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동물을 통제할 수 없어요. '제돌이'의 교훈입니다"[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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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 전이에요. 길고양이처럼 도시에서 미움받는 동물들 얘기를 주간지 한겨레21 커버스토리로 썼습니다. 길고양이란 말도 없어서 도둑고양이라 부르던 시절에 '포획 후 중성화(TNR) 시범사업' '길고양이 지도' 같은 걸 다룬 거죠. 묵직한 정치, 사회 이슈도 아니고 도둑고양이라고? 편집장이던 고경태 선배의 열린 사고 덕에 쓸 수 있었습니다. 그게 시작이었습니다."
'동물 권력'으로 한국일보사가 주최한 제64회 한국출판문화상 저술-교양 부문 수상자로 선정된 남 작가는 두 달 전까지만 해도 일간지 기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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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권력' 남종영 전 한겨레 기자
"20여 년 전이에요. 길고양이처럼 도시에서 미움받는 동물들 얘기를 주간지 한겨레21 커버스토리로 썼습니다. 길고양이란 말도 없어서 도둑고양이라 부르던 시절에 '포획 후 중성화(TNR) 시범사업' '길고양이 지도' 같은 걸 다룬 거죠. 묵직한 정치, 사회 이슈도 아니고 도둑고양이라고? 편집장이던 고경태 선배의 열린 사고 덕에 쓸 수 있었습니다. 그게 시작이었습니다."
지난 20일 마주한 남종영(48) 작가의 회고다. '동물 권력'으로 한국일보사가 주최한 제64회 한국출판문화상 저술-교양 부문 수상자로 선정된 남 작가는 두 달 전까지만 해도 일간지 기자였다.
동물에 관심을 가진 건 처음엔 그저 색다른 기사를 써보고 싶어서였다. 도둑고양이에 이어 실험동물들 이야기를 다뤘다. 신혼여행을 굳이 북극으로 가 북극곰 기사도 썼다. 해수면 상승으로 물에 잠길 위험에 처한 적도의 투발루 섬도 갔다. 이렇게 돌아다니면서 보고 들은 게 아까워 '북극곰은 걷고 싶다'를 썼다. 10여 년 넘게 18쇄를 찍은 스테디셀러다.
남방큰돌고래 '제돌이'의 자연방사 이끌어내다
북극에 갔더니 모두 고래 얘길 했다. 고래 관련 자료도 엄청 많았다. 한국엔 너무 없었다. 자료를 모아 고래 개론서 '고래의 노래'를 직접 써냈는데, 그때 운명처럼 남방큰돌고래 '제돌이' 얘기를 들었다. "제돌이처럼 제주에서 불법으로 잡힌 남방큰돌고래들이 서울대공원에서 쇼를 하고 있었다는 해양경찰청 발표가 있었어요. 제돌이가 제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생각한 거죠."
국내외 전문가들에게 두루 물었다. 스스로는 '에이, 그게 되겠어' 반신반의했다. 그런데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제주 인근 바닷가라는 확실한 서식지가 있으니 야생 적응 훈련만 잘 거치면 다른 동물들보다 성공 가능성이 더 높다고 했다. 2012년 제돌이를 제주 바다에 돌려보내자는 한겨레 1면 기사 '제돌이의 운명'은 그렇게 나왔다. 보름 만에 서울시는 자연방사를 결정했다. 기자로서 짜릿한 순간이었다.
더 짜릿한 건 그다음이었다. 전문가들은 1년간의 복귀 프로그램을 제안했다. 그런데 이 녀석들은 단 하루 만에 알아서 사냥하더니, 적응훈련 초반에 그물을 뛰쳐나가 야생의 동료들과 어울려 다녔다. 그간의 걱정, 계획 따윈 아무 소용없었다. '동물 권력'은 바로 그 얘기다.
"사람은 '우리가 주체, 동물은 객체'라고 생각해요. 인간 통제에 따라 움직이는 게 동물이라고 보는 건데, 실제 동물은 전혀 그럴 생각이 없거든요." 제돌이 사례를 뼈대로 영국 브리스틀대 동물지리학 석사 학위를 받았고, 그 논문과 여러 사례를 덧붙여 책을 완성했다. 그래서 이 책에는 사람과 함께 고래를 사냥하는, 심지어 자기 몫을 너무 챙겨가는 인간에게 항의하고 저항하는 범고래 이야기 등 우리가 미처 몰랐던 동물 이야기가 가득하다.
"엄밀한 논픽션 작가가 되는 게 목표"
그렇다고 이제 동물이 권력을 쥐어야 한다는 건 아니다. 이건 "본격적인 논픽션 작가가 되고 싶다"는 포부와 연결되어 있다. "미국 논픽션 작가들 책을 보면 1차 자료를 정확히 인용해서 정말 엄밀하게 쓰거든요. 그에 비해 우리 논픽션은 듬성듬성해요. 그러다 보니 서사 과잉에 빠지고 주장만 강해집니다."
예상되는 결론을 향해 발 빠르게 직진하는 글보다 지금 현 단계 고민의 최전선은 이 정도쯤 된다는 걸 보여주는 논픽션을 남기고 싶다. "사실 많이 불안해요. '백수가 과로사한다'는 말이 이래서 나오는구나 싶기도 하고요. 그래서 이 상이 제겐 너무나 큰 선물입니다." 새출발선에 선 남 작가가 활짝 웃었다.
조태성 선임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문이림 인턴 기자 yirim@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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