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족·이웃·지구… 한 해 동안 잊었던 이들의 안부를 묻는다
코로나 종식 이후 첫 새해맞이를 앞두고 송구영신(送舊迎新)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해돋이·제야의 종 타종 등 행사도 방법이겠으나, 독서는 어떤가. 송구영신의 기본은 지난 1년을 꼭꼭 씹어 소화하는 것. 인파에 휩쓸릴 때보다는 오롯이 혼자일 때 수월하게 지난 시간을 돌이켜볼 수 있을 테다. 조선일보 Books팀이 선정한 ‘2023 올해의 저자’ 6명이 희망찬 새해를 앞두고 각각 책을 추천했다.
각기 다른 매력으로 올해 주목받은 저자들인 만큼 추천한 책의 주제도 다양하다. 가족, 건강, 사랑, 기후 위기 등 일상적 문제부터 거대 담론까지 다룬다. 그러나 삶의 어딘가를 비추고자 하는 마음만은 하나다. 책을 읽은 이들은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거나, 잊고 지낸 삶의 가치를 떠올릴지도 모른다. 홀가분하게 새해를 받아들일 준비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인생이 캄캄할 때 용기를 주는 건 ‘작은 성냥불’
모든 것은 빛난다
휴버트 드레이퍼스·숀 켈리 지음 | 사월의책
성냥불 같은 책. 성냥불, 연등, 촛불, 숯불, 모닥불. 새해가 오면 이런 것들을 떠올리고는 한다. 새해에는 욕심이 커지기 마련이니까 작고 소박한 것을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것들은 태양만큼 밝지는 않지만 적어도 우리의 주변을 밝힐 수는 있다. 조난을 당한 사람들이 흔히 증언하듯이 가장 캄캄할 때 희망이 되는 건 광휘가 아니라 이처럼 작고도 소소한 불빛이다.
그러니 삶이 허무하고 캄캄해질 땐 주변의 작은 것에서 시작해 보자. 새해에는 책 한 권에서 희망을 찾으면 어떨까. 허버트 드레이퍼스와 숀 도런스 켈리의 공저 ‘모든 것은 빛난다’는 연등처럼 주변을 밝혀주는 책이다. 이 책은 다양한 고전과 철학적 개념을 아주 재미있고 독창적으로 소개하면서 우리가 어떻게 허망함을 넘어설 수 있는지를 모색한다. 책에는 셰익스피어, 단테, 칸트, 허먼 멜빌 등 다양한 이들이 등장하지만 이를 다 알지 않아도 내용이 너무 흥미로워서 소낙비 맞듯 순식간에 읽을 수 있다. 무엇보다도 이 책을 다 읽고 난 뒤엔 마음속에 성냥불이 하나 켜진다. 그 불을 손에 꼭 쥐고 살면 된다고, 그렇게 넉넉한 용기를 심어주는 책. /고명재 시인
누군가에겐 삶의 이유가 되는 안부 “오늘 어땠어”
엘리너 올리펀트는 완전 괜찮아
게일 허니먼 소설|문학동네
다른 사람들을 사교성이 부족한 사람이라 치부하며 혼자 사는 삶이 ‘완벽히 괜찮다’고 외치는 괴짜 주인공이 있다. 청결에 민감하고 지나치게 솔직한 주인공이 우스꽝스럽다는 생각이 들 때쯤, 어느 순간부터 책에서 손을 떼지 못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 책은 이상하게도 읽으면 읽을수록 모두의 안부를 묻고 싶어지게 만든다. 삶에 다가온 사소한 인사로 하여 조금씩 ‘괜찮아’지기 시작하는 이야기가 마치 우리에게 다정한 인사를 건네는 것만 같기 때문이다.
책을 덮었을 때 ‘오늘은 어땠냐’는 간단한 질문조차 하지 않고 살았음을 깨닫고 깜짝 놀라야 했다. 그 짧은 질문이 정말로 누군가의 하루가 궁금해서가 아니라 다정하고 따뜻한 ‘안부’였음을, 그러한 안부가 어떤 이에게는 삶을 이어갈 이유가 되기도 한다는 것을, 작은 손길 한 번, 인사 한 번이 얼마나 많은 것을 바꾸어 놓는지를 깨닫게 하는 책이다. 조금 더 자주 안부를 묻고 인사를 건네며 살아야겠다. 그리하여 당신의 하루가 괜찮았는지, 나의 하루 역시 괜찮았는지 되돌아봐야겠다. 아픔을 가진 수많은 이들이 새해에는 완전히 괜찮아지길 바라며 읽기에 충분한 책이다. /이꽃님 소설가
새로운 행성 대신 이 지구에서 미래를 그리자
우리는 지구를 떠나지 않는다
에코페미니즘 연구센터 달과나무 지음|창비
기후 위기 시대, 불타는 지구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열다섯 명의 저자는 경험과 이론, 감수성과 과학을 넘나들며 희망의 언어를 제시한다. 이들에게 희망은 생태적 슬픔을 통한 책임의 윤리이고, 타자를 환대할 수 있는 공유지의 복원이자 자급적 삶이 중심이 되는, 인간 너머의 세계가 고려된 생태시민권 담론이다. 또한 이는 농사, 도시농업, 인간과 비인간에 대한 공감·연결·상호의존을 가능케 하는 유기적 세계관과 돌봄의 확대, 자연의 일부로서 여성의 몸과 치유의 여정들로 표현된다.
