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감지하면 팽창해서 안정감 주는 조끼… “실버케어로도 확장”[허진석의 ‘톡톡 스타트업’]

허진석 기자 2023. 12. 30. 0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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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 완화 조끼로 정신건강관리 시장 개척하는 ‘돌봄드림’
꼭 안아주면 불안 진정되는 ‘딥 터치 프레셔’ 효과 활용
가볍게 만들어 오래 착용 가능… 발달장애아 돌보는 업계 ‘입소문’
생체정보 비접촉 감지 기술로… 노인 돌봄 효율성도 높일 계획
김지훈 돌봄드림 대표이사가 13일 경기 성남시 판교 사무실에서 자사의 불안 완화 조끼인 ‘허기’를 보여주며 작동 원리를 설명하고 있다. 김 대표는 “조끼 안감에 보이는 작은 굴곡들에 튜브가 들어 있고, 공기가 채워지면서 착용자를 부드럽지만 단단하게 안아주는 효과를 낸다”고 했다. 성남=김동주 기자 zoo@donga.com
경기 성남시 판교제2테크노밸리에 서울사무소를 둔 돌봄드림은 발달장애인이나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증상을 겪는 이들의 불안을 진정시키는 데 관심이 많은 스타트업이다. 여기에 더해 수험생이나 노인, 수면장애가 있는 사람 등 일반인을 위한 정신건강 관리로도 시장을 넓히고 있다. 13일 판교 사무실에서 만난 김지훈 대표이사(28)는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8명 중 1명이 불안 장애나 우울증 같은 정신적 어려움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며 “문제는 이 중 60% 이상이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않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누구나 손쉽게 불안을 잠재우기에는 기존 치료 과정에 문제가 있다고 봤다. 대체로 비용이 많이 들고 이용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약물은 가격이 부담스럽고 부작용도 감내해야 한다.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는 주변의 시선 때문에 여전히 꺼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명상은 스스로 혼자 시작하기 어려운 이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무엇보다 일상에서 찾아오는 갑작스러운 불안감을 즉각적으로 관리해 주지는 못했다. 해결하면 사업적 승산이 있다고 봤다. 일상의 불안을 관리해 주며 심리적 안정감을 줄 수 있는 솔루션을 노리게 됐다.

목적이 정해지니 ‘딥 터치 프레셔(Deep Touch Pressure·DTP)’가 눈에 들어 왔다. DTP는 몸 전체에 부드러우면서 단단한 압력을 가하는 것을 말한다. 일종의 압력 치료법이다. 신체에 적절한 압력을 가하면 부교감 신경계를 활성화해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 발달장애를 가진 드라마 속 우영우 변호사가 놀라서 불안해할 때 주변에 있던 사람이 그를 단단하게 붙잡듯이 안아주는 게 DTP 효과를 노린 행동이다. 일반인이라면 호텔에서 묵직한 이불 밑으로 몸을 누일 때 비슷한 평온함을 느껴 봤을 공산이 크다. 상대방과 단단한 포옹을 15초 이상 할 때도 편안한 느낌을 받는다.

돌봄드림은 누군가에게 안겼을 때 느끼는 압력을 재현한 ‘온화한 압력 조끼’로 불안을 잠재운다. 공기가 주입되면 조끼가 부풀어 오르면서 상체를 조여주는 것이 기본 원리다. 돌봄드림은 여기에 비접촉식 생체정보기술과 GPS 기능 등을 담은 스마트기기를 결합해 웨어러블 정신건강관리 조끼를 내년에 상용화한다.

● 발달장애인을 위해 만든 ‘허기(HUGgy)’

검은색 조끼를 착용하기 전에는 과제에 집중하지 못하고 돌아다니던 발달장애 아이(왼쪽 사진)가 조끼 착용 후에는 교사의 지시에 응해 과제에 집중하는 모습. 돌봄드림 제공
2020년 설립된 돌봄드림은 발달장애아의 불안을 잠재우는 데 초점을 맞췄다. 발달장애아를 돌보는 교사나 부모는 아이가 집중을 잘하지 못하고 수시로 불안해하기에 한 명을 돌보는 데도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한다.

