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껏 말할 수 없는 시대… 계란이 바위치듯 토로하네
이영관 기자 2023. 12. 30. 03:09
정신머리
박참새 시집 | 민음사 | 240쪽 | 1만2000원
시편들은 바위 앞에 선 계란을 떠올리게 한다. 지식·언어처럼 굳건하다고 여겨지는 무언가를 깨부수려는 존재. 깨진 못하더라도 거침없는 시도로 바위를 노란색으로 뒤덮는 계란 말이다. 표제작의 화자는 ‘내가 이렇게 슬픈 이유 까먹었다’며 언어를 잃어버리며, 시 ‘청강’의 화자는 ‘교수님’을 향해 ‘나는 말할 수 있는 권위도 없었’다며 대항한다. 집·강의실·병원 등 여러 공간을 넘나들며 말할 수 없음에서 벗어나지만, 그 상태로 돌아오기를 반복한다. 텍스트를 생략·편집하며 현실과 허구를 교차시키는 것도 특징.
제42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작이다. 모든 시편이 가독성 있지는 않지만, 마음껏 말할 수 없는 시대에 대한 문제의식은 분명하다. 시집은 ‘나는 그냥……/ 그냥 말을 하고 싶었던 것뿐이야’(‘사랑의 신’)라며 ‘말’을 향한 의지를 뿜으며 끝난다. 수상 소감을 곱씹게 된다. “누가 시 왜 쓰냐고 하면은, 내 깡패 되려고 그렇소,라고 답하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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