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성매매 시킨 어머니를 죽였다”…막장 근친살해에 공명한 까닭 [나쁜 책]
인간이 저지르는 최악의 범죄는 ‘친족 살해’일 겁니다. 특히 어머니를 살해하는 범죄는 용납 불가능한 금기였습니다. 공개석상에서 그런 얘기를 꺼내는 것부터가 터부시되었지요.
스페인에선 좀 달랐습니다. 어머니를 죽이는 잔혹한 장면을 묘사했던 끔찍한 소설이 평단과 대중에게 호평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이 책을 쓴 작가는 1989년 노벨문학상까지 받았습니다.
스페인 대문호 카밀로 호세 셀라의 소설 ‘파스쿠알 두아르테 가족’입니다. 이 책을 원작 삼은 영화는 칸영화제 남우주연상까지 받았습니다. ‘돈키호테’ 이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읽힌 스페인 장편소설 ‘파스쿠알 두아르테 가족’을 들여다봅니다.
두아르테는 회고록에서, 자신의 삶을 차분하게 돌아봅니다. 스페인 작은 마을 바다호스(Badajoz)에서 태어난 두아르테는 폭력에 노출된 불행한 유년을 보냈습니다. 부모는 그에게 불행을 가르치는 악인들이었습니다.
‘짐승’인 아버지는 혁대 버클로 소년 두아르테를 후려 팼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깽판을 치며 자신과 아들을 때린 남편에게 키스를 해주었지요. 소년 시선으로 이해 불가능한 가정이었습니다.
어느 날, 두아르테의 막냇동생 마리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사고가 터집니다. 두아르테의 부모는 돼지를 집안에 대충 풀어놓고 키웠는데, 마리오가 돼지에게 두 귀를 뜯어먹히는 참극이 벌어진 겁니다.
제대로 된 치료는커녕, 어머니는 마리오에게 약만 대충 발라줍니다. 그리고는 마리오가 불결하다며 바닥에 음식을 던져주고 그냥 바닥에서 키웁니다. 어린 마리오는 얼마 후 항아리에 거꾸로 빠져 죽은 채 발견됩니다. 학대 속에 방치됐던 동생 마리오가 어이없는 모습으로 사망한 겁니다. 무력했던 소년 두아르테는 그때부터 어머니의 모성을 강하게 의심합니다. 어머니는 눈물을 보이지 않았으니까요.
◎ ‘어머니는 아들(마리오)의 죽음에도 역시 울지 않았습니다. 어린 것(마리오)의 불행을 위해 흘릴 눈물조차 남아 있지 않을 만큼 심장이 굳어버린 여자, 그 여자가 내 어머니였습니다. 내가 언제부터 마음속에서 그녀를 어머니로 생각하지 않았으며, 또 언제부터 우리가 서로 원수가 되었는지를 분명히 해 두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증오란 자기와 비슷한 사람을 향할 때만큼 지독할 수 없고….’ (60~61쪽)
두아르테와 어머니는 아버지를 진정시키려 벽장에 가뒀습니다. 이틀이 지나자, 벽장 안이 조용했습니다. 벽장 문을 열자, 아버지는 바닥에 쓰러진 상태였지요. 그런데 아버지를 본 어머니 반응이 또 기이합니다. “검붉은 혀를 절반 정도 내민 (아버지의) 얼굴”(54쪽)을 보며 미소를 지었습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요. 두아르테의 어머니는 왜 가족의 연이은 죽음에도 분노하거나 절망하지 않는 걸까요. 가족의 죽음이란 거대한 상실 이면에서, 어린 두아르테의 분노는 커져만 갑니다.
상실을 거듭하면서, 두아르테는 롤라와 사이가 멀어지기 시작합니다. 악담과 욕설이 둘 사이에 거미줄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두아르테는 자신이 ‘집’이라는 이름의 불행한 거미줄에 걸렸음을 알게 됩니다. 그토록 경멸했던 자신의 부모를 닮아가고 있었으니까요.
집에 오니, 롤라가 어두운 낯빛으로 이런 말을 하네요. “나는 아이를 낳을 거예요.” 상간남이 누구인지 무섭게 추궁하니, 롤라는 두아르테의 여동생 로사리오의 남자친구가 아이의 생부(生夫)라고 실토합니다. 두아르테 자신이 가장 싫어했던, 바로 그 자식이었습니다.
두아르테는 자신의 어머니가 며느리 롤라에게 ‘포주(抱主)’ 노릇을 했기 때문이라고 확신합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아내가 죽어 있었습니다. 첫 번째 살인에 이어, 불륜남 그 녀석도 두아르테의 손으로 숨이 끊어져 버립니다. 두 번째 살인이었지요.
검거된 두아르테는 28년형을 받았습니다. 광기로 물들었던 자신의 유년, 그리고 성인이 되어서도 자신을 괴롭힌 어머니. 그 모든 일의 시작이 자신의 어머니 때문이라고 두아르테는 확신합니다.
