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분에 1명, 쉴 새 없는 환자 행렬…“나 누군지 알아” 주취자 응대 진땀 [대한민국의 새벽을 여는 사람들]
SPECIAL REPORT
지난 27일 오후 11시부터 다음날 오전 7시 사이엔 약 40명에 가까운 응급환자가 왔다 갔다. 특히 오후 11시부터 다음날 오전 2시까지는 산모부터 3개월 아기, 30대 청년층 까지 응급환자가 쉴 새 없이 들어와 20명 가량이 몰렸다. 10분마다 환자 1명을 대응한 셈이다. 구급차에 실려 온 응급환자를 가장 먼저 맞는 응급진료 구역의 6년차 간호사 김지유(가명·29)씨는 “오늘은 그래도 다른 날보다 평이한 편”이라며 “크리스마스 이브엔 두 배였는데, 공휴일엔 환자가 몰려 화장실도 못 간다”고 말했다.
응급진료 구역에서 입원 구역(외상, 응급, 중증)을 결정하면 응급의료진은 진료 후 담당분과를 정해준다. 이날 당직인 응급의학과 20년차 최상천 교수는 감기로 기침이 쉽사리 멈추지 않았다. 최 교수는 “그래도 의사니까 감기 정도는 스스로 케어가 가능하다”며 쓴 웃음을 지었다. 이날 근무한 의료진은 최 교수를 포함해 레지던트 2명, 인턴 1명 총 4명였다. 4년차 레지던트 남재연(가명·29)씨는 “3시간 밖에 못 자고 나왔다”며 “하루에 환자 10명은 담당한다”고 충혈된 눈으로 말했다. 실제 응급의료진의 주당 근무시간은 평균 63시간이다. 주치의 1명이 하루 평균 담당하는 환자 수가 40명 이상인 경우는 26%에 달한다. 같은 근무시간이라도 업무 강도가 높은데다, 생체리듬이 바뀌는 밤엔 피로도가 더 클 수밖에 없다.
가장 고충인 건 야간에 응급환자를 상대하는 일이다. 2개월차 간호사 김다예(25)씨는 “가장 많이 들은 말이 ‘너 나 누군지 알아’”라며 “주취자는 일단 소통이 안 되니까 그게 힘들다”고 말했다. 최상천 교수는 “주취자도 그렇지만 일단 환자 대부분이 갑자기 아파 찾은 곳이다보니 극히 예민한 상태”라며 “일단 신경질부터 내거나, 당장 증상에 공감해주지 못하면 짜증내는 경우도 더러 있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응급상황 속 책임감에 대한 부담도 상당하다. 남재연 레지던트는 “응급의료진은 항상 소송에 대한 리스크를 지고 사는데, 워낙 급박하게 돌아가다보니 최선을 다했는데도 안 좋은 일이 생길 수 있다는 스트레스가 있다”며 “이런 리스크 부담부터 덜어주는 게 우선돼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지유 간호사는 “응급처치에 대한 두려움에 심한 우울감을 앓았던 적이 있다”며 “같은 직군에서 은근 흔한데, 불규칙한 생활습관이 누적된 탓이 큰 거 같다”고 말했다.
오전 4시쯤 됐을까. 잠시 한숨을 돌리고 온 김다예 간호사는 “이때 밥 먹다 체한 적이 있어서 바나나 두 개 먹고 나왔다”며 “퇴근 후엔 바로 자다보니 하루 한 끼 정도 먹는다”고 말했다. 다른 의료진들도 대체로 식사를 안 하거나 간단히 한 경우가 많았다. 최 교수는 “직업병이 하나 생겼는데 너무 빨리 먹는 것”이라며 “언제 응급진료를 볼 지 몰라 서두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정희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응급의료 같은 필수 야간노동은 어떻게 노동 여건을 개선할까부터 고민하는 게 시급하다”며 “노동에 대한 제대로 된 보상도 하지 않으면서 우리가 제대로 된 의료서비스를 받기는 어렵기 때문에,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의료비용이 좀 더 확보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어느새 날이 밝았다. 오전 6시 점차 퇴원하는 환자들도 보인다. 최상천 교수는 “응급실은 ‘고맙다’는 말을 듣기 어렵다”고 말했다. 상황이 워낙 급박하다보니 환자들이 누가 치료했는지 잘 기억을 못하기 때문이다. 최 교수는 “그래도 증상이 호전돼 다음날 아침 퇴원하는 모습을 보면 전쟁같은 하룻밤을 보낸 보람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신수민 기자 shin.sumin@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SUN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