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가족 중심’의 미국
한 해가 저무는 이맘때면 워싱턴DC는 평소와 달리 한적해진다. 미국 정부와 의회, 관련 업계의 많은 사람이 가족과 함께 연말을 보내려 도시를 떠나기 때문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올 연말을 부인, 손녀와 카리브해의 휴양지 세인트크로이섬에서 보내고 있다. 미국 연방 상·하원도 크리스마스 전주부터 휴회에 들어가 의원과 보좌진 대부분이 지역구나 고향으로 떠났다.
미국 직장에도 송년회가 있고, 미국인들도 일 관계로 만났던 사람들과 연말 파티를 한다. 그렇지만 한국에서처럼 한 해의 끝 무렵까지 술자리가 이어지는 일은 흔치 않아 보인다. 크리스마스의 위상이 다르기 때문도 있지만, ‘연말은 가족과 함께’란 생각도 더 강하게 느껴진다. 일과 관련된 송년 모임은 12월 초·중순에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지난 17일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최근에는 점심이나 오후를 이용해 업무 시간 내에 송년회를 하는 기업도 많아졌다고 한다.
평소에도 미국 기관이 주최하는 친목 모임을 보면 늦은 오후에 시작해 초저녁에 마치는 경우가 많다. 퇴근 후 자녀를 돌보러 가야 하는 맞벌이 부모가 많은 것이 그 이유 중 하나라고 들었다. 바이든 행정부 출범 초 백악관은 저녁 7시 대면 브리핑을 몇 번 열었다가 육아하는 직원과 기자들을 배려하지 않는다는 언론의 비판을 받았다. 이후 백악관 대면 브리핑은 대부분 업무 시간에 열린다.
서구 선진국 중에서는 노동 시간이 길고 가혹하다는 평가를 받는 미국이지만, 한국은 이런 미국과 비교해도 더 가정 친화적이지 못하다. 한국 대통령실 직원이나 출입 기자가 업무 시간 외 근무가 꼭 필요한지 문제를 제기했다면 아마 “집에 가서 영원히 애나 보라”는 핀잔을 들었을 것이다.
한국 젊은이들과 얘기해 보면 아버지는 늘 외부 활동에 바빴고, 어머니와는 공부 문제로 갈등이 많았다든지 해서 어린 시절이 별로 행복하지 않았다는 이들이 의외로 많다. 그래서 아이를 안 낳는다는 이들도 있다. 한국의 출산·육아 지원 제도가 미국을 포함한 많은 나라보다 좋은데도 출산율은 세계 최저인 것은 급격한 산업화와 경제성장을 거치며 ‘가족이 함께하는 행복’의 경험이 이처럼 부족해졌기 때문은 아닐까.
사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저출산은 미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가 겪고 있는 문제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출산도 개개인이 행복을 고려해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피임 기술의 발전, 개인의 행복추구권을 보장하는 사회 제도의 진보, 노동력이 덜 필요하게 된 산업 구조의 변화 등이 복합 작용한 결과다. 이런 시대의 젊은이들이 아이를 낳기로 결정하는 데는 자녀와 함께하는 것이 ‘행복한 경험’이란 생각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런 경험을 할 수 있는 가정 중심의 문화가 그래서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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