중심에는 우리가 상실한 ‘생태적 감수성’을 요청하는 에코페미니즘의 정신이 있다. 성장이라는 외피를 쓴 인간중심적 개발의 결과를 마주하는 지금, 대안은 지구를 떠나 새로운 행성과 연료를 찾는 것이 아니어야 한다. 막연한 불안이나 무책임한 외면이 아니라 잃었던 흙과 생명의 가치, 비인간과의 관계와 공동체를 복원하고, 돌보고 자급하기 위한 실천을 시작할 때, 새로운 희망의 가능성을 꿈꿔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우리가 여전히 이 지구에서 2024년을 새롭게, 낯설게 맞이할 수 있는 마중물이 될 것이다. /김보화 젠더폭력연구소장
엄마 밥으로 토닥여진 영혼에서 희망이 싹트네
외로운 사람끼리 배추적을 먹었다
김서령 지음|푸른역사
동네 책방지기에게 이 책을 추천받았을 때, 제목부터 끌렸다. 내가 ‘배추적’을 처음 맛본 것은 경북 상주로 시집가서다. 제수에 맞지 않는 음식일 것 같은 선입견은 그 ‘깊은 맛’에 깨끗이 굴복했다. 심심하고 시원한 배추적 맛을 조상님인들 마다하실까.
안동 출신인 저자는 유년기에 맛보았던 콩가루 국수, 명태 보푸름, 무익지, 햇장, 증편, 식혜 등을 통해 엄마를 회상한다. 안동 종부의 손길로 만든 이 음식들이 저자의 손끝에서 아련하게 추억된다. 마음 허한 현대인들이 결국 찾게 되는 건 엄마 밥. “삶이란 것이 실은 그리 대단키는커녕 본질적으로 남루하고 허접한 것들로 채워져 있다는 것을 거듭 경험”한 나이엔 더더욱 그렇다. 저자의 말처럼 “삶은 반복되면서 동시에 전진하는 나선형 회로일지도 모른다.” 희망이란 각자의 솔 푸드로 토닥여진 영혼에서 싹튼다.
이 책이 주는 강력한 위안은 음식뿐 아니라 언어에도 있다. 정갈하면서도 풍성한 단어와 문장을 톺아보는 것만으로도 기름 낀 내장이 시원해지는 느낌이다. 새해엔 엄마의 음식처럼 영혼을 채워줄 아름다운 우리말 한 사발 들이켜면 어떨까. /최지혜 근대건축실내재현 전문가
밥 위에 반찬 올려주듯, 일상에 사랑 곁들이길
선명한 사랑
고수리 지음|유유히
쌍둥이 아기 판다를 한창 돌보고 있을 때, 지인이 책을 한 권 선물해 주었다. 방송작가 출신인 저자도 쌍둥이 엄마라기에 관심이 갔다. 책을 펼치자 이런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눈에 보이지도 손에 만져지지도 않지만, 내가 아는 사랑이란 이런 것. 아무 걱정 하지 말고 잘 자라고 이불을 덮어주는 마음.” 저자는 모든 순간을 사랑으로 끌어안을 수 있는 사람이구나. 맛있는 반찬을 집어 밥에 올려주는 것 같은 사랑. 내가 아는 사랑도 그런 것이기에 특히 마음에 와 닿았다.
엄마, 딸, 아내, 누나, 작가로서 삶을 대하는 저자의 사랑 가득한 태도가 선명하게 느껴지는 이야기가 가득하다. 책장을 덮으면 애틋했던 삶의 모든 기억을 꺼내 보게 될 것이다. 내 삶 속, 사랑의 흔적을 다시 찾으며 내면의 창고를 행복으로 가득 채우게 될 것이다.
저자는 말한다. 사랑의 기억으로 어른이 되어 누군가를 다시 사랑으로 안을 힘이 생긴다고. 책 한 권으로도 사람은 변할 수 있다고. 삶과 주변을 사랑으로 끌어안을 선명한 능력을 주는 이 책이 새해를 어떤 이야기로 채울지 고민하는 이에게 따뜻한 선물이 될 것이다. /송영관 에버랜드 사육사
새해엔 더 건강하게… 뇌의 통장 잔고 관리법
죽을 때까지 치매 없이 사는 법
딘 세르자이·아예샤 세르자이 지음|부키
사람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병이 치매다. 치매를 우연히, 갑자기 찾아오는 병으로 생각하면 공포가 생기는 것도 당연하다. 제약 회사들이 신약 개발에 매진해도 이 병의 경과를 확실하게 개선할 수 있는 신약의 실용화는 요원하다. 하지만 치매를 뇌의 성능이 일정 수준 이하가 돼 일상 생활에 지장이 생길 때 진단되는 노화의 결과로 생각하면 많은 것이 달라진다. 90세에도 마음껏 걸을 수 있는 몸을 위해 일찍부터 근육의 ‘통장 잔고’를 늘려 두듯, 뇌가 나이 들어가는 원리를 이해하면 뇌의 통장 잔고를 키우는 삶을 살 수 있다.
치매 전문 의사인 저자는 오랜 임상 경험과 연구 끝에 뇌의 통장 잔고를 관리할 수 있는 구체적 생활 습관들을 발견했다. 이 책은 뇌의 노화를 느리게 하는 것은 물론 심지어 되돌리기 위해 어떻게 먹고, 움직이고, 긴장을 이완하며 휴식할 수 있을지를 생생한 사례들과 함께 풀어나간다.
새해에 건강한 생활 습관을 계획하기에 요긴한 지침들도 풍부하게 담겨 있다. 출발점은 달랐지만, 내가 그동안 천착해 온 ‘느리게 나이 드는 법’과 완전히 똑같다는 것을 확인하고 경탄을 금할 수 없었다. 결국 뇌는 몸이고, 몸은 뇌였다. /정희원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임상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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