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배의 공간과 스타일] [217] 뉴욕의 연말을 위한 식료품점
새해 첫날 일찍 일어나 차례를 지내고 세배 드리는 우리와 다르게 미국은 한 해의 마지막 날 파티를 즐기느라 새해엔 늦잠을 자는 경우가 많다. 연말엔 각종 행사가 이어지고, 집에서 친지들과 어울리는 경우도 자주 있다. 이런 홈 파티에 필요한 음식 장만을 위해서 뉴요커들은 가까운 식료품점을 찾는다. 미국의 다른 주라면 넓은 주차장을 갖춘 초대형 수퍼마켓이 도처에 있겠지만, 맨해튼은 사정이 다르다. 보통은 차가 없고, 가게 앞에 주차도 할 수 없으므로 고객은 걸어서, 또는 대중교통으로 매장에 온다. 그래서 간혹 뉴욕 배경의 영화에서 보이는 것처럼 양손의 브라운 백에 들고 갈 만큼만 구매한다. 이러한 이유로 맨해튼에는 중소 규모의 식료품 전문점(Food Specialty Market)이 더 발달해 있다.
그중 대표적인 장소가 ‘제이바스(Zabar’s)’다. 1920년대 우크라이나에서 미국으로 이민 온 루이스 제이바에 의해서 창업된 식료품점이다. 영화 ‘유브 갓 메일’에서 주인공 톰 행크스와 멕 라이언이 시비하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이곳의 가장 특별한 상품은 ‘노바(Nova)’라는 연어로, ‘록스(Lox)’로 불리는 염장 연어와 다르게, 살짝 염장 후 훈제 과정으로 마무리해서 덜 짜고 감칠맛이 좋다. 특히 연중 가장 붐비는 12월 31일, 7-8명의 직원이 카운터에서 훈제 연어를 썰고 있는 장면은 지극히 뉴욕다운 퍼포먼스다.
이런 풍경을 느낄 수 있는 또 한 곳이라면 ‘러스 앤드 도터스(Russ & Daughters)’. 4대째 가업을 이어가고 있는 식료품점으로, 1914년 폴란드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온 조엘 러스에 의해서 창업되었다. 당시 유럽에서는 가업을 물려받는 일이 많아 보통 상호를 ‘누구와 아들들(... & Sons)’로 붙였지만 아들이 없었던 러스는 ‘딸들(Daughters)’로 명명했다. 근래 MZ세대 사이에서 훈제 연어와 크림 치즈를 넣은 베이글 인증샷으로 유명한 장소이기도 하다. 세모에 이곳에 들려 번호표를 뽑는다면 보통 100여 명 정도의 고객이 앞에서 대기하고 있음을 각오해야 한다. 이곳의 청어와 훈제 연어, 베이글 역시 정평이 난 뉴욕의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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