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협박범 몰렸던 할아버지, ‘친구들’ 도움 받아 다시 사회로

이문영 2023. 12. 30. 05:0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겨레S] 커버스토리][한겨레S] 커버스토리 보도 이후 그리고 희망 ④
보석 심사 과정 ‘시설 입소’ 권고에
“형제복지원 피해 감금 경험, 부적절”
집으로 와 홈리스야학 다니며 돌봄
이웃들에 상황 알리며 이해 구해
지난 3월 홈리스야학 학생·교사와 활동가들이 서울 종로구 혜화동에 있는 유철용(왼쪽 둘째)씨의 매입임대주택에서 축하 집들이를 하고 있다. 지난해 9월 이사 간 이 임대주택은 그의 평생에 ‘집이라고 할 수 있는 첫 집’이었다. 홈리스행동 제공

2023년이 저문다. 지배권력이 장악에만 열을 올리고 역사는 퇴행시켰던 대한민국의 1년은 사실상 삭풍만 몰아치는 한겨울이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뜨거운 분노와 따뜻한 연대를 보이며 잘못한 것은 잘못했다 외치고 힘없는 이에겐 손을 내밀었다. 2023년의 끝에도 또 한해를 살아갈 용기를 내는 이유다. 한겨레 토요판이 커버스토리 보도 이후를 되짚으며 2024년 다시 희망을 얘기하려 한다.

“그때 피고인이 증인한테 해를 끼칠 수 있겠다고 생각했던 건가요?”

검사가 물었다.

“당시 칼부림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던 시기여서 (…) 같이 있던 친구가 보고 ‘칼이다’ 해서 저도 막 뛰었던 것 같아요.”

“두려움이 느껴져서 현장을 이탈했다는 거죠?”

“그렇습니다.”

지난 11월30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대학로 특수협박범’ 재판에서 목격자에 대한 증인 신문이 있었다. 증인은 8월17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의 한 거리에서 피고인 유철용(가명)이 칼을 들고 소리지르는 모습을 목격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10월14일치 커버스토리 표지

그날 발달장애를 가진 유철용은 골목 안 자신의 집에서 통행이 잦은 거리로 휘청이며 걸어 나가 소리를 질렀다. 상해를 입힌 사람 없이 5분 만에 집으로 돌아간 그는 시민들의 신고로 집에서 긴급체포됐다. 경찰은 체포 과정에서 들은 유철용의 진술(‘밖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 다 죽이려고 나갔다’)과 시시티브이 영상을 신뢰관계인의 입회 조력(발달장애인 대상의 형사·사법 절차상 법적 의무) 전에 서둘러 언론에 제공했다. 영상은 ‘도시를 활보한 흉악범’의 증거자료로 퍼져나갔고, 애초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적용을 언급하던 경찰은 수위가 한층 높은 ‘특수협박’으로 죄명을 변경해 검찰로 송치했다. 검찰은 한 문장짜리 공소장에 그가 “피해자들에게 칼을 휘둘러 죽일 듯이 협박하였다”고 썼다. 공소사실대로 유철용이 ‘특정인을 겨냥해 칼을 휘둘렀느냐’가 재판의 쟁점이었다. 시시티브이 영상으로 볼 때 그가 하지 않은 행동이었다. 연쇄 강력사건으로 특수치안활동을 벌이던 경찰이 논리적 진술이 쉽지 않은 발달장애인에게 실제보다 과도한 혐의를 적용했다고 유철용의 변호인들은 봤다.

“증인은 당시 강력 범죄가 발생했던 사회 분위기에서 칼을 소지하고 있는 피고인을 발견하고 다른 사람을 공격할 수 있다는 생각에 위험해 보여서 신고했죠?”

변호인이 질문했다.

“네, 그렇습니다.”

“그런데 피고인이 증인을 향해서 칼을 휘두르면서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한 사실은 없죠?”

“네, 그렇습니다.”

“피고인이 당시 특정인을 대상으로 칼을 겨누거나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하는 행동을 한 사실이 있나요?”

“그런 사실은 없습니다.”

이날 변론 종결(2024년 1월25일 선고 예정) 뒤 검사는 “피고인이 칼을 들고나온 것은 명백하다”며 징역 1년을 구형했다. 변호인은 “피고인이 특수협박죄를 구성할 행위를 한 사실이 없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피고인이 장애인이며 형제복지원 피해자란 사실, 뇌경색 투병 등을 고려해 “설령 피고인의 행위가 범죄에 해당한다 하더라도 양형에 반영”줄 것을 재판부에 요청했다. 유철용은 최후진술에서 더듬더듬 말했다.

“잘못했습니다. 다신 안 그러겠습니다. 병원에 잘 다니면서 치료를 잘 받겠습니다. 약도 잘 먹겠습니다. 용서해주세요.”

유철용은 11월3일 보석으로 석방돼 현재 집에서 생활하고 있다. 재판부는 10월26일 2차 공판에서 그의 보석 여부를 심리했다. 검사와 재판장은 석방 뒤 사건 재발을 막으려면 유철용의 시설 입소 등이 필요하지 않은지 물었다. 신뢰관계인으로 참여한 이동현(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이 호소했다.

“유철용님은 형제복지원이라는 (사실상) 국가가 만든 감금 시설에서 생활했습니다. (그 피해자를) 다시 시설로 안내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사회복지의 최근 흐름이 탈시설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도 고려해주시기 바랍니다.”

대신 이동현은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최대한 밀착해서 유철용을 살피겠다고 약속했다.

유철용은 전처럼 매일 홈리스야학에 나와 동료 학생·교사들과 공부하고 식사하며 생활을 함께하고 있다. 수감 중 다리 건강이 악화돼 얼마 전부터 휠체어를 탄다. 학생과 교사들이 차례를 정해 집과 야학 사이를 등·하교시킨다. 발달장애인을 치료하는 의료진을 섭외해 정신과 진료를 시작했고, 구속되면서 탈락한 수급과 장애연금 자격 회복을 진행하고 있다. 그를 바라보는 시선들을 고려해 이동현이 이웃들을 찾아가 유철용의 상황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했다. 문제가 발생하면 연락하라며 자신의 전화번호도 전달했다. 장애 판정을 다시 받으면 활동지원서비스와 지원주택(주거와 복지서비스를 결합한 자립주택) 입주도 추진할 예정이다.

“철용님 사건은 장애인들이 시설에서 나와 지역사회의 일원이 되면서 발생한 일입니다. 같이 살기 위해 우리 사회가 준비되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주면 좋겠습니다.”(이동현)

☞한겨레S 뉴스레터 구독하기. 검색창에 ‘한겨레 뉴스레터’를 쳐보세요.

☞한겨레신문 정기구독. 검색창에 ‘한겨레 하니누리’를 쳐보세요.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