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억달러의 사나이 오타니… “오타니는 오타니와 싸운다”
월드시리즈 우승을 위해 오타니는 오타니와 싸운다
지난 12월 10일 올 시즌 MLB의 FA(프리에이전트) 최대어 오타니 쇼헤이(29)가 LA 다저스와 입단계약을 체결했을 때 주요 일본 언론들은 앞다퉈 호외를 발행했다. 이 와중에 다저스는 순식간에 일본의 국민구단으로 떠올랐다.
가장 큰 화제거리는 역시 전 세계 프로 스포츠 역사상 가장 많은 그의 연봉 총액이었다. 오타니는 10년 동안 7억 달러(약 9224억 원)를 받는다. 하지만 그의 계약에는 어마어마한 연봉 총액보다 더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다.
우승반지를 얻기 위해 오타니와 다저스가 체결한 연봉지급유예 계약
오타니는 연봉 총액 가운데 2024년부터 다저스와 계약이 끝나는 2033년까지 해마다 200만 달러씩 총 2000만 달러만 받는다. 나머지 6억8000만 달러는 2034년부터 10년 동안 나눠 받기로 다저스와 합의했다. 이른바 연봉지급유예 계약이다. 오타니와 다저스가 이런 계약을 한 것은 이유가 있었다.
오타니와 다저스의 공동목표는 월드시리즈 우승이다. 이를 위해서 연봉지급유예 계약은 필요했다. MLB의 각 구단은 선수단 연봉 총액이 일정 수준을 넘기면 ‘사치세(luxury tax)’를 내야 한다. 사치세는 일종의 제재금으로 부자 구단과 가난한 구단의 격차를 줄여 되도록 팀 간 전력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MLB 특유의 정책이다.
2024 시즌 MLB의 사치세 부과 기준액은 2억3700만 달러다. 일반적 계약이었다면 2024년 받게 될 오타니의 연봉은 7000만 달러다. 이미 오타니의 연봉만으로도 다저스는 사치세 납부 기준액의 29.5%를 쓰게 되는 셈이다. 이렇게 됐다면 다저스는 다른 좋은 선수를 영입하는 데 돈을 쓰기 힘들어진다. 당연히 오타니의 첫 월드시리즈 우승 가능성도 줄어든다.
그래서 오타니와 다저스는 연봉지급유예 계약을 했다. 오타니가 10년 동안 받을 연봉의 97.1%를 유예했기 때문에 오타니의 2024년 연봉은 7000만 달러가 아닌 4600만 달러로 계산된다. 여기서 발생한 차액 2400만 달러로 다저스 일본 프로야구 최고 투수 야마모토 요시노부(25)를 영입할 수 있었다.
이미 오타니의 고교시절 계획에 포함돼 있던 다저스 입단
오타니가 다저스를 선택한 이유는 월드시리즈 우승 때문이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다저스의 월드시리즈 우승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입단을 결정했다. 연봉지급을 유예한 것도 다저스가 좋은 선수들과 계약을 체결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라고 언급했다.
오타니는 지난 6년 동안 LA 에인절스에서 뛰면서 단 한 번도 가을야구에 나서지 못했다. 이에 비해 다저스는 지난 11년 동안 10차례나 내셔널리그 서부지구 우승을 차지했으며 2020년에는 월드시리즈 패권을 거머쥐었다. 월드시리즈 우승반지를 얻기 위해 오타니가 다저스를 선택한 것은 그래서 자연스러워 보인다. 실제로 고교시절 오타니가 세웠던 목표 중 하나가 ‘LA 다저스에서 2020년에 월드시리즈 우승을 하는 것’이기도 했다.
LA 다저스는 한국 최초의 메이저리거 박찬호의 팀이기도 했지만 일본에서도 매우 친숙한 MLB구단이었다. 몸을 비틀어 던지는 투구로 ‘토네이도’라는 별명을 얻었던 노모 히데오(55)가 뛰었던 팀이었기 때문이다. 오타니가 다저스에 호감을 가졌던 이유도 1995년 내셔널리그 신인왕을 수상했던 노모 때문이었다.
오타니는 노모의 도전의식 때문에 그를 존경했다. 노모는 MLB 무대에 서기 위해 소속 팀 긴테쓰 버펄로스에서 5시즌 동안 활약한 뒤 은퇴를 선언하는 과감한 결정을 했다. 그가 자유계약선수 자격을 얻어 MLB로 가기 위해서는 적어도 10시즌 동안 일본 프로야구에서 뛰어야 했기 때문이다.
