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 1인분은 몇 그램? 공깃밥·피자도 줄어들고 작아진다

김성윤 음식전문기자 2023. 12. 30.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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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외식에도 불만 폭발
슈링크플레이션 속사정

무역회사를 운영하는 A(48)씨는 지난주 싱가포르에서 온 고객을 서울 강남의 한 고깃집으로 데려갔다. “한국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삼겹살에 소주를 마시고 싶다”는 말을 듣고서다. 메뉴판을 훑어보던 A씨에게 새삼 의문이 생겼다. “평소에는 ‘삼겹살 2인분 주세요’ 식으로 주문해 몰랐는데, 1인분이 삼겹살과 목살은 150g, 항정살과 가브리살은 120g이더라고요. 원래 고기 1인분은 200g 아닌가요? 그리고 고기 120~150g을 성인 1인분이라 할 수 있나요?”

상품 가격을 올리는 대신 양을 줄이는 꼼수 인상을 뜻하는 ‘슈링크플레이션’이 문제가 되자, 외식 업체의 ‘1인분’에 대한 불만도 폭발하고 있다. ‘한 사람이 먹을 수 있는 한 끼 분량 식사’라는 사전적 의미에 합당한 1인분이냐는 것. 식당들은 “고기·채소 등 식자재 가격은 오르는데, 음식 값은 올릴 수 없어 궁여지책으로 양을 조절하는 것”이라고 항변한다.

서울 상암동 한우 전문점 '배꼽집'의 갈빗살 1인분 150g. 과거 고깃집 1인분 200g보다 4분의 1가량 적다. '1인분=120g'인 곳도 적지 않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25% 줄어든 고기 1인분

고깃집 1인분 중량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10여 년 전만 해도 고기 1인분은 200g이 일반적이었지만, 요즘은 150g이 대부분이고 120g인 고깃집도 적지 않다. 200g과 비교하면 150g은 25%, 120g은 40% 줄어든 셈이다.

20년 넘게 돼지고깃집을 운영해온 B씨는 “삼겹살은 서민 음식이란 인식이 강해 ‘1인분 2만원’이란 심리적 마지노선을 넘지 않으려 중량을 줄인다”고 실토했다. “삼겹살, 목살 등 구이용 부위는 이제 소고기 못지않게 비싸요. 하지만 이 불황에 가격을 올리면 손님이 떨어져나갈까 두려운 겁니다. 삼겹살 가격이 계속 오르고 있어서 언제까지 1인분을 2만원 이하로 유지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상대적으로 가격에 덜 영향받는 소고깃집들은 더 비싼 특수 부위를 팔기 위해 1인분 중량을 다르게 한다. 등심은 1인분에 150g인 반면, 토시살·치마살 등 특수 부위는 120~130g을 내는 식이다. 한우 전문점 C 대표는 “손님이 언뜻 보면 1인분 가격이 비슷하니까 평소 잘 먹지 못하는 특수 부위를 주문하게 하는 판매 전략”이라고 했다.

정부나 공공기관은 1인분 중량을 규제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고기 1인분은 200g을 정량으로 알고 있을까.

말만 없었지 과거에도 슈링크플레이션이 심각했다. ‘고객 우롱하는 얌체 상혼’이란 제목의 1973년 9월 본지 기사는 “설렁탕, 짜장면 등의 양이 눈에 띄게 줄어 한 그릇으로는 요기가 되지 않을 정도가 됐다. 일부 설렁탕집은 양을 줄인 후 고객의 불평이 잦자 최근엔 20~50원씩의 국수를 따로 팔아 모자라는 양을 채워 넣게 하거나 특제라는 이름으로 가격 인상을 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또 “커피는 잔이 두툼하고 작아졌을뿐더러 따르는 양도 반 잔을 간신히 넘기는 정도에 머무르는 것이 대부분 다방 레지들의 솜씨가 됐다”고 했다.

고기 1인분은 가게마다 들쭉날쭉이었다. ‘음식점서 파는 고기 1인분은 주방장 기분 따라 다르다’는 제목의 1984년 2월 본지 기사는 “음식점마다 1인분 고기의 정량이 달라 소비자들의 불만이 높다”고 전했다.

이런 소비자 불만과 불신을 없애기 위해 보건사회부(현 보건복지부)는 1985년 ‘식품의 정량 판매 기준’이라는 고시를 발표했다. 소·돼지·양고기 판매 기준을 200g으로 정했다. 판매 정량 기준은 1993년 폐지됐다. 하지만 ‘고기 1인분=200g’ 등식이 뇌리에 각인됐고, 식당들도 1인분 중량을 200g 내외로 유지했다.

