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석 "최민식·박해일 보다 더 부담스러운 존재는 이순신 그 자체" [N인터뷰]
(서울=뉴스1) 정유진 기자 = '이순신 3부작'의 마지막 작품, '노량: 죽음의 바다'(이하 '노량')의 백미는 김윤석이다. 이순신 장군의 최후를 그린 이 영화에서 김윤석은 전작들이라 할 수 있는 '명량' 최민식과 '한산: 용의 출현'(이하 '한산')의 뒤를 이어 이순신 장군을 연기했다. 동료 배우들로부터 "이순신 그 자체"라는 찬사를 받은 김윤석은 실제 죽음을 앞두고도 승리를 위해 사력을 다한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을 비장하게 연기했다. 최근 만난 김윤석은 감기에 걸려 목소리가 잠겼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연기하고 경험한 이순신과 노량해전에 대해 막힘 없이 이야기를 쏟아내며 영화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을 드러냈다.
"영화를 찍고 2년이 넘었어요. 여름에 개봉하느냐 겨울에 개봉하느냐를 가지고 말들이 많았어요. 아무래도 3부작의 마지막이고 노량해전이 겨울에 일어났던 전쟁이고 그 전에 '명량'이나 '한산: 용의 출현'은 여름 전쟁이에요. 겨울 전쟁에 맞게 개봉하고 싶었어요. 심지어 돌아가신 날하고 며칠 차이로 개봉을 하게 됐네요. 아주 감개무량한 마음도 있고 떨리는 마음도 있어요."
실제 '노량: 죽음의 바다'의 개봉일인 12월20일은 실제 노량 해전이 있었던 12월16일과 최대한 가까운 날을 잡아 성사된 날짜다. 개봉을 하는 날짜까지 고려하는 김한민 감독과 제작진의 정성어린 마음이 반영된 듯해 사뭇 감동적이다.
"'명량'과 '한산'이 나왔을 때 '아 이 사람이 이제 '노량'까지 가겠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명량'에서 끝날 줄 알았는데 '한산'을 기어코 만들어내고. 그렇다면 노량 해전이 어떻게 보면 가장 중요한 해전이에요. 그런데 그 작품이 저에게 왔을 때 굉장히 부담스럽기도 하고 호기심이 있었어요. 노량 해전을 어떻게 볼 것이냐. 시나리오를 봤는데 역시나 훌륭하다고 생각했어요. '명량'은 명량 해전, '한산'은 한산 해전, '노량'은 노량 해전이라고 하기 전에 들어가는 것이 7년 전쟁의 의미, 명나라까지 나와서 3국의 입장이 들어가 있고 명과 조선, 왜의 관계가 뒤어켜 있죠. 저는 이 드라마의 밀도가 좋았어요."
'노량'을 끝으로 이순신 트릴로지는 막을 내린다. '명량'에서는 최민식, '한산'에서는 박해일이 이순신을 연기했고, 김윤석은 두 배우의 배턴을 이어받아 대미를 장식한다.
"앞서 두 분이 너무 훌륭하게 작품하셨는데 더 부담스러운 건 이순신 장군 자체에요. 두 배우와 저는 똑같은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그 앞에서 매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죠. 이신전심으로 서로 '수고가 많습니다'라고 애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했죠.(웃음)"
부담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영화 출연을 앞두고는 '왜 출연해야 하는가'를 두고 고민했다. '명량'과 '한산'에서 이미 이순신의 모습이 충분히 드러났기에 "내가 굳이 나올 필요가 있나"라는 생각을 했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에 출연했던 것은 '끌림' 때문이었다.
"김한민 감독님이 시나리오로 러브레터를 보냈어요. 제가 읽고 감독님과 하루 만나서 전체 브리핑을 받았어요. 감독님이 시나리오의 모든 장과 모든 페이지, 한 장 한 장을 넘기면서 왜 이 장면을 넣었는지 설명을 다 해주셨죠. 거기 자리에 나갔다는 것은 이 작품에 매력을 느꼈다는 거예요. 아니면 만나지 않았겠죠. 그 날 하루 한 모든 브리핑이 (영화 촬영이)끝날 때까지 유지가 되더라고요. (감독의 연출 의도에)충분히 공감했고 이런 선택을 하셨구나 싶었어요. 깊이 공감해서 그때부터는 우리는 오로지 이 작품을 훌륭하게 완성을 내는 수밖에 없다 결론을 내렸죠."
앞서 김윤석은 '노량'의 언론배급시사회에서 영화 출연 전 최민식, 박해일로부터 들은 얘기가 있느냐는 질문에 "내려놓고 기도해라(라는 말을 들었다)"라고 답을 한 적이 있었다. 그는 "사실 그렇게 얘기하지 않았다, 질문을 던진 기자 분이 그렇게 물었는데 (최민식, 박해일과 서로) 연락을 한 적이 없으니까 기자 분이 무안할 것 같았다, 그래서 그냥 다 내려놓고 기도하자 하는 내 심정을 얘기했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그분들도)같은 심정이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이 자리를 빌려서 심심한 사과를 드립니다. 그날의 진실은 이거였습니다."
이번 영화는 이순신 장군의 생전 마지막 해전을 담고 있는 작품인 점에 의미가 있다. 김윤석은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라는, 전설처럼 내려오는 유언을 자신이 하게 될 줄은 몰랐다고 했다. 영화 '1987'에서 박처장 역을 통해 그 유명한 '탁 하고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대사를 하게 될 줄 몰랐던 것과 같았다.
