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 전 새해 인사
[아무튼, 레터]
해마다 이 무렵이면 신년 인사를 입에 달고 산다. 누군가 만날 때마다 주거니 받거니.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는 문자 메시지나 모바일 메신저에서도 이 시즌의 메아리처럼 울려 퍼진다. 복(福)은 그 사람이 무슨 일을 하고 어떤 바람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새해 표 많이 받으세요’(정계) ‘새해 복 많이 당기세요’(금융업계), ‘새해 복 많이 잡수세요’(외식업계), ‘새해 북(book) 많이 받으세요’(출판계). 분야마다 방점이 찍히는 자리가 제각각이다.
최근에 출간된 ‘사진으로 읽는 군인 백선엽’의 책장을 넘기다 203쪽에서 눈길이 붙잡혔다. 포격으로 황량해진 민둥산을 배경으로 미군들이 새해 인사를 하는 사진이었다. 6·25에 참전 중인 군인 11명이 큰 글자를 적은 종이를 든 채 카메라를 보며 웃고 있었다. 글자를 이어 붙이면 Happy New Year from Korea 1952. 그 흑백사진 옆에 ‘1951년 12월 14일 강원 금성 지구에 모인 미국 미주리주 출신 병사들이 새해 인사가 적힌 글자판을 들고 있다’는 설명이 있었다.
세 가지가 특별했다. 내일의 생사조차 가늠할 수 없는 전쟁터에서 새해 인사를 한다는 점이 그랬다. 사진에서 ‘나는 이렇게 건강하니 안심하세요. 내년엔 집으로 돌아갈 겁니다’라는 열망이 묻어났다. 둘째, 다들 밝은 표정인데 ‘Happy’ 글자판을 든 병사만 불행해 보였다. 집단이 한 가지 목표로 뭉쳐 있더라도 어떤 구성원은 비관하고 다른 방향을 바라본다는 사례였다. 마지막으로, 70여 년이 지난 그 새해 인사가 지금 여기에도 어떤 울림을 준다는 게 흥미로웠다.
한국이라는 땅, 한미 동맹 70년, 새해라는 발명품이 전쟁 속 그들과 평화 속 우리를 연결하고 있었다. 출발점이던 저 폐허, 헌신과 희생, 삶은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이 뒤섞였다. 무사히 귀국했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생존해 있다면 모두 아흔 살이 넘었을 것이다.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그들에게 새해 인사를 띄운다. Happy New Year from Korea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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