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후 10년 ‘상속세 물납’ 쏟아져… 해외 큰손 먹잇감 된다

조재희 기자 2023. 12. 30. 03:46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상속세 탓 산업경쟁력 약화 우려

29일 유찰된 정부 보유 NXC 지분 매각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최고 수준인 상속세가 향후 우리 경제에 끼칠 문제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로 꼽힌다.

1980~90년대 고도 성장기에 설립, 창업자들이 60대 이상이 돼 은퇴기에 접어드는 기업들이 속출하는 현실에서 글로벌 기준에 동떨어진 상속세 탓에 NXC와 같은 주식 물납이 잇따르며 지배 구조 왜곡과 국내 알짜 기업 해외 매각이라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고율의 상속세가 기업의 투자와 영속성을 저해하며 국가 산업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각국이 리쇼어링에 나서며 자국 내 생산 기반을 확충하는 상황에서 불합리한 상속세 구조가 국내 기업과 기술의 해외 유출을 부추기는 셈이다.

그래픽=김성규

◇제2의 NXC 잇따를 듯…기술 유출 우려

6·25 전쟁 후 태어난 1950년대생 베이비붐 세대로부터 상속·증여가 10년 내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상속세 물납도 확대될 전망이다.

29일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2012년 전체 기업체 중 대표이사가 60세 이상인 기업은 16.7%(61만개)에 그쳤지만 2020년엔 그 비중은 25.6%, 기업체 수는 111만개로 늘었다. 중소기업으로만 국한해도 2021년 기준 30년 이상 된 업체의 대표자 중 60세 이상은 81%, 70세 이상은 30.5%(2만5600명)에 이른다.

60세 이상 은퇴기에 접어든 경영자 비중이 커지면 커질수록 상속·증여에 따른 문제는 우리 경제의 시한폭탄이 되고 있다. 조웅규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앞으로 10년 내 대규모 상속이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라며 “상속세 제도를 개편하지 않으면 많은 기업의 경영권이 취약해지면서 기업 사냥꾼의 먹이가 될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일러스트=김성규

과거 IMF 외환위기와 금융위기를 거치며 산업은행이 주요 기업들의 대주주에 오른 것과 같이 상속세 물납으로 기획재정부가 민간 기업들의 대주주로 올라서는 일은 속속 발생하고 있다. 문제는 기재부가 이들 지분을 매각하는 과정에서 기술과 인력이 고스란히 경쟁 업체나 해외로 빠져나갈 가능성이 제기되는 것이다. 지금도 기재부는 안마 의자 업체 휴테크(30.3%), 베지밀로 유명한 정식품(7.9%), 나이키 주문자상표부착(OEM) 업체인 TKG태광(13.7%) 등의 지분을 상속세 물납으로 보유 중이다. 노민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증시에서 거래되지 않은 비상장기업 주식은 단순 투자 매력은 없더라도 대주주 지위를 이용해 경영에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크다”며 “기술력이 뛰어나지만, 규모가 크지 않은 기업일수록 타깃이 되기 쉽다”고 말했다.

◇과도한 상속세…개편 필요성 커져

과도한 상속세가 큰 부담인 현실에서 중소·중견기업 위주인 비상장기업 오너들은 아예 기업을 매각하거나 주식으로 대신하는 물납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부의 재분배를 위한 상속세가 기업의 지속 가능성을 떨어뜨리며 일자리를 줄이고, 투자를 위축시키고 있는 것이다. 국내 가구업계 1위 한샘을 비롯해 농우바이오, 유니더스 등은 상속세 부담 때문에 대주주가 매각을 선택한 기업으로 꼽힌다.

이 때문에 기업 경영을 계속 유지할 경우에는 상속세 부담을 크게 낮춰 주고, 이후 물려받은 지분을 제3자에게 매각할 때 세금을 물리는 자본이득세 방식으로 개편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현재 최대 60%에 이르는 상속세율을 갑자기 낮추기 어려운 현실에서 기업의 영속성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 개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유산을 상속인에게 쪼개서 분배한 뒤 세금을 매기면 부담을 낮출 수 있는 유산취득세도 대안으로 꼽힌다.

이런 대안이 없는 현실에선 과도한 상속·증여세가 각종 꼼수를 낳고 있다. 최준선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상속세를 내기 위해 가족 명의 자회사를 만들어 일감을 몰아줘 현금을 만드는 경우도 있다”며 “상속세가 회계 부정을 비롯한 또 다른 왜곡을 낳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는 상속세가 징벌적 성격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상호 한국경제인협회 경제조사팀장은 “이제는 상속세 개편을 고용 창출과 투자 확대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며 “2000년 이후 그대로인 상속세제는 우리 기업의 경쟁력을 훼손하는 요인 중 하나”라고 말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