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는 먹고사는 일… 내가 꿈꾸는 세계는 링 위에 있다”
[김아진 기자의 밀당]
여자 복싱 세계챔피언 도전하는
순천향대 천안병원 의사 서려경
링 위의 그녀는 시선부터 매섭다. 8전 7승(5KO) 1무. 복싱을 시작한 지 불과 5년 만에 만들어낸 화려한 전적. 흥미로 시작한 복싱이 이제 삶을 지탱하고 있다. “제 주먹을 맞을 일이 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제 주먹을 맞았다면 복싱은 못 했을 것 같아요. 펀치력이 그 정도로 세거든요.”
최근 한국복싱커미션(KBM) 여자 라이트 플라이급(48.98kg 이하) 챔피언에 오른 서려경(32·천안비트손정오복싱)을 지난 13일 천안 복싱장에서 만났다. 그녀가 한물간 복싱판에서 이토록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이유는 따로 있다. 어릴 때부터 권투를 해온 선수가 아니라 의사여서다. 링을 벗어나 하얀 가운을 입고 환하게 웃으면 영락없는 소아과 의사다. 그는 현재 순천향대학 천안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로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일하고 있다.
“인생은 닥치는 대로 해나가는 거 아닌가요? 저는 제가 선택한 것에 대해 최선을 다하고 그에 맞는 책임을 다할 뿐이에요. 의사로서 하루하루 살아가고 복서로서 내년에 세계 챔피언이 되기 위해 엄청나게 노력하고 있습니다. 후회 없이요.”
서려경은 최근 세계 챔피언 타이틀 매치 전초전(계약 체중 47kg급)을 승리했고 내년 2~3월 여자국제복싱협회(WIBA) 미니멈급(47.62kg 이하) 세계 타이틀전을 앞두고 있다. 이후 가능하다면 세계 복싱 4대 기구인 세계복싱협회(WBA), 세계복싱평의회(WBC), 국제복싱연맹(IBF), 세계복싱기구(WBO) 챔피언 타이틀도 도전할 계획이다. “왜 복싱을 하냐고요? 세계 챔피언도 가능할 것 같거든요. 하면 될 것 같은데 그만둘 수가 없죠. 하지만 목표에 도달하면 뒤도 안 돌아보고 안녕할 것 같아요.”
◇복싱하는 내 모습이 너무 좋다
복싱은 2018년 친하게 지내던 선배 마취과 의사의 권유로 시작했다. “그 선생님이 술 친구였거든요. 제가 운동을 좋아하니까 잘 어울릴 것 같다고 해서 체육관에 가게 됐어요. 그때는 프로 선수가 될지 꿈에도 몰랐고요.” 호기심에 시작했지만 처음부터 딱 맞는 운동이라는 ‘느낌적인 느낌’이 들었다고. 그리고 1년 뒤 프로 테스트를 거쳐 데뷔전까지 치렀다. “관장님이 선수 한번 해볼 거냐고 해서 하겠다고 했죠. 역시나 그때도 안 된다는 생각은 조금도 안 했어요. 붙으면 이긴다고 생각했죠.”
-원래부터 운동을 좋아했나요?
“어릴 때는 저보다 달리기가 빠른 여자를 본 적이 없었어요. 운동 신경이 있는 편이었죠. 힘도 셌어요. 유치원 땐 대장이었고요. 2차 성징 전까지 남자아이들도 저보다 강하지 못 했어요. 팔씨름도 다 이겼고요. 그래서 제가 강하다는 걸 어렴풋이 알았던 것 같아요.”
-왜 복싱이었나요?
“저는 용감한 여성인데도 복싱 체육관 가는 건 엄두가 안 나더라고요. 험하게 생겼잖아요. 그런데 친한 의사 선생님이 ‘나 있으니까 와보라’고 하더라고요.”
-처음부터 소질이 있었나요?
“남달랐죠. 관장님도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고요. ‘잘한다’ ‘잘한다’는 당근을 먹고 무럭무럭 자랐죠. 하하.”
-선수 제안은 언제 받았나요?
“운동하고 1년 됐을 때 프로 테스트를 받아보자 하더라고요. 아마추어급인 생활체육 대회가 아니라 곧바로 프로 대회로 갔어요. 당연히 쉽게 이겼고요. 몇 달 있다가 바로 데뷔전을 치렀죠.”
