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에 은둔한 쇠약한 노부부가 학대받은 개로부터 받은 놀라운 선물[책과 삶]
클로디 윈징게르 지음Ⅰ김미정 옮김Ⅰ민음사Ⅰ396쪽Ⅰ1만8000원
국내 첫 소개되는 프랑스 작가 윈징게르
“나이듦은 미지의 세계를 향한 탐험”
소설가인 ‘나’ 소피와 남편 그리그는 ‘추방당한 숲’에 사는 노부부다. ‘부아바니’ 숲은 이름 자체가 추방당했다는 뜻이다. 이들은 젊은 시절부터 도시를 떠나 프랑스의 한 산속으로 들어왔다. 추방을 자처한 것. 소피는 숲을 느끼고 글을 쓴다. 그리그는 책에 파묻혀 고립되어 버렸다. 숲, 글과 책에 둘러싸인 노부부는 지구를 걱정하면서 르몽드 신문을 구독한다. 무엇보다 노부부는 점점 쇠약해져만 간다. 어느 날 목줄이 끊어진, 성적 학대의 흔적이 있는 개 한마리가 나타난다. 노부부의 삶은 흑백에서 컬러로 변한다.
프랑스 소설가 클로디 윈징게르(사진)는 한국에 처음 소개되는 작가다. 1940년생인 그는 히피문화가 한창이었던 1965년 배우자와 함께 새로운 삶의 형태를 실험하고자 소비 사회를 떠난다. 이들은 프랑스 알자스 지방의 보주 산맥에 있는 방부아 숲속 낡고 오래된 집에서 양을 기르며 살고 있다. 그곳에서 60년 넘게 살며 예술활동을 해왔다. 두 사람은 실제로 숲에서 양을 기르며 자급자족에 가까운 생활을 했다. 계속 글을 써온 윈징게르는 2010년 60세에 들어 본격적인 소설가로 데뷔했다. 내놓는 작품들은 주요 문학상 후보에 올랐고 이번에 한국에서 번역 출간된 <내 식탁 위의 개>는 2022년 프랑스 4대 문학상 중 하나인 페미나상을 수상했다. 이번 소설은 작가의 자전적 내용이기도 하다.
노부부 앞에 나타난 개는 처음에는 사람을 피하는 듯하다가 나중엔 드러누워 배를 보여준다. 개의 생식기는 처참히 찢긴 채 진물과 말라붙은 피로 얼룩졌다. 뱃가죽은 멍이 시커멨다. 소피는 불안에 떠는 개에게 말한다. “내가 여기 있단다.” 노부부는 개에게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 <율리시스>의 마지막 문장에서 따온 ‘Yes(예스)’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삶에 대한 긍정과 안정을 담은 이름이다. 소피는 ‘예스’와 눈이 마주쳤을 때 ‘인간과 개’의 관계를 생각한다. 소피는 ‘예스’가 믿을 수 없을 만큼 대등한 태도로 자신을 쳐다봤다고 했다. 인간이 다른 종보다 우월한 게 아니라 그냥 다를 뿐이라는 것.
노부부와 개의 우정, 나아가 사랑으로까지 확장되는 감정은 한 침대에서 뒹구는 장면들에서 충만해진다. 노부부는 신문지를 모아 침대를 만든다. “침대에 한데 모여, 그런 순간이면 우리 셋이 같은 배낭 안에 담긴 기분을 느꼈다.” 왼손이 닿는 곳에는 “어린 시절 친구이자 쇠약한 나의 형제이며 기진한 노인” 남편 그리그가, 오른손이 닿는 곳에는 “넘치는 기운에 감전될 것만 같은 털로 뒤덮인 인간 아닌 존재” 예스가 있었다. “나는 둘 사이에 누운 채 상식적이지 않은 그 상황에 종 사이의 경계에 대해 생각하며 홀로 웃고 있었다.” 노부부는 오랫동안 각방을 써왔다. 예스 덕분에 함께 눕게 된 것. 육체적 사랑의 언어도 나눈다. 예스 덕분에 그리그는 서재에서 나와 집 밖으로 나가기 시작한다.
소설에 긴박한 사건은 없다. 기승전결 구조도 아니다. 개의 등장은 분명 이 소설의 출발점이지만 소설은 그저 소피의 독백에 따라 노부부의 일상과 사유를 보여준다. 노부부의 깊은 사유는 인간과 동물의 관계부터 기후 재앙과 책의 위기, 그리고 노화까지 이어진다. 삶을 관통하는 사유들은 일견 소설의 형식을 뛰어넘어 철학과도 맞닿는다. 여러 문장들은 시적 언어처럼 섬세하다.
개 예스만큼이나 많이 등장하는 이야기는 ‘나이듦’에 관한 사유다. 소피는 나이듦을 미지의 세계를 향한 탐험으로도 표현한다. 꽃이 시들어가는 과정을 일부러 지켜보면서 늙어가는 인간을 생각한다. “꽃들의 단호한 변모 과정과 그들이 조금이라도 더 살아남으려고 절망적으로 노력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다. 아름다움의 비밀이 이미 까발려졌지만 그것을 여전히 내려놓지 못하는 모습을. 비통하기 이를 데 없는 과정이었다. (…) 꽃의 내면과 나의 내면이, 꽃의 몸과 나의 몸이 구별되지 않았다.” 노화를 느끼는 1인칭 관점의 문장들도 가감이 없다. “나는 나를 질질 끌며 살아가고 있었다.” “찌부러졌다. 손상됐다. 쪼그라들었다. 키가 10㎝ 줄어들어 162㎝밖에 안 됐다. 이러다가는 곧 보이지도 않을 판이었다.” “내 몸은 굽었다. 후들거린다. 비틀거리기도 한다. 조금도 모범적이라 할 수 없는 식생활 탓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모범이 다 무슨 소용인가.” 늙고 병들어가는 남편을 다독이는 아내의 위로도 담백하다. 고통으로 온몸이 경직되는 남편에게 소피는 “그냥 흘러가게 놔둬. 내려놓자. 당신 자신을 놓아줘”라며 안아준다.
작가는 숲으로 ‘추방당한’ 삶을 살면서도 세상을 향한 고민을 잊지 않는다. 신문지로 만든 침대에 누우면서 소피는 “우리는 날마다 바닥을 치는 세상의 뉴스들, 그 다음날이면 대체되는 새로운 뉴스들 위에 잠들었다. 그 위에 몸을 뉘었고, 그것들을 경멸했다”고 되뇌었다. 그리그는 소설을 쓰는 소피에게 “사람들이 당신이 쓰는 글이 거짓말인지 진실인지 전혀 모르지. 이제 모든 게 망하는 중이고 출판사도 서점도 책도 자취를 감추게 될 텐데. (…) 모두 추락하는 중인데 무엇 때문에 여전히 글을 쓰는 거야?”라고 묻는다. 소피는 생각한다. “나는 여전히 글쓰기를 믿는가?” 텍스트의 위기를 말하는 노부부이지만 남편은 책을 읽고 아내는 글을 쓴다. 이들은 신문을 두 개나 구독한다.
소설에는 ‘불타는 숲’ ‘죽어가는 바다’ ‘녹는 영구동토층’ ‘미세먼지’ 등 여러 기후위기 장면과 함께 지구는 과연 계속 존재할 수 있을지 묻는 여러 질문들도 오간다. 기후위기든 텍스트 위기든 무너져가는 세상 속에서도, 소설 말미에 예스가 사라지고 나서도 소피는 나즈막히 말한다.
“눈가에 눈물이 맺힌 채로도 나는 끄떡없이 글을 쓴다.”
임지선 기자 visi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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