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와 스릴러의 성공적인 만남 [정보라의 이 책 환상적이야]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팬데믹이 세계를 덮치고, 개인이 경영하는 소규모 사업체나 영세 기업은 엄청난 자본력과 기술력을 가진 글로벌 기업들에 잠식당한다.
한때 국내에서 자생하여 성장하던 스타트업의 혁신적인 경영자는 다국적 기업의 시장점유율 확대에 위협이 되는 존재로 인식된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편리한 진실’은 고전적인 스릴러 형식을 21세기적으로 재해석한 공상과학(SF) 소설이다. ‘제임스 본드’가 특정 국가 정보부 소속이 아니라 대한민국 벤처 사업가였다면, 악당들이 독립적인 억만장자나 혼자서 미친 과학자가 아니라 질서정연하게 힘을 모아 다국적 기업에 속해 있다면…. 대략 ‘편리한 진실’의 중심 구도가 형성될 것이다.
작품은 ‘한국법인’(한국의 법인이 아니고 회사 이름이다) 대표 납치와 의도를 알 수 없는 수술, 연막탄을 쏘며 진입하는 무장단체의 등장과 주인공이 피를 흘리며 사망하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주인공이 죽었다고? 독자는 혼란에 빠지지만 작가는 자세한 설명을 생략한다. 다음 페이지로 넘기면 주인공이 죽기 몇 달 전으로 돌아가 자동차 추격전이 벌어진다. 부상당해 취약한 상태에 처한 남성 주인공이 아름답고 지적인 여성과 조우해 서로 깊은 감정을 느끼게 된다. 사건은 쉴 새 없이 이어지고 장면 전환도 빠르며 선악의 대립 구도가 분명하다. 거의 모든 장면에 적절한 배경음악이 흐르는데, 클래식 음악부터 20세기 초중반을 뒤흔들었던 대중음악까지 선곡은 매우 다양하다. 첫 장면부터 이 소설은 영상물로 만들기에 최적화된 이야기라는 인상을 준다.
그리고 반전이 있다.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지만 복선은 소설의 도입부부터 여기저기에 풍부하게 깔려 있다.
“통화 정책이나 이자율 관련 정책들에 대해서도 인간들이 결정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인간이 그런 결정을 하도록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것은 인공지능인데 과연 그것이 진정 인간이 결정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어요?”(‘편리한 진실’ 중)
물론 읽고 있을 때는 이런 얘기가 복선인지 잘 모른다. 그런데 등장인물들이 기술윤리나 과학철학에 관련된 무거운 이야기를 꺼내면 그런 숙고가 바로 소설 속 음모나 위협의 실마리와 연결된다. 다른 사건이 일어나서 진지한 이야기가 툭 끊어지는 게 아니다. 대화 속 복선이 사건과 연결되고 사건이 주제와 연결되는 것이다. 작가는 이렇게, 스릴러 장르를 잘 이해하고 장르의 목적에 충실하면서, 동시에 주제 의식을 어디에 어떻게 배치하고 드러내야 하는지 잘 아는 노련함을 보여준다.
어려운 주제를 쉽게 설명하는 것은 능력이다. 어려운 주제와 복잡한 구도를 스릴 넘치는 이야기 속에 짜릿하게 담아내는 것은 진정한 필력이다. 한국형 스릴러라는 장르는 이렇게 뛰어난 작가를 보유하며 성장하고 있다.
정보라 소설가
Copyright © 동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국회의원 ‘코인 거래’ 1256억… 10명은 신고 누락
- ‘1개월 실장’ ‘3개월 장관’ ‘6개월 차관’[사설]
- 尹, 대통령실 종무식서 직원 격려…“새해도 신세 많이 지겠다”
- 이재명-이낙연, 내일 만난다…통합비대위 질문엔 “노력해봐야”
- 한동훈-이재명 첫 만남…韓 “국민위한 정치 공통점” 李 “이태원특별법 협력을”
- 軍 교재에 “독도는 영토분쟁 중”… 어느 나라 국방부인가[사설]
- 일상적으로 할 일을 자주 잊어 버린다?
- 尹, 청문보고서 채택 없이 장관 임명 24명째
- [김순덕의 도발]30년 전 ‘신세대’였던 그대에게, 안녕들 하신거죠?
- 尹, 박근혜 전 대통령과 관저서 오찬…석 달 연속 만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