안정된 오늘에 안주하지 않고 불확실한 내일을 향해 도전했던 노모 정신은 오타니에게 큰 자극제가 됐다. 투수와 타자로 1인 2역을 하는 오타니의 이도류(二刀流)는 미국에서 어려움에 직면할 것이라는 일본 야구계의 편견을 불식시키는 데에도 노모의 역할은 컸다. 노모는 오타니가 MLB 진출을 선언했을 때 “미국에서도 그가 이도류의 면모를 보여줬으면 좋겠다”며 오타니에게 용기를 심어줬다.
월드시리즈 우승은 오타니의 야구 인생을 건 ‘간류지마(巖流島)의 결투’
오타니는 그가 계획했던 야구선수로서의 목표를 거의 다 이뤘다. MLB 리그 MVP도 2021년과 2023년 2번이나 수상했다. 그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일본 대표로 출전해 2023년 우승을 차지했다. 투수와 타자 겸업 선수로도 2023년 MLB 사상 최초로 10승, 40홈런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그에게 남은 목표는 월드시리즈 우승이다. 하지만 다저스 유니폼을 입게 된 오타니가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변수가 있다. 다저스는 내셔널리그 서부지구의 최강팀이기는 하지만 가을야구에 약했다. 기본적으로 투수력 때문이었다. 다저스가 2024년을 앞두고 강속구 투수인 야마모토와 타일러 글래스노우(30)를 영입한 이유도 여기 있다.
무엇보다 오타니가 다저스에서 선발투수로 뛰어줄 수 있다면 우승 가능성은 높아진다. 하지만 오타니는 올해 팔꿈치 수술을 받아 2025년이 되어야 마운드에 오를 수 있다. 그의 야구 인생에서 두 번째 팔꿈치 수술이었다. 재활과정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지만 언제까지 그가 ‘이도류’로 활약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부호가 붙어 있다. 오타니는 “만약 세 번째 수술을 받게 된다면 이도류를 포기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일본 전국시대의 검객 미야모토 무사시는 두 자루의 칼을 쓰는 검법을 썼다. 그는 이도(二刀) 검법의 대가로 일본 규슈의 항구도시 시모노세키 인근의 섬 간류지마(巖流島)에서 필생의 라이벌 사사키 코지로를 제압해 전설이 됐다. 두 검객들의 싸움을 일본에서는 ‘간류지마의 결투’라고 부른다. 일본 프로야구에서는 숙명의 라이벌 감독이 진검승부를 펼쳤던 1956년 일본시리즈를 ‘간류지마의 결투’로 기억하고 있다.
어쩌면 오타니가 다저스와 월드시리즈 챔피언이 되는 과정도 ‘간류지마의 결투’다. 다만 오타니는 원조 이도류 미야모토 무사시처럼 라이벌과 싸우지 않는다. 그는 자신과 싸운다. 한 마디로 오타니가 오타니와 싸우는 결투다.
오타니는 LA 에인절스 시절 미국 동부에 위치한 팀과 원정경기를 펼칠 때면 시차 적응을 위해 외출도 하지 않았을 정도로 철저한 자기관리를 했다. 그는 계획도 주도 면밀하게 짰다. 계획을 머릿속으로 생각만 하기 보다 써서 어딘가에 붙여놓고 항상 이를 마음 속으로 되새겼다. 그는 매일 배트를 휘두른다는 막연한 계획이 아니라 매일 몇 번 배트를 휘두른다는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다. 그가 이렇게 야구에만 올인 하는 삶을 사는 이유는 고교시절 수립한 그의 목표 때문이다. 그래서 오타니의 진정한 라이벌은 그가 세운 목표다.
야구 선수 오타니의 커리어에 정점을 찍게 될 월드시리즈 우승을 향한 그의 강한 의지는 다저스와의 연봉지급 유예계약으로 이미 시작됐다. “하겠다고 정한 이상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그의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 이유다. 월드시리즈 우승을 위해 그는 더 자신에게 엄격하고 치밀한 새로운 계획표를 준비하고 있을지 모른다. “명확하면 제대로 해낼 수 있다”는 게 그의 신념이었고 지금까지 그가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원동력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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