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장은 우승 설계 건축가… 5개년 계획으로 정상 섰죠”
“짜릿한 우승 기분? 딱 하루 가던데요. 다음 날부터 지금까지 인사 다니고, 여러 행사 치르느라 정신 없이 연말을 보냈네요. 그래도 우승하니 이렇게 힘들더라도 기쁜 거겠죠.”
LG 트윈스가 1994년 이후 29년 만에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한 순간, 차명석(54) 단장은 그 누구보다 많은 눈물을 펑펑 쏟아냈다. 그는 1994년 불펜 투수로 통산 두 번째 우승에 힘을 보탰고, 29년 후인 올해 단장으로 세 번째 우승을 이끌었다. 2018년 LG가 8위에 머문 뒤 단장으로 선임된 그는 당시 구광모 LG 그룹 신임 회장 앞에서 우승을 목표로 한 ‘5개년 운영 계획’을 발표했는데, 거짓말처럼 딱 5년 만에 정상에 오르는 감격을 맛봤다. 달변가인 그는 비 시즌 때는 기업 상대 강연을 하는데 올해 섭외 요청이 더 많아졌다고 한다. 주제는 ‘조직강화’ 아니면 ‘모두가 들어오고 싶어 하는 조직 만들기’.
차 단장은 “우리 팀이 돈 많이 들여 FA선수들을 영입한 게 아니라 5년 동안 하나하나 뭔가를 만들어가면서 우승을 일궈낸 게 기업들 관점에서는 이상적으로 보였던 것 같다”고 했다. LG는 차 단장 체제에서 5년 연속 가을야구 무대에 섰는데, 첫 3년간은 외부 FA선수들을 영입하지 않고, 내부 유망주들을 키우는데 주력했고, 2022년과 올해 박해민, 박동원 등을 데려와 우승 퍼즐을 맞췄다. 하지만 차 단장은 5년 동안 팀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고 한다.
“처음 팀에 들어와 보니 거짓말 약간 보태서 냉기(冷氣)가 돌았어요. 같은 부서끼리 서로 말도 안 하고, 회의 땐 아무도 의견을 안 내놓고 침묵만 지켜요. 모두 모아 놓고 ‘일 하다 잘못 되면 내 책임이지만, 일 안 해서 잘못 되면 당신들이 책임져야 한다’고 했어요. 처음 팀장들 하고 한달 내내 저녁 같이 하면서 일 얘기를 일절 안 했더니 몇 번 자리한 다음 팀장들이 ‘우리 팀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먼저 묻더라고요. 그때부터 서로 속 털어놓고 대화하면서 팀 개편에 들어갔어요.”
차 단장은 가장 먼저 2군 코치들이 한 달에 한 번 각자 자신의 훈련 방식에 대해 설명하는 자리를 만들었다. 선수를 제대로 키워내기 위해선 코치가 먼저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야구에 대한 깊은 전문성이 필요한 부서 팀장은 구단 고위층에 얘기해 순환보직 대상에서 제외했다. 당시 2군 에 있던 노석기 현 전력분석팀장이 지금까지 5년간 한 자리에서 팀 전력 분석을 책임지고 있다.
“야구단 실정은 단장이 가장 잘 알고 있어야 해요. 그런데 그런 사람이 위에다 아무 말도 못하고 시키는 대로 하는 게 국내 실정이에요. 저는 제 생각에 아닌 건 아니라고 말씀 드렸어요. 다행스럽게 제 보스들은 제가 납득할 수 있게 잘 설명 드리면 잘 들어주셨어요.”
차 단장은 그 동안 같이 했던 감독들에게도 감사의 뜻을 나타냈다. “단장과 감독은 가장 소통해야 하는 관계죠. 특히 선수 출신 단장은 감독의 권한을 건드리면 안 됩니다. 자기 자리 뺏는 사람으로 오해 받을 수 있으니까요. 내가 한 수 손해 봐야 한다고 생각해야죠. 그리고 팀 상황을 있는 그대로 말해주고, 최대한 도와주려고 해야 오해가 안 생깁니다. 지금까지 같이 한 류중일, 류지현, 염경엽 감독과 모든 정보를 공유했어요. 서로 믿어야 일도 같이 할 수 있어요.”
차 단장은 정규시즌 2위를 하고도 한국시리즈에 오르지 못했던 2022년을 5년 동안 가장 힘들었던 시기로 꼽았다. LG는 플레이오프에서 키움에 덜미를 잡혔고, 결국 2위라는 호성적을 낸 류지현 감독이 지휘봉을 내려놓아야 했다.
“솔직히 작년에 우승할 줄 알았습니다. 모든 분석 지표상 우리 팀 전력이 가장 좋았거든요. SSG에 딱 하나 뒤지는 게 있었는데 운(運)이었어요. 이상하게 우리 팀 경기 때 상대팀 에이스가 많이 나왔고, 우리 팀이 상승세를 탈 때 경기가 취소돼 흐름이 끊기는 적이 꽤 많았어요. 단장 그만두고 집에 가는 건 두렵지 않았는데, 뭔가 팀에 하나 만들어놓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어요.”
차 단장은 올해는 시즌 전 자체 분석을 통해 정규시즌 우승은 어느 정도 기대했다고 한다. 우승 최대 경쟁자로 평가된 KT가 초반 하위권으로 처지면서 레이스를 비교적 수월하게 펼칠 수 있었다고 했다. LG는 시즌 도중 투수들의 부상과 부진이 겹쳤지만, 최원태 트레이드를 분기점으로 고비를 넘겼다.
“유망주와 신인 1차 지명권을 내주고 키움에서 최원태를 데려올 때 내부 반대가 컸어요. 무조건 한국시리즈 우승할 테니 좀 도와달라고 했죠. 최원태가 시즌 도중 우리 팀에 와서 기대에 못 미친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트레이드가 다른 투수들에게 자극제가 되어서 결국 우승까지 하게되는 최고 결과를 얻어냈다고 생각합니다. 내년에 원태가 15승 정도 해주면 좋겠네요. 아직 젊으니까.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졌을 때도 힘들었는데, 2차전에서 분위기를 바꾼 덕분에 우승할 수 있었죠.”
차 단장은 코치로서 선수 육성에 일가견 있다는 평가를 들었다. 해설가로선 달변과 전문성으로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그는 단장이라는 자리가 코치, 해설위원보다 더 매력적이라고 했다.
“선수들은 자기만 잘하면 가치를 저절로 높아집니다. 해설자는 이것저것 공부할 게 많아 스스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해줍니다. 반면 단장은 자기보다는 팀을 위해 일하는 사람입니다. 하나하나 조직을 만들어가는, ‘건축가’같아요. 물론 걱정이 없는 날이 없어요. 잘하면 잘하는 대로, 못 하면 못하는 대로 고민이죠. 지금까지 단 하루도 휴가를 가보지 못했습니다.”
LG는 2024시즌에도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힌다. 차 단장은 그래서 더욱 잠 못 이룰 밤이 많아졌다. 차 단장은 “다른 팀 전력이 좋아져 내년에는 정규리그 1위도 장담하지 못한다”면서도 “감독이 우승 또 하겠다고 공언했으니 옆에서 전력을 강하게 만들어 주는 게 단장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LG는 올해가 가기 전 임찬규(31) 함덕주(28) 등 내부 FA 선수들과 재계약하면서 전력 손실을 일단 최소화하는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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