-데뷔전은 어땠나요?
“지금까지 경기 중에 가장 힘든 날이었어요. 너무 긴장을 해서요. 판정승으로 이겼어요. 2라운드 끝났는데 다리가 후들거려서 일어나지 못할 정도였어요. 복싱은 호흡이 중요해서 강약강약으로 공격을 해야 하는데, 그날은 강강강강으로 몰아붙여서(웃음).”
-무슨 생각을 했나요?
“포기할 수는 없으니 일단 이기자. 경기 중에는 다시는 경기를 안 뛰어야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그런데 벌써 8경기를 뛰었네요.
“이기면 못 그만둬요. 중독이죠. 승리의 쾌감도 있고요. 왜 복싱을 하냐, 무엇 때문이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어요. 답을 할 수가 없었어요. 저 스스로도 ‘내가 이걸 왜 하고 있지’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최근에 조금은 알 것 같아요.”
-왜죠?
“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인 것 같아요. 세계 챔피언도 굉장히 높은 확률로 저는 이룰 거 같거든요. 그래서 못 그만둬요.”
-솔직히 이해는 잘 안 돼요.
“어떤 기자는 ‘고통을 즐기시나요?’라고 물어요. 아니, 그런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어요? 너무 괴롭고 하루하루 죽을 것 같은데요. 지금은 아무도 이루지 못한 걸 내가 해봐야겠다는, 그 생각뿐입니다.”
-이겼을 때 쾌감을 설명한다면.
“이기고 나면 제 경기 영상을 백 번, 이백 번 돌려봐요. 너무 좋아요. 이겨본 사람만 알 수 있어요. 운이 좋아서 이긴 게 아니에요. 죽을 것 같지만 그걸 이겨내서 운동한 자만이 얻을 수 있는 기쁨이죠.”
◇진다는 생각은 한 번도 안 해
서려경은 2018년 프로 데뷔 후, 2021년까지 다섯 경기를 뛰었다. 2022년 서울 삼성병원에서 펠로우 2년 차에는 경기를 뛰지 못했다. 그럴 여유가 없었다. 의사로서의 삶도 살아내야 했다. “그래도 목표가 있었으니까 운동은 쉬지 못했어요. 하루종일 논문 쓰고 환자 보고 나서 퇴근하면 또 운동을 했죠. 평생 흘릴 눈물을 그 1년에 다 흘린 것 같아요. 그 정도로 힘들었어요.”
지옥 같은 해를 보낸 뒤 올해 세 경기를 뛰었다. 1년을 쉬었지만 경기력은 더 향상돼 있었다. 모두 KO로 이겼다. 그녀의 주먹을 맞고 링을 멀쩡하게 걸어나간 상대는 없었다. 지난 7월 한국 챔피언 타이틀전에선 임찬미 선수를 가볍게 꺾었다. “귀를 세게 맞아서 피멍이 들었는데요. 찬미 언니도 링을 내려갈 때 살짝 보니까 온몸에 멍이 들었더라고요. 이길 거라고 생각은 했어요. 왜냐면 그만큼 열심히 했거든요.”
-작년엔 경기를 하지 않았어요.
“의사로서도 할 일은 해야 했으니까요. 큰 규모의 병원에서는 중환자도 많고요. 그래도 기량이 떨어지지 않아야 선수를 계속할 수 있기 때문에 울면서 운동을 했죠.”
-그리고 나서 1년 만에 올해 초 중국 선수와 붙었어요.
“체중이 55kg였는데 7kg을 빼야 했어요.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운동을 했어요. 못 먹으면서요. 생리까지 끊기더라고요.”
-그 정도로 힘든데 또 해냈어요.
“병이에요. 하하. 완벽주의. 생각대로 안 되면 스트레스를 엄청 받는 스타일이거든요. 이미 최소 한국 챔피언은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때였기 때문에 그만둘 수 없었죠.”
-경기 전에 질 수도 있겠구나 했나요?
“전혀요. 운동을 많이 하면 질 것 같지 않아요. 질 생각도 없었고 KO로 끝냈죠. 제 주먹이 스치면 다 가는 거죠. 하하.”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안 되네요.
