 꼭 나와줬으면 좋겠다. 보고 싶어 정말.
에필로그(epilogue).
그리고, 더 사랑하고픈나에게 쓴 어느 독자의 편지.
올해 결혼하고 가정을 꾸렸지만, 결혼생활 시작과 함께 큰 경제적 어려움을 겪게 됐어요. 여름부터 급하게 구직활동을 시작했지요. 매번 진심으로 이력서를 써서 보냈고, 여러 회사 면접을 보기도 했는데 늘 마지막 단계에서 떨어지더라고요.
피 말리는 시간을 보내며 뭣보다 저 자신을 오래 힐난했어요.
노력하는 만큼 반드시 이루면서 살았는데. 그게 안 돼 너무 힘들었던 한 해. 잘하려 애쓸수록 더 어긋나는 기분 혹시 아시나요.
그래도 끝자락엔 저 자신에게 수고했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괴로워도 분명 일상을 지키려 최선을 다했으니까요. 남편과 가족들 식사를 챙겼고, 꼬박꼬박 운동을 갔고, 집을 깨끗이 치웠고요. 방황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제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서 했어요.
저를 더 사랑하며, 믿어주는 새해가 되면 좋겠어요. 하루하루 나 자신으로 충분하게 살았다면 그걸로 이미 잘했다고. 너무 다 잘하려고 하지 말라고. 홀로 짊어질 수 없는 문제들이 삶엔 있는 거라고. 저, 희경이에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얼마 전 크리스마스 날, 동네에 함박눈이 내렸어요. 분리수거장에 내려갔는데 누군가가 귀여운 눈사람 가족을 만들어뒀더라고요.
내년엔 딱 이만큼의 여유와 화목함을 누리며 살고 싶어요.
남형도 기자 hum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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