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기세포 지금이 기회다] (上) 노벨상 이후 10년...줄기세포 종주국 일본 위상 흔들린다

김명지 기자 2023. 12. 30.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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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바이엘 파킨슨병 ES세포 치료제 가시화
미국 FDA 올들어 세포⋅유전자 치료제 승인 봇물
미국 세포치료제 임상 기업 400여 개 압도적
세계 최정상 일본 줄기세포 연구 주춤
노벨상 수상 야마나카 교수 정부 과제 탈락 ‘충격’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 공장의 바이엘 직원이 환자에게 사용할 세포치료제의 최종 용량을 준비하고 있다./ 바이엘 제공

올해 10월 독일 기반의 글로벌 제약사인 바이엘이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에 2억5000만 달러(약 3218억원)를 들여 세포 치료제 생산 시설을 구축했다. 하지만 바이엘이 이 시설을 지은 것을 두고 업계에선 의구심이 제기됐다. 바이엘이 보유한 세포 치료제는 파킨슨병 치료제로 개발한 벰단프로셀(bemdaneprocel)이 유일한데, 이 약은 내년 임상2상을 앞둔 초기 단계 의약품이다.

벰단프로셀은 파킨슨병 환자의 뇌에 배아줄기(ES) 세포를 이식해 도파민 신경세포를 되살리는 치료제다. 파킨슨병은 도파민 신경세포가 소실돼 발생하는 퇴행성 질환이다. 운동 기능이 떨어지고 나중에는 장기 근육까지 딱딱하게 굳어 사망한다. 뇌에 도파민을 투입해 증상을 늦출 수는 있지만, 진행된 병을 되돌리는 치료법은 아직 개발되지 않았다.

그런데 지난 8월 공개된 임상 1상에서 벰단프로셀을 이식받은 참가자 12명의 뇌를 12개월 후 양전자방출단층촬영(PET) 한 결과 신경세포가 살아있는 것을 확인했다. 임상 1상 공개 직후 바이엘 주가는 치솟았다. 미국 언론은 파킨슨병을 정복할 가능성이 보인다고 타전했다. 바이엘이 곧바로 양산 체제에 들어간 배경이다.

파킨슨병 환자들이 인간 배아줄기세포에서 분화시킨 ‘중뇌 도파민 신경전구세포’를 이식받기 전(왼쪽)과 후(오른쪽)에 뇌 MRI를 찍은 영상. 이식술을 받은 뒤 MRI에서 성공적으로 세포가 이식된 부위를 확인할 수 있다(화살표)./세브란스

올해 6월에는 제1형 당뇨병 줄기세포 치료제인 도니슬레셀(제품명 란티드라)이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았다. 미국 바이오벤처 셀트렌스가 개발한 이 약은 죽은 사람의 췌장 세포로 제작한 췌장섬 줄기세포 치료제다. 췌도라고도 불리는 췌장섬은 인슐린을 분비하는 세포가 ‘섬’처럼 군데군데 뭉쳐 있는 것을 뜻한다.

도나슬레셀은 당뇨병 환자 소장 주변 간문맥(肝門脈) 혈관에 주사하는 약이다. 이 약을 주입하면, 췌장섬 줄기세포들이 간으로 흘러 들어가 인슐린을 분비하기 시작한다. 셀트렌스가 제1형 당뇨병 환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임상시험에서 대상자 30명 가운데 10명은 5년 넘게 인슐린 주사를 맞지 않고 스스로 혈당을 조절할 수 있었다.

지아이이노베이션 이병건 회장은 “제 1형 당뇨병은 완치가 되지 않고, 매일 매일 혈당을 체크하고 인슐린 주사를 맞아야 한다”며 “그런데 이 주사 한 방으로 5년 이상 혈당 체크와 인슐린 주사에서 벗어난다”고 말했다.

