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뷰] ‘나의 아저씨’를 이렇게 보낼 순 없다
‘극단적 선택’이란 표현, 과연 맞나
함께 브레이크 걸어야 할 사회문제
배우 이선균의 명복과 평안을 빈다
배우 이선균과 그의 연기를 좋아한다. 내 또래 많은 남자들이 간증하듯, 드라마 ‘나의 아저씨’(2018)에는 삶과 일에 지친 중년 사내들을 위로하고 각성시키는 힘이 있었다. 다시 꺼내 읽은 5년 전의 메모장에 드라마의 대사가 적혀 있다. “인생도 어떻게 보면 외력과 내력의 싸움이야. 무슨 일이 있어도 내력이 세면 버티는 거야.” 드라마에서 이선균은 건축구조기술사. 자신의 다짐과 달리, 그의 내력은 버티지 못했다. 아니, 망신주기식 수사로 일관한 경찰과 조회수에 눈먼 유튜브·SNS·일부 언론, 이를 가학적으로 소비한 대중이 그의 내력을 빼앗았다는 게 더 정직한 고백일 것이다.
이선균의 죽음을 깊이 애도하면서, 이 사건이 개인적 비극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언젠가부터 언론은 자살 대신 ‘극단적 선택’이란 표현을 사용해 왔다. 유명인의 자살을 대중이 따라하는 베르테르 효과를 막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선택’이란 명사는 종종 타인과 사회에 면죄부를 안기는 법이다. ‘개인적 선택’ 혹은 ‘자발적 선택’처럼, 자신의 의지에 따른 죽음이란 함의를 그 안에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극단적 선택’이란 표현은 과연 옳은가.
언론에 크게 소개되지는 않았지만, 올해 7월 김용 전 세계은행 총재와 정신과 의사인 나종호 예일대 의대 교수가 윤석열 대통령을 조용히 면담했다. 국민 정신건강이 주제였는데, 핵심 키워드 중 하나가 자살이었다.
한국이 OECD 38국 중 자살률 1위라는 오명(汚名)을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작년에도 인구 10만명당 24.1명으로 압도적 1위였다. OECD 평균값은 11. 1명이니, 두 배를 훌쩍 넘는 수치다. 노인들의 높은 자살률이 가장 큰 이유였는데, 최근 몇 년 사이에 청년 자살률도 증가했다. 2017년 10만명당 16.4명이던 20대 자살률은 2021년 23.5명으로 늘어났다. 통계청은 더 무서운 수치를 알려준다. 지난해 한국 10대, 20대, 30대의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이었다. 다른 모든 세대의 사망 원인 1위가 암인데, 청년 세대는 그렇지 않았다. 20대에서 죽은 사람 둘 중 하나(50.6%)는 자살이었다.
물론 사회와는 무관하게 자신이 가진 유전적 질환이나 개인적 이유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적지 않은 설문조사들은 노인 자살의 가장 중요한 이유로 경제적 빈곤, 청년 자살의 핵심 원인으로 희망이 보이지 않는 현실을 꼽고 있다. 나종호 예일대 교수는 “자살의 의미를 ‘개인적 선택’으로 축소하고 터부시하기에 자살은 너무 거대한 한국 사회의 단면”이라며 “우리 모두 적극적으로 브레이크를 걸어야 하는 사회문제”라고 했다.
이 사안은 보수나 진보라는 이념적 지향의 차원을 넘어선다. 수사는 경찰이 했는데 검찰 독재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야당처럼 정치적 선동으로 소비할 사안도 아니다. 그러기에는 최근 20년간 두 해를 제외하고는 늘 OECD 자살률 1위 국가라는 불명예가 너무 무안하다.
일본은 국가 주도로 최근 10년간 자살률을 30% 감축했다고 한다. 우리 정부 역시 전 국민 정신건강 관리를 위한 종합 대책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2024년은 사회적 죽음으로서의 자살을 어떻게 줄일 수 있을지 정부와 국민이 함께 고민하는 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가는 외력을 낮추도록 시스템을 개선해야 하고, 개인도 내력을 키우도록 세계관을 바꿔야 한다. ‘나의 아저씨’를 이렇게 보낼 순 없다. 부디 하늘에서 평안에 이르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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