◎ ‘죽음에 대한 생각은 언제나 늑대의 발걸음처럼 느리고 구렁이의 몸놀림처럼 징그럽게 다가옵니다. 우리를 완전히 미쳐버리게 하고 아주 슬프게 하는 광기는 언제나, 마치 안개가 평원을 공격하듯, 결핵이 폐를 공격하듯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서서히 도착합니다. 어느 날 사악함이 나무처럼 자라고 살쪄서….’ (172쪽)
그리고는 이어 바로 그 논란의 장면이 시작됩니다. 차마 옮겨적을 수 없는 ‘모친 살해’ 장면 말입니다. 숨을 거둔 두아르테의 모친은 유죄일까요, 무죄일까요.
이 책은 출간 즉시 금서로 지정됩니다. 정동섭 전북대 교수 설명에 따르면, 소설 ‘파스쿠알 두아르테 가족’은 “내용이 불량하고 미풍양속을 해친다”는 이유로 큰 논쟁을 일으켰습니다. 당대 유명했던 스페인 대표 작가 피오 바로하(1872~1956)는 당시 신예였던 카밀로 호세 셀라가 이 책의 서문을 써달라고 부탁하자 이런 답변을 보내며 거절했습니다. “만일 자네가 감옥에 가고 싶다면 혼자 가게나.”
당대 기준으로도 아들이 어머니를 죽이는 소설을 이해할 순 없었을 테니까요.
당대 스페인 독자들은 이 끔찍한 소설에 왜 열광한 걸까요. 당대 스페인의 모든 독자들에게만 유독 자신의 어머니를 향한 증오심이 있었던 걸까요.
그럴 가능성은 적습니다. 작품의 성공이란, 인간의 힘으로는 풀리지 않는 복잡성의 함수에 가깝습니다. 대중적으로, 또 비평적으로 찬사를 받은 작품은 반드시 표면으로는 보이지 않는 사회 내부의 기저 심리, 일종의 금기시됐던 무의식을 건드릴 때라야 가능하다는 건 널리 증명된 사실입니다.
이 모든 정보를 종합해보면, ‘파스쿠알 두아르테 가족’의 성공은 이런 명제가 가능해집니다. ‘작가 카밀로 호세 셀라의 소설 ‘파스쿠알 두아르테 가족’은 당대 스페인 시민들 내면의 심리적 무의식 중 한 부분을 강하게 건드렸다.’
‘파스쿠알 두아르테 가족’엔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던 걸까요. 이를 위해선 당대 스페인을 휩쓸었던 사건, 당대 스페인 2000만 시민의 심리에서 충격적인 내파(內破·implosion)를 일으킨 사건, 즉 ‘제2차 세계대전 최종 예행연습’으로 불리는 스페인 최악의 전쟁 스페인 내전(1936~1939)을 되짚어야 합니다.
스페인 내전이란, 프란치스코 프랑코가 이끌었던 군부가 쿠데타 반란을 일으켜 벌어진 참극입니다. 프랑코의 군부는 우파진영을 대표했고 반대진영인 공화파는 공산당과 아나키스트 등 좌파였는데, 이 전쟁은 당대 이데올로기의 전장(戰場)이라고 불릴 정도로 복잡한 양상 속에서 전개됐습니다.
폭력이 폭력을 제압하고, 억눌린 폭력이 다시 상대의 폭력을 진압하는 양상이었습니다. 내전 결과 프랑코의 군부가 승리하면서 스페인은 긴 독재의 암흑기로 돌입합니다.
이때, 스페인 내전을 통해 당시 스페인 국민 2100만명 중 100만명이 사망했습니다. 스페인 시민들은 1936년부터 1939년까지 벌어진 유혈사태 속에서 오직 생존만을 구걸해야 하는 처지였습니다.
두아르테의 부모는 폭정으로 시민들을 제압했던 프랑코와 다르지 않습니다. 모든 폭력의 원인은 두아르테의 부모에게 있었으니까요. 이 모든 죽음에 책임을 지닌, ‘미친 개’에 물린 두아르테의 부친은 현실의 프랑코정권 자체입니다. 자식에 대한 부양의무를 다하지 않고 온정과 사랑 대신 무책임한 삶의 태도로 일관한 두아르테의 모친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지요.
반면, 돼지에게 두 귀를 먹혀버린 남동생 마리오는 독재 치하에서 귀를 닫아야 했던 시민들의 처지와 다르지 않습니다. 두아르테와 그의 어린 동생들은 폭력의 악순환을 불러일으키는 지배 이데올로기에 복종해야 했고, 그런 삶 속에서 각자도생을 도모해야만 했습니다. 스페인 시민들처럼 말이지요.