미국 FDA는 올해 6월 당뇨병 치료제인 도나슬레셀을 승인한 데 이어, A형 혈우병 유전자 치료제인 록타비안, 낫형적혈구결핍증 세포⋅유전자 치료제인 리프제니아, 크리스퍼 유전자 편집 낫형적혈구결핍증 치료제인 캐스개비를 승인했다.

◇ 흔들리는 일본 줄기세포 연구...임상 뒤떨어져

지금까지 미국 FDA는 세포⋅유전자 치료제 허가에 소극적이라는 것이 업계 인식이었다. FDA가 기존의 의약품을 심사할 때는 이 약이 몸에 들어와 질병을 고치는 매커니즘, 즉 작용 원리가 뚜렷해야 허가를 내 줬는데, 줄기세포는 이런 작용 원리라는 게 없다.

배아줄기세포와 iPS 세포 등 원시세포 치료제는 세포 분화를 유도하는 과정에서 암(癌) 종양 발생 가능성 때문에 연구 임상 승인도 잘 해 주지 않았다. 그런데 올해는 이 분위기가 반전된 것이다. 이병건 지아이이노베이션 회장은 “줄기세포 재생의료 연구와 경험이 그동안 축적되면서 미국 FDA가 드디어 의구심을 떨쳐낸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줄기세포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FDA의 태도 변화를 반기는 가운데, 줄기세포 연구 분야에서 세계 최정상으로 평가받는 일본에서는 최근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올해 8월 28일 일본 아사히신문에 ‘일본의 iPS 세포 연구개발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는 기사가 실렸다.

일본은 교토대 야마나카 신야 iPS 세포연구소장이 지난 2006년 세계 처음으로 iPS 기술을 발견했고, 이후 이를 기반으로 한 기술 개발을 전폭 지원해 왔다. 아사히신문 기사는 일본 정부는 야마나카 교수 노벨상 수상 이후 10년 동안 줄기세포 분야에서는 선도적으로 규제를 개혁했지만, 정작 세포⋅유전자치료제 관련 신약 임상시험 건수는 미국 독일 등 서구에 밀리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201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야마나카 신야 일본 교토대 교수. 그는 다 자란 세포를 원시세포인 줄기세포 상태로 만드는 유도만능줄기세포(iPSc) 기술을 개척했다. 야마나카 교수는 1999년 나라(奈良)첨단과학기술대학원에 조교수로 응모했고 학교 측은 실적도 없이 전혀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겠다는 그를 채용했다. 그는 2004년 교토대학으로 옮겨 연구를 완성했다./일본 교토대

신문의 지적처럼 글로벌 시장조사업체인 퓨처마켓인사이트에 따르면 2022년 미국에서 세포⋅유전자 치료제 임상을 진행하는 기업은 400여 개로 일본을 제치고 세계 1위에 올라섰다. 야마나카 교수가 설립한 교토대 ‘iPS 세포 연구 및 응용 센터(CiRA)’는 올해 3월 일본 정부의 ‘재생·세포 의료·유전자 치료연구 핵심 거점’ 5개년 프로젝트에 파킨슨병 치료제 임상을 목표로 입찰했다가 탈락하는 수모를 겪었다.

CiRA는 일본의 iPS 세포 응용연구 대학·연구기관을 지원하는 기관이라 일본 생명과학계는 큰 충격에 빠졌다. 야마나카 교수가 같은 시기 일본재생의료학회 총회에서 “줄기세포 연구에 일본 전체가 힘을 합쳐야 한다”고 호소했지만, 번복은 없었다.

국내에서 줄기세포 치료제를 연구하는 산업계에서도 일본의 몰락을 어느 정도 예견했다고 말했다. 최승호 파나셀바이오텍 대표는 “야마나카 교수팀의 iPS가 사람에게 쓸 수 있을 정도로 순도를 높이는 데 실패한 것으로 안다”며 “도리어 iPS 세포를 사람에게 쓸 수 있도록 순도를 올리는 방법을 가르쳐 달라고 요청이 들어온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은 일본과 협력을 하라고 해도, 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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