돌봄드림은 기존에 발달장애인들의 불안을 달래주던 ‘중량 조끼’에 눈길이 갔다. 중량 조끼는 말 그대로 조끼에 무거운 물건을 넣어 무게가 수 kg이나 나가는 형태였다. 무거워서 오래 사용할 수 없었다. 김 대표는 중량 조끼가 무게로 구현하던 압력을 부풀어 오르는 튜브로 교체했다. 말로는 쉽지만 아무도 만들어 본 적이 없는 ‘신제품’이다 보니 시행착오를 수없이 겪었다. 조끼 안에 들어가는 튜브의 재질, 튜브가 배치되는 부위와 모양 등 튜브를 만들기 위한 금형을 수십 번 뜯어 고쳐야 했다. 이렇게 2020년 나온 압력 조끼 ‘허기(HUGgy)’는 발달장애아를 돌보는 치료사와 교사, 부모들이 알아봐 줬다. 김 대표는 “‘한 줄만 쓰고 딴짓을 하던 아이들이 2쪽이나 되는 분량의 글을 한꺼번에 쓰더라’, ‘잠들기 힘들어하던 아이가 조끼를 입은 상태에서는 편안하게 잠이 들어 너무 좋았다’ 등의 피드백을 받아 보람이 컸다”고 했다. 돌봄드림에 따르면 조끼를 입고 치료 수업을 받은 아이들은 수업 참여도가 28% 증가했다. 또, 일반인을 상대로 한 조사에서는 호르몬 수치가 57%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대병원, 세브란스병원 등 주요 병원과 허기를 이용한 임상시험 및 연구개발도 진행 중이다.

김지훈 대표이사(오른쪽에서 네 번째)와 돌봄드림 임직원들. 이들은 발달장애인을 돌보는 학교와 사립 치료기관을 수없이 드나들었다. 그들의 피드백이 없었으면 불안 완화 조끼도 만들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돌봄드림 제공
허기는 전국 100개 이상의 특수학교와 특수학급, 사립 치료기관 등에서 활용하고 있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의 장애인보조공학기기 연구개발 사업에서도 성공 판정을 받아 발달장애인을 고용한 기업에도 제공되고 있다. 올해 약 7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발달장애인에게 브랜드가 알려지면서 매출과 이용자 수가 늘고 있다. SK행복나눔재단과는 기부 프로젝트 협약을 맺었고, 조달청의 ‘벤처나라’에도 등록돼 공공기관의 구매가 수월해졌다.

● 생체정보 감지하는 스마트 조끼 내년 양산

허기는 사람이 손으로 고무 튜브를 눌러 바람을 넣는 수동식이다. 돌봄드림은 여기에 심박수와 호흡수 등을 측정할 수 있는 센서를 단 스마트 조끼를 내년 상반기부터 양산할 계획이다. 스마트 조끼의 시제품은 2022년 미국 소비자가전전시회(CES)에서 혁신상을 수상했다. 착용자의 심박수와 호흡수를 바탕으로 심박 변이도를 계산해 스트레스와 불안 상태에 빠졌다고 판단되면 조끼가 스스로 팽창해 부드러운 압력으로 착용자에게 안정감을 제공한다.

조끼를 입고 있는 것만으로 비접촉식으로 생체 데이터를 수집하는 것이 돌봄드림이 보유한 원천기술이다. 심탄도(BCG·심장의 리듬과 심장박동의 세기)와 호흡으로 인한 진동을 센서가 정확하게 감지하도록 하는 것이 기술이다. 김석현 최고기술책임자는 “몸에서 발생하는 진동으로 심박수와 호흡수를 찾아낸 뒤 사람마다 다른 평균 상태에서 얼마나 벗어났는지에 따라 불안과 스트레스가 판별된다”고 했다. 돌봄드림은 수동식 조끼와 스마트 조끼 등과 관련해 특허 8건을 등록했고, 미국 2건을 포함해 9건을 출원 중이다.

● 실버케어 사업으로도 확장

돌봄드림은 스마트 조끼를 발판으로 실버케어 사업으로도 확장을 준비 중이다. 요양기관에서 한 명의 관리자가 조끼를 입은 여러 명의 생체 정보를 모니터링하는 것이 가능하도록 한다는 구상이다. 불안과 스트레스에 대한 응급 대응이 가능하고, 다른 센서 등과 결합하면 위급 상황에 기관이 보다 신속하고 정확하게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돌봄드림에는 12명이 근무하고 있다. 김 대표는 KAIST 기술경영학과에서 학사 학위를 받고, KAIST 대학원에서 창업융합전문 석사 학위를 받았다. 올해 포브스가 뽑은 아시아 30세 이하 영향력 있는 리더 30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대학과 대학원 시절부터 창업에 관심이 많았고, 돌봄드림이 두 번째 창업이다.

돌봄드림은 글로벌 판매 네트워크를 구축 중이다. 발달장애인의 불안 관리는 세계 공통의 문제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싱가포르에 현지 법인을 설립했고, 캐나다의 대형 의료기기 납품회사와는 공급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베트남에서는 현지 재단 1곳과 파일럿 테스트를 진행 중이다. 독일, 스위스, 스페인, 덴마크에서는 실증 테스트를 진행 중이다.

돌봄드림은 구독료를 받고 조끼를 보급할 예정이다. 조끼를 통해 심신의 상태를 모니터링해 주고, 비상시에는 119와 연계하는 방안도 구상 중이다. 조끼를 통해 얻어진 데이터와 인공지능을 이용해 비대면 심리상담도 중개한다는 구상이다. 김 대표는 “누구나 정신적 불안이 느껴질 때 정확하고 수월하게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돕는 플랫폼을 만들 것”이라고 했다.

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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