"영화 '1987' 때 '이 대사를 내가 하게 되다니' 했었어요. 그것과 똑같은 심정이었어요. 이 대사를, 이 마지막 유언을 내가 하게 되다니 했었죠. 과연 장군님이라면 어땠을까. 가장 치열한 전투의 정점의 순간에 그렇게 되셨어요. 그 순간 최대한 방해되지 않게 말하고 끝내겠다는 생각 하나를 가지고 이 대사를 쳐야겠다 싶었죠. 내 인생은 이랬고 나의 삶은 어땠고 이런 얘기를 할 시간이 없었어요. 아군의 사기가 떨어지지 않고, 나 때문에 몰려와 군사들이 비어 있어서 적의 공격을 당하면 안 되니까 최대한 정확하게 제 의사를 빨리 전하고 전쟁에 임하도록 해야한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연기했었죠."
이번 영화 속 이순신에서 가장 인상깊게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은 외롭고 괴로운 이순신 장군의 내면이다. 영화 속에서는 아들 면(여진구 분)이 죽는 장면을 반복해서 꿈으로 꾸는 이순신의 모습, 떠나간 장수들을 떠올리는 이순신의 모습을 통해 그가 견뎌내야 했던 고통을 가늠해 볼 수 있다.
"'노량'은 장군님이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어요. 명량해전과 노량해전 사이가 가장 힘들었다고 하더라고요. 7년 전쟁의 마지막에 함께 한 장수들이 너무 많이 죽었어요. 왼팔 오른팔이라고 생각한 장수들을 잃었죠. 한산대첩에서의 패기와 명량해전에서의 극도의 힘과 신념들을 다 거치고 난 이후에 노량해전에서 홀로 외로이 있는 장군, 고독하게 이 전쟁을 의미를 어떻게 종결시킬 것인가 고민했던, 그것이 그분의 모습이었어요."
인고의 시간을 거쳐, 영화는 개봉했고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다. 최근 천만을 돌파한 영화 '서울의 봄'에 이어 역시 그에 버금가는 흥행을 할 수 있으리라는 예견이 나오기도 한다.
"감기에 걸린 제 모습을 보고 김한민 감독이 '상서로운 징조다' '좋은 일이 생길 징조다' 하더라고요. 지독한 인간이구나 이 사람은, 싶었어요.(웃음) 이순신 장군에 관해서 김한민 감독님만큼 많이 아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아요. 모르는 게 하나도 없거든요. 가족부터 해서 부하 장수들의 가족까지 다 알고 있고 뭘 물어보면 막히는 게 없어요. 다 얘기해요."
김한민 감독에 대해 이야기 하는 김윤석의 얼굴에는 감탄이 서려있었다. 이순신 트릴로지에 정성을 쏟는 김한민 감독의 일편단심은 이미 유명하다. 배우일 뿐 아니라 그 자신도 완성도 높은 데뷔작('미성년')으로 호평을 받은 신인 영화 감독인 김윤석은 "감독의 시선으로 본 김한민 감독은 어떠냐"라는 질문에 "정말 배짱이 좋다"고 칭찬했다.
"지긋이 기다리면서 하나하나 이뤄나가는 모습을 볼 때 역시 저 사람도 굉장히 대단한 감독 중 한 사람이구나 싶었어요. 하나하나, 화살 쏘는 모양 하나까지 급한 와중에도 차분히 얘기하고 얘기하면서 뜯어고치면서 가고, 차근차근 만들어나가는 모습을 볼 때 감탄했죠. 감독이 가져야 할 능력 중에서 끈기가 가장 중요한 부분이에요. 그 부분에서 높이 평가합니다."
영화를 찍으면서 김윤석은 무거운 갑옷 탓에 본의 아닌 '코피 투혼'을 펼치기도 했다. 그는 "코피가 왜 나지? 하며 잠깐 쉬다 하자고 하다가, 쉬었는데도 코피가 멈추지 않았다"면서 무거운 갑옷과 투구의 압박으로 촬영 중 코피를 쏟아냈던 일화를 밝히기도 했다.
"의사가 정상 혈압이 될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어요. 정상 혈압이 되니까, 오늘은 그 옷을 입으면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대표로 한 번 (코피 투혼을)해줬습니다. 장군님이 해야지 누가 하겠습니까.(웃음)"
이번 영화로 김윤석은 새삼스럽지만 이순신 장군의 위대함을 다시 한 번 되새겼다. 구국의 횃불, 민족의 성웅인 줄은 알았지만, 인간으로서의 이순신 장군에 대해서는 잘 몰랐고, 연기를 통해 그의 치열했던 내면을 경험하며 다시 한 번 '위대한 인간'의 면모를 목도했다.
"이분은 초인에 가까운 사람이구나. 초인의 능력을 타고난 사람이라기 보다는 초인적인 정신력으로 버틴 사람이구나. 어쩜 저렇게 외로운 상황에서 저렇게 하셨을까 싶어요. 적들에게 모함을 받은 게 아니라 아군들에게도 질시를 받고 하는 이 상황을 다 견뎌냈다는 것은 초인같은 정신력이 아니신가 싶습니다. 영화가 얘기하고자 하는 부분은 이것인 것 같아요. 참된 새로운 시작을 위해서는 올바른 끝맺음이 필요하다. 진정 새로운 시작을 위해 올바른 끝맺음이 필요하다. 이것 만큼은 잊지 않아야 할 것 같네요."
eujenej@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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