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휙 집어던지고 싶은 책이 많은 시대"...한 사람만 낼 수 있었던 책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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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뇌의 무도 주해'는 학술사적으로 매우 중요하기에 이론의 여지 없이 출간을 결정했습니다."
한국일보사가 주최한 제64회 한국출판문화상 본심 과정에서 심사위원들은 그가 올해 출간한 '오뇌의 무도 주해'를 두고 "박성모 대표만이 낼 수 있는 책"이라고 입을 모았다.
소명출판의 책은 매년 빠지지 않고 여러 우수학술도서 명단에 이름을 올리는데, 내용뿐 아니라 편집부터 장정까지 단단하고 진지한 '명품'의 아우라를 풍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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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뇌의 무도 주해' 박성모 소명출판 대표
"'오뇌의 무도 주해'는 학술사적으로 매우 중요하기에 이론의 여지 없이 출간을 결정했습니다."
박성모(60) 소명출판 대표는 뚝심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출판기획자다. 한국일보사가 주최한 제64회 한국출판문화상 본심 과정에서 심사위원들은 그가 올해 출간한 '오뇌의 무도 주해'를 두고 "박성모 대표만이 낼 수 있는 책"이라고 입을 모았다. 그는 '100년 후에도 유용한 책'이라는 학술출판의 소명을 품고 상업주의에 연연하지 않고 기초학문을 공고히 실천하는 학술서적을 간행하기 위해 1998년 소명출판을 설립했다. 소명출판의 책은 매년 빠지지 않고 여러 우수학술도서 명단에 이름을 올리는데, 내용뿐 아니라 편집부터 장정까지 단단하고 진지한 '명품'의 아우라를 풍긴다.
10년 기다림 끝에 출간한 원고
'오뇌의 무도'는 근대 한국 최초의 시집이자 번역 시집이라는 문학사적 의의가 큰 작품. 폴마리 베를렌, 레미 드 구르몽 등 프랑스 상징파의 시가 수록된 책은 김억(1895~?)의 번역으로 1921년에 초판(광익서관)이 나왔고, 1923년 재판(조선도서주식회사)이 나왔다. 이 두 판본을 중심으로 국문학자인 구인모 연세대 글로벌인재학부 교수가 원문에 더해 영어, 프랑스어, 일어로 된 시까지 종합해 오류를 밝혀내고 주해를 꼼꼼하게 남겼다.
939쪽 분량에 무게만도 1.4㎏이 넘는 벽돌책. 근대문학을 다룬 학술서라는 특성상 수요층이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출판사를 경영하는 입장에서 큰 결단을 필요로 하는 일이나, 박 대표는 "수없이 많은 학술서를 냈지만 이런 책을 쓸 수 있는 연구자가 또 있을까 싶었다"며 "우리가 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10년 이상 구 교수의 연구 발표를 지켜보다 출간을 제의하는 등 원고를 확보하는 데에 공을 들였다.
박 대표의 찬사. "요즘 학계에서는 책이나 논문을 잘 쓰려고 하기보다 좋은 소재를 빨리 선점하려는 행태가 만연한데, 이 책은 그렇지 않습니다. 연구 태도나 언어의 표현력, 신중함 등 측면에서 아주 깊은 곳까지 파고들어 맑은 우물을 끄집어내듯 하여 깊은 땅속에 흐르는 물줄기를 서로 만나게 하는 책입니다."
따옴표 위치까지 허투루 하지 않은 압도적인 편집
편집은 한눈에 봐도 압도적이다. 시인별로 분류된 장마다 주해자의 해설로 문을 연다. 이후 '김억의 원문-저본-다른 번역본-주해자의 주석과 해설'을 차례로 실었는데, 넓은 판형에 시를 얹은 뒤 여백에 즉시 시를 읽으며 참고할 수 있도록 주석을 편집했다. 주석을 찾기 위해 앞뒤를 넘나들지 않아도 시 한 편에 대한 종합적인 텍스트를 독해할 수 있도록 한 만듦새다.
"박 대표님은 기호, 따옴표, 대시(—) 같은 문장부호의 위치까지 신경을 쓰라고 강조하세요. 예컨대 대시는 소문자의 높이를 기준으로 가운데에 맞춰야 하죠." 편집 디자인을 맡은 박건형 소명출판 과장이 말을 보탰다. 영문자, 한자, 기호, 숫자 등 각각 다른 문자마다 다른 서체를 혼합 사용해 미학적 어울림을 고려하고, 현존 키보드로는 입력할 수 없는 근대 한국어는 하나하나 알맞은 모양으로 합성해 문장에 앉혔다. "두껍고 무겁지만 독자들이 한 편의 '시집'으로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조금 '깐깐한 시집'으로요."
25년 학술 출간 외길 편집자의 따끔한 한마디
25년 동안 학술 출판 외길을 걸어온 박 대표는 "환갑을 넘기고서야 편집으로 상을 받게 됐으니 2선으로 물러날 때가 됐다"는 농담을 던지다가도 오늘날의 출판 풍토에 대해서는 "한번 읽고 휙 집어던지고 싶은 책이 너무 많다"며 날카로운 비판을 쏟아냈다. 그는 "소위 잘 팔린다고 하는 책들이 너무 가볍거나 심지어 경망스러운 말들이 책으로 포장돼 나오는 형태가 무척 실망스럽다"며 "의미가 있으면서도 팔릴 수 있는 책을 다음 세대가 잘 선별해서 이어갔으면 좋겠다는 게 마지막 꿈"이라고 말했다.
이혜미 기자 herst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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