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감지하면 팽창해서 안정감 주는 조끼… “실버케어로도 확장”[허진석의 ‘톡톡 스타트업’]
꼭 안아주면 불안 진정되는 ‘딥 터치 프레셔’ 효과 활용
가볍게 만들어 오래 착용 가능… 발달장애아 돌보는 업계 ‘입소문’
생체정보 비접촉 감지 기술로… 노인 돌봄 효율성도 높일 계획
그는 누구나 손쉽게 불안을 잠재우기에는 기존 치료 과정에 문제가 있다고 봤다. 대체로 비용이 많이 들고 이용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약물은 가격이 부담스럽고 부작용도 감내해야 한다.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는 주변의 시선 때문에 여전히 꺼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명상은 스스로 혼자 시작하기 어려운 이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무엇보다 일상에서 찾아오는 갑작스러운 불안감을 즉각적으로 관리해 주지는 못했다. 해결하면 사업적 승산이 있다고 봤다. 일상의 불안을 관리해 주며 심리적 안정감을 줄 수 있는 솔루션을 노리게 됐다.
목적이 정해지니 ‘딥 터치 프레셔(Deep Touch Pressure·DTP)’가 눈에 들어 왔다. DTP는 몸 전체에 부드러우면서 단단한 압력을 가하는 것을 말한다. 일종의 압력 치료법이다. 신체에 적절한 압력을 가하면 부교감 신경계를 활성화해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 발달장애를 가진 드라마 속 우영우 변호사가 놀라서 불안해할 때 주변에 있던 사람이 그를 단단하게 붙잡듯이 안아주는 게 DTP 효과를 노린 행동이다. 일반인이라면 호텔에서 묵직한 이불 밑으로 몸을 누일 때 비슷한 평온함을 느껴 봤을 공산이 크다. 상대방과 단단한 포옹을 15초 이상 할 때도 편안한 느낌을 받는다.
돌봄드림은 누군가에게 안겼을 때 느끼는 압력을 재현한 ‘온화한 압력 조끼’로 불안을 잠재운다. 공기가 주입되면 조끼가 부풀어 오르면서 상체를 조여주는 것이 기본 원리다. 돌봄드림은 여기에 비접촉식 생체정보기술과 GPS 기능 등을 담은 스마트기기를 결합해 웨어러블 정신건강관리 조끼를 내년에 상용화한다.
● 발달장애인을 위해 만든 ‘허기(HUGgy)’
돌봄드림은 기존에 발달장애인들의 불안을 달래주던 ‘중량 조끼’에 눈길이 갔다. 중량 조끼는 말 그대로 조끼에 무거운 물건을 넣어 무게가 수 kg이나 나가는 형태였다. 무거워서 오래 사용할 수 없었다. 김 대표는 중량 조끼가 무게로 구현하던 압력을 부풀어 오르는 튜브로 교체했다. 말로는 쉽지만 아무도 만들어 본 적이 없는 ‘신제품’이다 보니 시행착오를 수없이 겪었다. 조끼 안에 들어가는 튜브의 재질, 튜브가 배치되는 부위와 모양 등 튜브를 만들기 위한 금형을 수십 번 뜯어 고쳐야 했다. 이렇게 2020년 나온 압력 조끼 ‘허기(HUGgy)’는 발달장애아를 돌보는 치료사와 교사, 부모들이 알아봐 줬다. 김 대표는 “‘한 줄만 쓰고 딴짓을 하던 아이들이 2쪽이나 되는 분량의 글을 한꺼번에 쓰더라’, ‘잠들기 힘들어하던 아이가 조끼를 입은 상태에서는 편안하게 잠이 들어 너무 좋았다’ 등의 피드백을 받아 보람이 컸다”고 했다. 돌봄드림에 따르면 조끼를 입고 치료 수업을 받은 아이들은 수업 참여도가 28% 증가했다. 또, 일반인을 상대로 한 조사에서는 호르몬 수치가 57%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대병원, 세브란스병원 등 주요 병원과 허기를 이용한 임상시험 및 연구개발도 진행 중이다.
발달장애인에게 브랜드가 알려지면서 매출과 이용자 수가 늘고 있다. SK행복나눔재단과는 기부 프로젝트 협약을 맺었고, 조달청의 ‘벤처나라’에도 등록돼 공공기관의 구매가 수월해졌다.
● 생체정보 감지하는 스마트 조끼 내년 양산
허기는 사람이 손으로 고무 튜브를 눌러 바람을 넣는 수동식이다. 돌봄드림은 여기에 심박수와 호흡수 등을 측정할 수 있는 센서를 단 스마트 조끼를 내년 상반기부터 양산할 계획이다. 스마트 조끼의 시제품은 2022년 미국 소비자가전전시회(CES)에서 혁신상을 수상했다. 착용자의 심박수와 호흡수를 바탕으로 심박 변이도를 계산해 스트레스와 불안 상태에 빠졌다고 판단되면 조끼가 스스로 팽창해 부드러운 압력으로 착용자에게 안정감을 제공한다.
조끼를 입고 있는 것만으로 비접촉식으로 생체 데이터를 수집하는 것이 돌봄드림이 보유한 원천기술이다. 심탄도(BCG·심장의 리듬과 심장박동의 세기)와 호흡으로 인한 진동을 센서가 정확하게 감지하도록 하는 것이 기술이다. 김석현 최고기술책임자는 “몸에서 발생하는 진동으로 심박수와 호흡수를 찾아낸 뒤 사람마다 다른 평균 상태에서 얼마나 벗어났는지에 따라 불안과 스트레스가 판별된다”고 했다. 돌봄드림은 수동식 조끼와 스마트 조끼 등과 관련해 특허 8건을 등록했고, 미국 2건을 포함해 9건을 출원 중이다.
● 실버케어 사업으로도 확장
돌봄드림에는 12명이 근무하고 있다. 김 대표는 KAIST 기술경영학과에서 학사 학위를 받고, KAIST 대학원에서 창업융합전문 석사 학위를 받았다. 올해 포브스가 뽑은 아시아 30세 이하 영향력 있는 리더 30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대학과 대학원 시절부터 창업에 관심이 많았고, 돌봄드림이 두 번째 창업이다.
돌봄드림은 글로벌 판매 네트워크를 구축 중이다. 발달장애인의 불안 관리는 세계 공통의 문제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싱가포르에 현지 법인을 설립했고, 캐나다의 대형 의료기기 납품회사와는 공급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베트남에서는 현지 재단 1곳과 파일럿 테스트를 진행 중이다. 독일, 스위스, 스페인, 덴마크에서는 실증 테스트를 진행 중이다.
돌봄드림은 구독료를 받고 조끼를 보급할 예정이다. 조끼를 통해 심신의 상태를 모니터링해 주고, 비상시에는 119와 연계하는 방안도 구상 중이다. 조끼를 통해 얻어진 데이터와 인공지능을 이용해 비대면 심리상담도 중개한다는 구상이다. 김 대표는 “누구나 정신적 불안이 느껴질 때 정확하고 수월하게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돕는 플랫폼을 만들 것”이라고 했다.
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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