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부동산 모두 침체인데... 왜 한국만 PF부실 터졌나
국내 건설업계 16위인 태영건설이 지난 28일 워크아웃(기업구조개선)을 신청하게 된 결정적 원인은 과도한 프로젝트파이낸싱(PF) 보증 규모(3조7000억원) 때문이다. 수주 물량을 늘리려고 무리하게 PF 보증을 남발한 상황에서 부동산 경기가 예상보다 빠르게 얼어붙자 사업이 지연되면서 원리금 상환을 감당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부동산 PF(Project Financing)는 부동산 개발 사업을 추진하면서 미래에 들어올 분양·임대 수익금을 기초로 자금을 조달하는 금융 기법이다. 그런데 고금리 장기화로 부동산 시장이 침체한 것은 전 세계적인 현상인데, 유독 한국에서만 PF 부실 문제가 부각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기형적으로 변질한 한국 부동산 PF 구조 때문”이라며 “지금 같은 ‘한국형’ PF 구조가 유지된다면 앞으로도 부동산 경기가 나빠질 때마다 제2, 제3의 태영건설 사태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미국·일본 등에선 건설비만 PF 대출로 조달
미국·일본 등은 부동산 개발 사업의 주체가 상당한 자기 자본과 다양한 투자자로부터 조달한 자금으로 토지를 사고, 사업 인허가가 완료된 상태에서 PF 금융이 시작된다. 공사비와 기타 사업비만 PF 대출로 조달하는 구조란 얘기다. 각종 펀드나 리츠·연기금·개인투자조합 등 다양한 자본 조달원이 발달해 있고, 부동산 개발업체도 대부분 대기업이어서 자금 조달이 쉽다.
일본 도쿄를 대표하는 복합상업시설 ‘롯폰기힐스’의 경우 개발사인 모리빌딩이 총사업비 약 2700억엔(2조4600억원)의 37%에 해당하는 약 1000억엔을 직접 출자했다. 미국도 개발사가 총사업비의 20~30% 수준의 초기 자본금을 마련하고 토지담보대출을 받아 건물을 세울 땅을 산다. 이후 투자자들로부터 자본을 조달해 토지담보대출을 상환하고 나서 공사에 필요한 자금만 PF 대출을 일으킨다.
반면, 우리나라 개발사(시행사)는 총사업비의 5~10%만 자기자본을 넣고, 나머지 모든 사업비(토지비와 공사비)를 전적으로 PF 대출과 분양대금으로 마련한다. 대다수 시행사 규모가 영세한 탓이다. 현재 부동산개발업체(시행사)는 자본금 3억원만 있으면 설립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돈을 빌려주는 금융기관은 PF 대출을 심사할 때 공사를 할 건설사의 신용등급과 보증(신용보강)에 의존한다. 원래 부동산 PF 사업에서 건설사는 시행사와 도급 계약을 맺고 공사만 하면 되는데, 결과적으로 사업 리스크 대부분을 시행사와 함께 떠안는 현실이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올해 9월 말 기준 국내 대표 건설사 16곳이 PF 대출에 대해 보증을 선 금액은 총 28조3000억원으로 2020년 말(16조1000억원)보다 75% 늘었다.
선진국에서 건설사는 공사만 잘하면 되기에 해당 프로젝트에서 나중에 문제가 발생해도 제한적인 리스크만 감수한다. 대신 금융기관은 PF 대출 심사를 할 때 사업성 평가를 철저히 한다. 입지 분석은 물론 현금 흐름 타당성, 자금 구조, 개발사의 사업수행능력을 종합적으로 따져 PF 대출 여부를 결정한다.
◇“건설사 신용에 의존하는 PF 구조 개선해야”
PF 사업의 리스크를 전적으로 부담하다시피 하는 국내 건설사들은 부동산 시장이 침체기에 접어들면 유동성 위기를 겪는 업체가 급증한다. 자금 경색으로 해당 사업뿐 아니라 보증을 선 건설사의 다른 사업장까지 영향을 미쳐 부도 가능성이 커지는 구조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도 PF 대출이 시공사의 신용에 기대는 게 아니라 선진국처럼 프로젝트로부터 발생하는 현금 흐름을 담보로 하고, 완공 후 건물의 가치 등을 평가해 자금을 조달하는 구조로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다만 이를 위해선 시행사의 자본 규모와 전문성이 강화되고, 금융기관은 사업성 평가 모델을 지금보다 훨씬 고도화해야 한다. 이보미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시행사의 자본 요건을 강화하고, 인센티브 제공을 통해 부동산 개발 초기 단계에 다양한 재무적 투자자의 참여를 유도해 건설사와 금융기관으로 PF 부실이 파급되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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