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이 있는 세상’의 창(窓)을 닫으며
[김황식의 풍경이 있는 세상]
한 해가 다 저물었습니다. 지나간 해를 돌아보고 마무리하며, 새해를 준비하는 시간입니다. 다사다난했다고 말하지 않은 해가 없었지만, 올해는 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 가운데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인류 평화와 번영의 세상은 멀어지고 갈등과 대립의 세상은 지속되고 있습니다. 국내 사정도 다르지 않습니다. 거짓말, 욕설과 궤변이 난무하는 정치권의 추한 모습 가운데 국민은 지쳐 있습니다. 내년에 나아지리라는 소망도 갖기 어려운 형편입니다. 이 세밑이 쓸쓸하고 마음이 허전한 이유입니다. 그래도 각자 나름대로 새해를 설계해야만 합니다.
저는 2022년 초 당시 조선일보 ‘아무튼, 주말’을 담당하던 김윤덕 부장의 부탁을 받고 칼럼을 쓰기 시작하였습니다. ‘풍경이 있는 세상’이라고, 어법으로는 조금 이상하나 멋을 부려 정감이 있어 보이는 문패(門牌)도 달았습니다. 첫 칼럼은 당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라, 전쟁의 안타까움을 담은 ‘기차는 8시에 떠나네’였습니다. 그리스 출신 메조소프라노 가수 ‘아그네스 발차’의 노래 제목에서 따온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전쟁의 조기 종결을 소망하며 같은 가수의 노래 제목 “우리에게도 좋은 날이 오겠지”를 인용하였습니다.
평생 공직자로 근엄한(?) 체하며 살아온 구각(舊殼)을 벗어 버리고자 하였습니다. 그저 편하게 읽히면서도 무언가 느낌이 남는 글을 쓸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즉, 정색하며 거룩한(?) 말씀을 전하는 것보다는 조금은 흐트러진 몸짓으로 더 인간적인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또 늑장을 부려도 좋은 주말 아침, 햇살이 들어오는 거실 아니면 침대 위에서 차 한 잔을 마시면서 가볍게 만나는 저의 글이 독자들에게 작은 공감으로 전달된다면 저에게도 기쁨이 될 것 같았습니다.
글을 쓰면서 몇 가지 다짐을 하였습니다. 거칠고 독한 이야기, 남에게 상처를 주는 이야기는 쓰지 말자고 하였습니다. 가까운 이웃에게 소곤소곤 대화하듯이 쉽고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전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래서 되도록 편하고 쉬운 낱말로 구어체(口語體)와 경어체(敬語體)로 썼습니다. 소리 내어 읽어 보면 그 느낌을 실감할 수 있도록 썼습니다. 이는 원래 판사가 법정에서 판결을 선고할 때 취해야 할 태도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가르치려 달려들지 않으며 유익한 지식이나 정보를 은근히 전하고, 읽고 나면 무언가 교훈이나 따뜻한 느낌이 남는 글이길 바랐습니다.
그러나 칼럼을 쓰는 내내 과연 다짐대로 하고 있는지 걱정하였습니다. 아무리 주말판에 칼럼 제목처럼 조금은 여유롭게 쓴다고 하지만 소재가 적절한지, 내용이 격에 넘치거나 부족한 것은 아닌지,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하지는 않는지, 설사 불편하게 하더라도 필요하다면 괘념치 않고 써야 하는 것은 아닌지 등 걱정거리가 적지 않았습니다. 다른 한편 칼럼을 시작하면서 품었던 또 다른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만 썼으면 좋겠다는 말이 나오기 전에 스스로 그만두는 타이밍을 잘 잡는 일입니다.
그동안 엘리베이터 안이나 길거리에서 칼럼을 잘 읽고 있다는 낯선 사람들의 인사를 받으면 반가웠습니다. 시시때때로 독후감을 전화로, 문자로 전해주신 지인들과도 정이 더 깊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지만 한 해를 보내는 지금이 세상 풍경을 바라보는 창을 닫아야 하는 시간이라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우선 2년 가까이, 그것도 매주 썼으므로 격주라면 4년 가까이 쓴 셈이니 적지 않게 썼습니다. 또한, 새해에는 제 생각의 전달이나 외부 활동을 줄이고 제 자신의 내면을 더 채우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이것이 저의 작은 소망입니다.
그래도 막상 작별의 인사를 전하려 하니, 서운한 생각을 피할 수 없습니다. 김광섭 시인의 시(詩) “저녁에”가 생각납니다. 특히 마지막 연(聯),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와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이것이 독자 여러분에게 전하는 저의 석별의 인사입니다.
‘아무튼, 주말’ 독자 여러분, 새해 더욱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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