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만 영화 ‘서울의 봄’ 주인공들의 묫자리는 어떨까
[김두규의 國運風水]
영화 속 전두환과 장태완
묫자리로 본 풍수의 ‘발미론’
영화 ‘서울의 봄’이 1100만 관객을 모았다. 1979년 12·12 사태로 전두환이 권력을 장악하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이다. 영화 속 전두광(황정민)과 이태신(정우성)은 전두환과 장태완 두 군인의 가명이다.
실제 12·12 사태 당시 풍수 호사가들에게도 전두환은 큰 사건이었다. 생가와 선영이 명당이라서 대통령이 되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물론 그것은 풍수의 본질이 아니다. 그러나 ‘제왕은 하늘이 낸다’는 왕권신수설과 풍수설이 ‘세트’로 엮이던 시절이었다. 전두환의 ‘풍수 왕권신수설’은 단순한 소문이 아니었다. 육관도사 손석우(1928~1998)씨가 진원지였다. 평소 그는 ‘전두환이 왕이 될 자리를 소점해 주었다’고 자랑했다. 훗날 쓴 ‘터’(1993)라는 책에서도 자세히 소개한다. 10만부 넘게 팔린 베스트셀러다. 이 책에서 그는 전두환과의 인연을 소개한다.
“1978년 전두환의 처삼촌 이규광이 한남동 나(손석우)의 집을 찾아왔다. 아버지 이봉희(이순자 조부)를 위해 명당을 찾아달라고 부탁을 했다. 길지를 소개해 주었는데, 돈이 없다고 난색을 표한다. 하는 수 없이 국유지를 추천하였다. 왕비가 날 자리이니 가능한 한 빨리 은밀히 새벽 암장을 권하였다. 이규광·이규성·이규동(이순자 부친) 3형제가 망우리에 있던 선친 묘를 신고도 없이 몰래 이곳으로 이장하였다.”
이장을 한 뒤 2년 만에 손녀(이순자)가 ‘왕비’가 되었다. 단지 손석우의 허풍이라 말할 수 없다. 이장지는 용인시 내사면 금박산에 자리한다. 필자도 1990년대 중반 현장을 답사하였다. 손석우씨의 터 잡기 특징이 드러나는 땅이었다. 전두환의 입장에서는 처갓집 명당 덕을 본 것이다. 손석우의 이야기는 이어진다.
“전두환 5공화국이 들어서자 나는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어느 날 전기환·전경환 두 형제가 이순자의 소개로 나를 찾아왔다. 합천에 있는 부모 묘 보수를 위한 자문이었다....”
손석우씨가 말한 전두환 선영은 합천군 율곡면 기리 산 81에 있다. 최근까지도 호사가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필자 역시 호기심을 못 이겨 2001년 그곳을 가보았다. 전문 지관이 잡은 자리가 분명하였다. 부모 묘 진입 직전 30여m 아래에 전두환 자신을 위한 묫자리(신후지지)를 조성해 놓았다. 역시 지관이 잡은 자리였다. 필자가 당시 이곳을 답사했을 때 어떤 풍수사가 그 자리에 누워 있었다. “기를 받는 중”이라고 했다.
2021년 전두환이 사망하였다. 묘지를 찾지 못해 자택에 유골을 보관 중이다. 파주에 묘지를 쓰려 하였으나 반대에 부딪혔다. 왜 고향 신후지지로는 가지 않을까? 지난 12월 13일, 필자는 합천을 다시 찾았다. 부모 묘는 멀쩡한데 신후지지는 잔솔에 덮여 계단석만 희미하게 보였다. 최소 10여 년 동안 관리를 하지 않았다. 왜 파주에도, 합천에도 가지 못한 것일까? 풍수 격언이 생각난다. 악함을 행한 자에게는 ‘하늘이 땅을 주지도 않고, 땅은 그 사람을 받지도 않는다(천불이지불수·天不貽地不受)’.
‘서울의 봄’을 짓밟은 전두환이 악한 일만 하였을까? 권력 장악 초기부터 백담사 유폐 때까지 전두환과 친했던 소설가 이병주의 평이다. “통행금지 해제, 교복 자율화, 해외여행 자유화, 혁신 정당 허용, 판금 서적 해제가 그의 업적이다. 특기할 공적은 연좌제 폐지였다.”(안경환, ‘이병주 평전’)
작은 업적들이 큰 악을 덮을 수 있을까? 참고로 ‘서울의 봄’을 지키고자 했던 이태신(장태완) 장군의 무덤은 어떨까? 대전현충원 장군 묘역에서도 가장 좋은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덕을 행하면 하늘이 반드시 길지로 보답한다”는 풍수서 ‘발미론’은 이를 두고 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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