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낮 12시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1층 주차장. 지난 27일 숨진 배우 고(故) 이선균(48)씨의 발인식이 열렸다. 중학생 큰아들은 고인의 영정 사진을 들고 장례식장을 나섰다. 아내인 배우 전혜진(47)씨는 작은아들의 손을 잡은 채 뒤를 따랐다. 배우 조진웅, 설경구, 류승룡, 공효진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발인식 도중 회색 점퍼를 입은 한 50대 남성이 휴대전화를 들고 장례 행렬 사이사이를 누비며 영상을 촬영했다. 이 남성은 발인식에 참석한 유명 배우의 얼굴을 클로즈업해 촬영하기도 했다. 남성의 촬영이 계속되자 유족과 소속사 측이 항의했다. 검은 옷을 입은 한 여성은 “촬영하지 말아 주세요” “인간이라면 그러면 안 돼요”라고 거세게 항의했다. 하지만 이 남성은 발인식이 끝날 때까지 30분 넘게 촬영을 멈추지 않았다.
이씨가 지난 27일 숨진 뒤 빈소가 차려진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은 유튜버와 틱토커(틱톡 콘텐츠 제작자) 등이 몰려들었다. 기자들은 이씨 소속사의 출입 자제 요청에 빈소에 접근하지 않았지만, 유튜버 등은 빈소에 난입했다. 한 스트리머(인터넷 방송인)는 빈소에 들어가려다 직원들에 의해 제지당하자 “들어가게 해 달라”며 난동을 부렸다. 구독자 8만의 한 유튜버는 28일 ‘최초 미공개 빈소 영상’이라는 제목으로 이씨 빈소를 촬영한 것으로 추정되는 영상을 올렸다. 이 영상은 29일 오전 기준 조회 수 50만을 넘겼다. 일부 네티즌들이 “고인에게 뭐 하는 거냐” “이건 선을 넘었다”고 항의 댓글을 남기자 영상은 삭제된 상태다.
이씨의 소속사는 28일 보도자료를 내고 “자신을 유튜버로 소개한 분들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막무가내로 장례식장을 방문해 소란이 빚어지는 등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잔혹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며 “일부 매체에서 고인의 자택, 소속사 사무실까지 기습적으로 방문해 취재를 하는 등 이로 인한 고통이 매우 큰 상황”이라고 했다. 이씨 측은 “마음으로만 애도해 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했다.
유튜버 등은 이씨 관련 가짜 뉴스도 지속적으로 올렸다. 구독자 23만의 한 유튜브 계정에는 ‘이선균 모친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제목의 영상이 올라왔다. 이 영상에는 “이선균 어머니가 문을 잠그고 약을 많이 복용하셨다”는 내용이 담겼다. 영상은 29일 오후 기준 조회 수 20만, 좋아요 1300개를 넘겼다. 하지만 이씨의 모친은 지난 2011년 이미 세상을 떠났다. 구독자 12만 유튜브 채널은 ‘이선균 빈소에 김희중 인천경찰청장이 찾아왔다’는 내용의 가짜 뉴스를 올리기도 했다.
이들이 이렇게 무리한 영상을 올리는 건 유튜브와 틱톡 등에서 조회 수와 ‘좋아요’ 수에 따라 사람들에게 일정 금액을 주기 때문이다. 대중적 관심이 높은 이씨 관련 영상은 대부분 10만~20만 조회 수를 기록 중이다. 이씨 장례식장에서 본지와 만난 한 유튜버는 “3개월 전까지 별다른 직업이 없었다”며 “영상을 올리면 외국인들도 많이 찾아와 보고, 조회 수에 따라 돈도 일정 금액 들어온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유튜버 등의 무분별한 행동에 규제가 필요하다고 했다. 유현재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이번 사건은 ‘클릭 수’에 기반한 주요 온라인 콘텐츠들의 수익 구조 때문에 비롯된 것”이라며 “여기에 선정적, 서사적으로 구현된 마약 이슈가 맞물리면서 더욱 과열 양상으로 치달았다”고 했다. 유 교수는 “유튜브 등 대형 플랫폼에 압박을 가할 수 있는 국내법 마련이 절실하다”며 “독일 등 유럽은 플랫폼 사업자들에게 소셜미디어상의 혐오, 위법, 가짜 뉴스 게시 글을 삭제하고 당국에 신고까지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고 했다.
현재 국회에서는 인터넷 방송과 1인 방송을 규제하는 통합방송법 제정안이 논의되고 있다. 하지만 1인 방송 규제는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의견 때문에 진전이 더디다. 강성 지지층이 유튜브 등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점도 여야(與野) 모두 관련 법 제정을 미루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