“저와 스파링을 했던 어떤 선수 분이 맞아 본 여자 선수 중에 제일 세다고 할 정도예요.”
-2020년에는 유일하게 무승부 판정이 난 경기도 있긴 했어요.
“저는 이긴 경기로 생각했는데요. 더 확실하게 이겼어야 했죠.”
-너무 세게 맞아서 아팠을 때도 있나요?
“보디(배와 가슴)를 제대로 맞으면 진짜 아프거든요? 저는 그렇게까지 아프게 맞은 적이 없어요. 데뷔전 때 눈이 파랗게 멍든 거 빼고는 피 한번 안 흘려봤어요. 눈을 맞아서 잠깐 두 개로 보인 적은 있지만. 그런데 관장님이 그럴 수 있다고 여러 번 워닝(경고)을 줘서 안 그런 척했죠.”
-안 아픈 척이 되나요?
“빨리 정신 차리고 제가 더 세게 때려야죠. 아프다고 그러고 있으면 안 돼요.”
-가장 기뻤을 때는 언제죠?
“한국 챔피언이 됐을 때요. 타이틀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완전 다릅니다.”
-그 타이틀전에서 질 거란 예측도 많았어요.
“댓글도 봤어요. 그런데 저는 한 번도 진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이렇게 열심히 했는데 어떻게 지지?’ 생각했죠.”
-슬럼프도 있었나요?
“심적으로 힘들긴 했지만 체력적인 슬럼프는 없었어요.”
-은인을 꼽자면.
“당연히 손정수 관장님이죠. 관장님이 아니었다면 여기까지 못 왔을 겁니다. 복싱을 가르치는 스킬은 따라갈 자가 없을 거 같아요. 국내 톱이죠.”
-서로 존대를 하더라고요.
“이 바닥에선 욕은 기본이고 ‘이 새끼야’라고 불러요. 그런데 관장님은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어요. ‘내가 선생님을 존중해야 다른 사람들도 막 하지 않는다’면서요. 안 그랬다면 제가 애정을 못 붙였을 것 같아요. 너무 감사하죠.”
◇“그만하라”는 걱정은 이제 실례
서려경은 지난 5년 동안 별의별 소리를 다 들었다. “신나게 두들겨 맞아봐야 정신 차리지.” “잘못 맞으면 진짜 죽어.” 이기고 올 때마다 병원 사람들도 한숨을 쉬었다. “또 이겼다고? 하....” 엄마도 오빠도 예외는 아니었다. 말은 안 했지만 속으로 끙끙 앓았다. “이해는 해요. 그래도 저는 복싱하는 제 모습이 너무 좋아요. 힘들어도 너무 좋아요. 복싱이 제 삶을 지탱해줘요.”
-처음에 복싱한다고 했을 때 가족 반응은 어땠나요?
“좋아했죠. 운동한다고 하니까요. 그런데 이렇게 할 줄은 몰랐겠죠.”
-가족들이 경기장에도 왔나요?
“엄마는 새가슴이라 덜덜 떨어요. 오지도 못하고 생중계도 못 봐요. 한 살 위 오빠는 저를 끔찍하게 생각하는데 한번 왔다가 충격받은 모양이에요. 관장님이 경기 도중에 보니까 오빠가 울더래요.”
-왜 울었대요?
“제 경기 전에 남자 경기가 있었는데 ‘어떻게 저런 걸 우리 려경이가 하지? 쟤가 의사까지 돼서 저런 흉악한 걸 왜 하고 있지?’ 하면서 멘붕이 왔다더라고요.”
-지금은 어떤가요?
“매번 ‘이것까지만 하고 그만하라’고 했어요. 그런데 한국 챔피언이 되니까 ‘이제는 그런 말 자체가 실례다’ 하더라고요. 자주 안 보는 친척들이나 초면인 사람들이 너무 쉽게 걱정한답시고 그만하라고 하잖아요. 제 노력을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쉽게 얘기하면 안 되죠.”
-병원에선 어떤가요?
“대놓고 싫어하는 분도 있고, 애정을 가지고 진심으로 걱정해주시는 분도 있어요. 한번 져야 정신차릴 텐데 왜 또 이겼냐고도 하고요. 그래도 센터장님은 그냥 하고 싶은 거 하라고 늘 이해해주셨어요.”