2013년부터는 부가세가 포함된 실제 지불 가격과 함께 100g당 가격을 명시해야 한다는 법이 생겼다. 가격 비교를 수월하게 해 합리적 선택을 돕는다는 취지였다. 일부 최고급 한우 전문점은 이때부터 메뉴판에서 1인분 가격을 없애고 100g당 가격만 표시하고 있다. 한 외식 업계 관계자는 “고기 값이 그나마 덜 비싸 보이도록 100g 단위로만 표기하는 것”이라고 했다. 서울 서초구 어느 한우 전문점은 채끝 등심 가격이 100g 9만원. 1인분 120g으로 판매하면 10만8000원, 150g이면 13만5000원을 지불해야 먹을 수 있다.

그래픽=송윤혜

◇70년 만에 60% 줄어든 공깃밥

서울 중구 한 추어탕집은 밥을 반 공기만 내준다. 슈링크플레이션과는 다른 이유다. 종업원은 “손님들이 하도 밥을 남겨서 반 공기씩만 담아 내고 있다”고 했다.

‘한국인은 밥심으로 산다’는 말은 더 이상 맞지 않는다. 밥공기가 증거다. 밥공기 용량은 1940년대 680mL에서 1950년대 670mL, 1960~1970년대 560mL로 조금씩 줄어들다가 1980년대 390mL로 급격히 줄었다. 이후 1990년대엔 370mL로 줄어들었고, 2000년대 들어선 290mL로 더 작아졌다. 현재 일반 가정과 식당 등에서 흔히 쓰이는 밥공기가 290mL(290g)짜리다. 1940년대 밥공기(680mL)에 비하면 약 40% 수준. 70여 년 만에 한국인의 밥 먹는 양이 60% 가까이 축소됐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반 공기’ 밥그릇도 출시됐다. 밥을 기존 밥그릇의 절반 정도만 담을 수 있다. 반 공기에 물을 가득 채우면 190mL로, 흔히 볼 수 있는 종이컵과 용량이 같다.

호서대학교 식품영양학과 정혜경 교수는 “조선 시대에는 현대인의 두세배인 500~600g 정도의 밥을 끼니마다 먹었다”면서 “웰빙 열풍과 함께 소식(小食) 위주 식단이 권장되는 사회 분위기가 반영된 것”이라고 했다. 50~60대는 건강을 위해서, 20~30대 젊은 층은 다이어트를 위해서 식사량, 그중에서도 특히 밥 양을 줄였다는 설명. 밥 대신 빵을 먹는 등 식생활의 서구화도 한몫했다.

최근 쌀값이 가파르게 상승하며 1000원대에 묶여 있던 공깃밥 가격을 2000원으로 올리는 식당이 늘고 있다. 무려 100% 폭등이다. 2배나 껑충 뛴 가격에 “공깃밥 1000원은 ‘국룰’ 아니었나”라며 허탈하다는 반응이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소셜네트워킹 서비스(SNS)에는 공깃밥 가격이 2000원으로 표기된 식당 메뉴판 사진을 찍어 올리는 ‘공깃밥 2000원 인증’이 유행이다. 건강과 다이어트 때문이 아니라, 비싸서 밥을 먹지 못하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일러스트=김성규

◇1인치 작아지고 4000원 내린 피자

피자 알볼로는 지난 6월 피자 크기를 줄였다. 라지 사이즈는 14인치(12조각)에서 13인치(8조각)로, 레귤러 사이즈는 11인치(8조각)에서 10인치(6조각)로 조정했다. 대신 가격을 평균 4000원 인하했다. 피자 알볼로 측은 “업계 평균보다 컸던 도우(빵) 사이즈를 표준으로 조정한 것”이라며 “토핑 품질과 조각 수 대비 토핑 양은 그대로”라고 했다.

크기를 줄이며 가격을 낮춘 건 부진을 타개하기 위해서다. 피자 알볼로는 최근 3년간 영업이익이 지속적으로 감소했다. 피자 프랜차이즈 업계가 전반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다. 가격대가 낮은 냉동 피자, 가성비 PB 상품을 찾는 소비자가 많아졌다. 1인 가구 증가에 따른 외식 트렌드 변화에 맞추려는 이유도 있다. 1인 가구에게 기존 피자는 혼자 다 먹기에 버거운 편이다. 가격을 낮추는 한편 이제 대세가 된 1인 가구 맞춤 피자로 크기를 조정함으로써 전체적으로 주문량을 늘려 위기를 극복하겠다는 목표다.

일본에서는 더 작은 피자도 나왔다. 일본 배달 피자 전문점 ‘스트로베리 콘스’는 ‘P 사이즈’ 피자를 내놨다. P는 ‘퍼스널’이란 의미. 지름이 22.5㎝로, 인치로 환산하면 8.9인치에 불과해 국내 레귤러 사이즈보다 훨씬 작다. 1인 가구 중에서도 식사량과 소화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고령자도 혼자 한 판을 다 먹을 수 있도록 했다. 일본 인구는 현재 1억2000만명에서 2056년엔 1억명 미만으로 줄어들 전망인데, 이 중 40%는 65세 이상 고령자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일본 식품 업계는 저출산과 고령화로 1인분을 재정의하고 있다”며 “앞으로 일본에서 라지 사이즈 피자를 보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국 외식·식품 업계의 미래를 미리 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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