따라서 불행을 유산처럼 물려주었고, 증오를 좌우명처럼 가르친 두아르테의 어머니는, 그런 점에서 두아르테의 눈에 ‘유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책은 일단 두아르테가 교수형 직전 감옥에서 쓴 회고록(A)이 이 책의 중심을 이룹니다. 회고록은 ‘로페스’라는 이름의 귀족에게 발송되는데, 두아르테가 로페스에게 쓴 편지(B)가 A보다 앞서 서술됩니다. 또 A를 읽은 귀족 로페스가 “이 회고록을 불태워버리라”고 명령한 유언장(C)이 있습니다.
여기에 추가로, 회고록(A) 전체를 옮겨쓴 필사자의 메모장(D), 두아르테가 남긴 네 줄짜리 쪽지(E)까지 한 권의 책에 담아내고 있습니다. 이 책의 독자는 마치 형사사건 기록물을 들춰보는 듯한 프로파일러가 되는 착각까지 들 정도이지요.
꽤 입체적인 구성이지요. 이 모든 정보를 종합하면, 소설엔 또 하나의 비밀이 숨겨져 있습니다.
그런데 책의 메모에 따르면, 두아르테는 모친살해의 죗값으로 1935년(혹은 1936년)까지만 감옥에 갇혀 있다가 풀려납니다. 무려 세 명을 살해한 데다 재범인데도, 고작 약 13년 만에 자유의 몸이 된 겁니다. 그러나 두아르테는 결국 1937년 교수형에 처해집니다.
두아르테가 감옥에서 나온 1935년(혹은 1936년)부터 1937년까지 약 1~2년간의 공백기가 발생한다는 얘기입니다. 책의 문장을 촘촘히 살펴보면, 두아르테가 교수대에 목이 매달린 진짜 이유는 모친살해가 아니라 한 지주의 살인사건 피의자였기 때문으로 추정됩니다.
두 차례의 교도소 수감(①과②)을 통한 두아르테 교화는 불가능했고(제도의 실패), 교도소 시절 두아르테를 아끼며 교육했던 가톨릭 사제도 그의 재범을 막지 못했습니다(영성의 실패). 사회의 제도도 종교의 영성도 폭력의 발생을 제지하지 못했다는 점이 ‘파스쿠알 두아르테 가족’에 숨겨진 또 하나의 깊은 주제입니다.
결국 두아르테의 실패는 한 선량한 시민의 실패이며, 나아가 ‘인간의 실패’라는 주제를 형성합니다.
‘파스쿠알 두아르테 가족’은 스페인에서 전후문학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시기는 좀 다르지만, 한국의 6·25전쟁 이후 가장 성공적으로 평가받는 책 최인훈의 ‘광장’처럼 말이지요.
두아르테의 살인과 이명준의 자살이란 점도 방향이 다릅니다. 인간성을 잃어버린 세계에서 타인을 살해할 것인가, 자신을 살해할 것인가의 기로에 두 작품은 위치합니다.
귄터 그라스의 ‘양철북’도 전후문학 대표작입니다. 전쟁 속에서 ‘육체적 성장을 스스로 멈춰버린 소년’ 오스카의 시선을 통해 아예 인간(정확히는 어른)이 되기를 거부해 버리지요. 베트남전쟁 전후문학 최고의 작품으로 꼽히는 바오 닌의 ‘전쟁의 슬픔’은 작가의 참전 경험을 바탕으로 10년의 상처를 보여주는데, 주인공 끼엔을 통해 인간의 절망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 역시 ‘자기 부정’이자 ‘세계 부정’이란 점에서 동등한 지위를 형성합니다.
작가 셀라는 스페인 내전을 겪은 시민들의 무의식을 건드려 위대한 작가 반열에 올랐지만, 그는 프랑코의 군부에 참전한 군인 출신이었습니다. 폭력의 원인에 대한 소설을 썼는데 작가 스스로가 폭력의 가담자였다는 얘기지요. 또 그는 금서의 작가였지만, 프랑코 정권이 들어선 이후 검열관으로 참여했습니다. 그가 검열관으로 일한 이후에도 그의 다음 소설 ‘벌집’은 또 금서가 됩니다. 금서를 결정하는 검열관의 작품이 금서가 되는 아이러니라니, 인생이든 문학이든 참으로 복잡한 요물입니다.
어쨌든, 소설 ‘파스쿠알 두아르테 가족’이 가진 사회문화적 위상까지 부정하진 못할 겁니다. 작가의 손을 떠나는 순간, 그 작품은 작가만의 소유물이 아니라 독자와의 공동 소유물이 되니까요. 어쩌면 ‘어머니를 살해한 소설’이 아직도 살아남아 우리에게 읽힌다는 것, 그것이 이 책을 둘러싼 가장 큰 아이러니일 테지만요.
※다음주에는 토니 모리슨 ‘가장 푸른 눈(The Bluest Eye)’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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