-이제 좀 달라졌나요?
“확실히 한국 챔피언 되고는 많이 바뀌었어요. 병원장님도 불러서 ‘대단하다’ ‘응원한다’ 해주셨고요.”
-그래도 복싱이 험한 운동은 맞잖아요.
“선입견이에요. 체육관에는 정신이 건강한 사람들만 모여요. 순수하고 맑죠. 운동 좋아하면 안 건강할 수가 없잖아요.”
-어쨌든 유명해졌어요.
“알아보시는 분들이 있긴 하지만 저는 주목받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그래도 신기하긴 하죠.”
◇소아과 의사의 삶도 쉽지 않아
서려경은 솔직했다. 재는 게 없다. 앞뒤 가리지 않고 숨기지도 않았다. “의사요? 공부도 잘했고요. 돈도 많이 벌고 멋있어 보이니까 했죠. 하하.” 이럴 땐 딱 MZ였다. 소아과 의사의 현실에 대해선 뼈 때리는 말도 꺼내놓았다. “의사로도 만족합니다. 힘든 시간이 있었지만 그것도 다 이겨냈고요. 다만 소아과 의사로서는 부담이 있어요. 타과 의사와 비교하면 스트레스는 크고 보상은 적죠. 동료들도 비슷한 고민을 해요.” 돈만 많이 준다면 직업 복서의 삶도 괜찮을 것 같다고 농담 같은 진심도 털어놨다.
-공부로도 1등만 했나요?
“내신은 그다지 좋지 않았지만 모의고사는 그랬던 것 같아요.”
-의사는 왜 됐나요?
“공부 잘하면 의사해야 한다는 말에 세뇌된 것 같기도 하고. 멋있긴 하잖아요. 경찰, 의사 둘 중 하나가 돼야겠다고 생각은 했어요. 형사가 됐어도 잘했을 것 같아요. 경찰이 돈을 더 잘 벌었다면 경찰이 되지 않았을까요?”
-소아과를 택한 이유라면.
“성형외과 가고 싶었어요. 그런데 경쟁이 너무 셌어요. 눈에 보이지 않는 남녀 차별도 있었고요. 일반외과를 가려고 했는데 지원자가 거의 없더라고요. 그래서 어쩌다가 소아과에 왔네요. 하하.”
-통상 이런 질문을 하면 ‘아이가 좋아요’라고 하는데.
“동기들이 ‘서려경이 소아과를 간다고? 진짜 안 어울린다’고 했어요. 제가 아이들에게 ‘오구, 오구’ 하는 스타일이 아니거든요. 그런데 신생아 중환자실은 잘 맞아요. 특수성이 있으니까요.”
-요즘 소아과 지원율이 낮아요.
“바보가 아닌 이상 스트레스 많고 보상 적은 곳을 왜 가려고 하겠어요. 소아과 전문의 따고도 성형외과, 피부과에서 페이닥터하는 친구들도 있어요.”
-심각하네요.
“피부과에서 100만원 내는 건 안 아까우면서 소아과에선 1만~2만원 나오면 난리가 나요. 진료를 할 수 없게끔 전화해서 따지죠. 착한 친구들이 현장에서 인격이 다 변해요. 수명이 단축되는 느낌을 받아요. 시스템이 변해야 합니다.”
-나중에 개업할 생각도 있나요?
“저는 대학병원에 있을 생각이에요. 여기를 나간다면 저도 소아과를 계속할지, 다른 선택을 할지 모르겠어요.”
-의사로서 가장 보람된 일이라면.
“제가 있는 신생아중환자실은 생사의 갈림길에 있는 아기들이 많아요. 제가 맡은 아기가 극적으로 좋아지고 퇴원하고 나중에 걸어서 진료받으러 오면 그 기분은 말로 할 수 없죠.”
-의사 서려경과 복서 서려경, 하나만 택한다면요?
“더 애정이 가는 건 복서예요. 하지만 먹고사는 일이 중요하잖아요. 지금까지 의사를 하려고 들인 노력이 너무 커요. 이제 의사는 할 만한데 복서는 계속 힘들 테니까 지금은 의사가 낫죠.”
-직업 복서는 돈 벌기 쉽지 않죠?
