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난 것도 기적인데, 세상엔 대단한 일이 더 많다···‘우리들은 기적으로 되어있다’[오마주]
아이카와 가즈키(다카하시 잇세이)는 도시문화대학의 동물행동학 강사입니다. 늘 터질듯이 꽉 찬 빨간 배낭을 매고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죠. 그는 지각이 잦습니다. 게을러서는 아닙니다. 출근하는데 남들보다 시간이 더 오래 걸리기 때문입니다. 가즈키의 출근길은 호기심 많은 어린이의 등굣길 같거든요.
그의 눈에 자연은 늘 흥미진진한 사건들로 가득합니다. 조금 가다가 강에서 꽉꽉 울며 헤엄치고 있는 오리를 보면 잠깐 멈춰야 하고, 또 조금 가다 거미줄로 큰 집을 짓고 있는 거미를 만나면 살펴봐야 하니 당연히 출근이 늦어질 수밖에 없죠. 바람을 맞으며 나무 사이를 가로지르는 그의 표정은 세상에서 제일 행복해보입니다. 2023년 마지막 ‘오마주’ 추천작은 일본 드라마 <우리들은 기적으로 되어있다>입니다.
<우리들은 기적으로 되어있다>는 2018년 일본 KTV에서 방송된 10부작 드라마입니다. 드라마는 ‘자연 덕후’인 가즈키가 동물행동학 강의를 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가즈키는 사람보다 동물이, 자연이 편한 사람입니다. 동물에 관해서라면 어린아이와도 한참을 즐겁게 대화할 수 있지만, 일이 끝나고 ‘한잔 하자’는 동료의 제안은 단호하게 거절합니다. 수업이 끝나고도 해야 할 일이 많거든요.
가즈키가 몰두하는 문제는 이런 것입니다. 숲을 관찰하다보니 사람이 만든 길을 경계로 한 쪽 편에는 다람쥐들이 먹이를 먹은 흔적이 있고, 다른 쪽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나무 열매 같은 먹이는 양쪽에 똑같이 있는데도요. 가운데 있는 길이 마치 벽인 것처럼 넘어가지 않은 것입니다. 폭이 고작 3m인 길을 왜 건너지 못했을까. 건너지 못한 것일까, 건너지 않은 것일까. 가즈키는 혼자 야키니쿠를 구워먹으면서 다람쥐를 위한 다리를 어떻게 만들면 좋을지 계속 고민합니다.
그럼 <우리들은 기적으로 되어있다>는 자연밖에 모르던 사회성 부족한 주인공의 성장기일까요?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가즈키는 어릴 적 남들처럼 “시키는대로 하지 못하는” 자기 자신이 너무 싫어 매일 엉엉 울었습니다. 그래도 가즈키를 사랑하는 주변 사람들은 그를 바꾸려 들지 않습니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죠. 어린 가즈키는 수업 시간에 날아다니는 파리를 관찰하는데 푹 빠져서 자기도 모르게 교실을 돌아다닙니다. 선생님한테는 크게 혼나지만, 그 이야기를 들은 할아버지는 “그래서 파리 다리는 몇 개 였느냐”고 묻습니다. “6개”라고 하자 “대단한 발견이네”라며 씩 웃어주죠. 다정함과 자연에 기대 자란 가즈키는 천천히 자기 자신과 친해집니다. 자기를 좋아하게 되죠. 그리고 “괴로운 감정도 빛이니까. 앞으로도 내 안에 있는 빛을 넓혀 나갈거야”라고 말할 수 있는 어른이 됩니다.
드라마는 싱그러운 장면들로 가득합니다. 반려거북 조지가 느릿느릿 숲을 산책하는 장면. 가즈키가 거대한 나무에 볼을 대며 눈을 감는 장면. 드라마를 한참 보다보면 어디선가 흙 냄새가 나는 것만 같습니다.
그런데 무엇이 기적이냐구요? 스포일러여서 자세하게 쓰긴 어렵지만, 가즈키의 대사로 대신하고 싶습니다. 사실 이 시리즈를 올해 마지막 OTT 추천 콘텐츠로 선정한 것도 이 대사 때문이거든요.
“…아무튼 선조 대대로 기적적인 일이 일어났기에 내가 존재한다는 겁니다. 그건 정말 엄청난 일입니다. 태어난 것도 대단한 일인데 이 세상에는 대단한 일이 아주 많아요. 내가 아직 모르는 일도 아주 많습니다. 대단해요.”
새해가 된다고 우리가 갑자기 새로운 사람이 되지는 않겠지요. 그래도 나름의 답을 찾아가며, 결국에는 자기 자신을 조금 더 좋아하게 되는 다정한 해가 되길 바랍니다. <우리들은 기적으로 되어있다>는 웨이브, 왓챠, 티빙에서 볼 수 있습니다.
산책 지수 ★★★★★ 잠깐이라도 걷고 올까
밥 지수 ★★★★★ 가즈키가 계속 먹는 매운 오이무침은 무슨 맛일까
김한솔 기자 hanso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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