“진짜 세계적으로 유명한 선수가 돼야만 벌 수 있는 구조예요. 파이트 머니 개념인데, 이번에(태국 선수와 맞붙은 세계 타이틀 매치 전초전) 200만원 받았어요. 그나마 좀 유명해서요. 그 전엔 20만원, 40만원 이렇게 받았던 것 같아요. 몇 달 준비해서 고작 이 정도죠.”
◇이제는 세계 챔피언이 꿈
그녀의 눈은 링 위에서 더 빛이 난다. 노려보면 쳐다보기조차 무섭다. “제가요? 저는 제가 그런지도 몰랐네요. 사실 아무 생각이 없어요. 맞기 싫으니까 빠르게 집중하느라 그런 것 같아요.” 그녀는 선천적으로 한쪽 발가락이 네 개뿐이다. 발 사이즈도 양쪽이 1cm 차이가 난다. “친한 친구들도 몰라요. 숨겼죠. 그런데 다 극복했어요. 이제 어렵지 않게 다 얘기해요. 다들 이런 상처쯤은 갖고 있잖아요.” 유명해지니까 정계 입문을 권유받기도 했다. “운동하기도 힘든데 정치요? 저는 복잡한 일은 하고 싶지 않아요. 단칼에 거절했죠.”
-정계에서 혹시 영입 제안이 왔나요?
“말해도 되는지 모르겠는데요. 얼마 전에 전화를 받았어요. 누가 연락이 와서 정계 입문? 이런 처음 듣는 말을 했어요. 저는 할 생각이 전혀 없어요.”
-사람 일은 모르잖아요.
“저는 운동하는 사람이에요. 그래도 나중 일은 모르긴 하죠. 지금으로선 정치는 절대 안 할 것 같긴 합니다.”
-아직 미혼인데요.
“결혼은 해야죠. 그렇다고 막 아무하고 하고 싶진 않아요. 그런데 남자를 만날 일이 없네요. 도대체 어디서 만나죠? 하하. 저더러 눈이 높다고 하는데 그건 아니거든요. 듬직하고 아빠 같은 쿨 가이를 좋아합니다.”
-롤모델은 있나요?
“세계적으로도 여자 선수는 별로 없어요. 일본의 이노우에 나오야를 가장 좋아해요. 움직임, 타이밍 모든 게 완벽한 선수죠. 최대한 배우고 싶어요.”
-언제까지 복싱을 할 건가요?
“세계 4대 복싱 기구 중 하나만 따도 찐이거든요. 그런데 관장님은 통합도 가능하다고 해요. 마음이 정해지고 그 목표를 이루면 저는 딱 뒤돌아서 나올 것 같아요.”
-MZ 친구들과는 다른 삶인데요.
“그러니까요. 오래 남지 않았어요. 1~2년 안에 결정짓고 빠져나와야죠. 원래 알코올중독이란 소릴 들을 정도로 매일 술을 먹었거든요. 주량은 소주 세 병. 지금은 경기 잡히면 몇 달이고 술은 입에 안 대요.”
-특별히 몸보신하는 음식이라면.
“다 잘 먹어요. 전주 사람이다 보니 엄마가 음식에 대한 긍지가 있어요. 엄마가 와서 밥해주면 다 잘 먹습니다.”
-의사인데 따로 먹는 약은?
“저는 영양소를 약으로 채우지 않아요. 고기 등 음식 위주로 먹지, 강박적으로 하진 않아요. 감기 걸려도 병원 안 가고, 운동하다가 다쳐도 파스 한번 붙여본 적 없어요.”
-왜죠?
“크게 의미 없다고 생각해요. 시간이 지나면 다 이겨내게 돼 있거든요.”
서려경의 목표는 지금 하나다. 세계 챔피언. “이겨야만 하죠. 이제 물러설 곳이 없어요.” 복서로서 이루고자 하는 걸 이루고 난 뒤에는 또 무얼 할지 벌써 행복한 고민도 한다. “다이빙을 좋아해요. 한번은 제주도에 가서 다이빙을 하다가 정착할까 심각하게 생각했어요. 그사이에 복싱에 빠져서 이렇게 됐지만요. 복서 은퇴하고 나면 일본, 필리핀 같은 데 가서 열대 과일 먹으면서 원 없이 바다에 뛰어들어 쉬고 싶어요.”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