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차와 첫 차 사이 4시간 쓱싹쓱싹…신도림역 우렁각시들 [대한민국의 새벽을 여는 사람들]
SPECIAL REPORT
지난 15일 오전 1시14분, 신도림역 4번 승강장으로 ‘잠자러 오는 차’가 미끄러져 들어왔다. 신도림역의 어제 기준 막차이자 오늘의 첫차가 될 7523호였다. 대기하던 역무원들이 들어가 주로 취객으로 구성된 마지막 승객들을 배웅했다.
“다행이네. 별 탈들 없이 내리시네.” 이병남(65) 서울메트로환경 기동반장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가 말한 ‘별 탈’이란 취객의 방황과 구토, 때로는 방뇨를 일컫는다. 이날의 근무자들은 이미 곤욕을 치렀다. 잠시 거슬러가자. 1시간 전쯤인 0시15분이었다.
“화장실 막힌 거 뚫었어?” “아니, 엄청나. 거기 별의별 것들을 다 넣어놨어요.” “아니, 뭘 넣어 놨길래.” “핫팩이랑, 뭐 가지가지요.”
막차 1시간 전쯤부터 온갖 오물 곤욕
이 반장과 연숙옥(61)씨가 혀를 찼다. 연씨는 신도림역 화장실에 버리고 가는 그 ‘별의별 것’들을 기자에게 열거했다. 그중 팬티와 소주·맥주병은 별의별 것 중에서도 더더욱 별종으로 들렸는데, 연씨는 “일상다반사처럼 남기는 물건들”이라며 “심지어 일주일에 한두번 꼴로 벽에 × 칠하고 가기도 한다”고 말했다.
신도림역에는 쓰레기가 많다. 지난해 75L 쓰레기봉투로 2476개가 나왔다. 18만5000L가 넘는다. 서울 1~4호선 중 쓰레기봉투 2725개가 나온 잠실역에 이어 2위다.
지하철 마지막 열차를 얼마 앞두고 역무실에서 연락이 왔다. 연씨가 급하게 장비를 챙기고 수습에 나섰다. 장비는 고무장갑과 휴지뿐. 곧 ‘잠자러 들어오는’ 지하철이 들어왔다. 승객들이 역을 빠져나갔다. 이 반장을 비롯한 5명의 기동반은 숨을 고른다. 3, 2, 1 카운트다운. 이 반장이 급수 모터를 켠다. 1진이 점자(點字) 블록에 세제를 푼다. 2진이 바닥청소기(일명 돌돌이)를 그 위에 돌린다. 그리고 좍, 다시 좍. 이 반장이 120m에 이르는 호스로 물을 뿌린다. ‘앞밀대’가 큰물을 민다. 축구로 치면 스트라이커다. ‘뒷밀대’는 일부러 처져 앞밀대가 어쩔 수 없이 남긴 작은 물을 민다. 공격형 미드필더쯤 되겠다.
신도림역은 총면적 2만2335㎡의 대형 역사다. 하루 승하차 승객 수가 10만명. 환승객 수까지 합하면 34만 명이다. ‘지옥철’ 악명 속에도 어떤 이들은 틈이 보이면 늦어진 출근 시간을 만회하려 뛴다. 순간 속도로 치면 ‘우사인 볼트(남자 100m 세계기록 9초58 보유자)’가 되고, ‘그리피스 조이너스(여자 100m 세계기록 10초49 보유자)’가 되는 곳이다. 그래서 4번 승강장은 바닥이 깔깔하다. 이 반장은 “애초에 본선(1, 2번) 승강장처럼 반질반질한 대리석 바닥으로 설계했는데, 승객들이 뛰다가 미끄러지지 말라고 판을 뒤집어서 설치했다”고 말했다.
220m에 이르는 4번 승강장은 재공사를 하면서 중간 120m 정도는 두 배로 넓어졌다. 기동반이 그 지점에 도착했을 때, 무슨 정해진 공식처럼 앞밀대가 2명, 뒷밀대가 2명으로 바뀌었다. 다시 축구로 비유하자면, 투톱 시스템으로 바뀐 것이다. 그런데 양수영씨의 밀대질이 짧고 강하다. 배트를 짧게 쥔 교타자처럼. 반면 다른 톱 이순화(59)씨의 밀대질은 길면서도 힘차다. 홈런을 노리는 장타자 같다. 둘은 스윙이 빠르다. 교타자, 장타자로 갈려도 강타자로 불리는 이유다. 장강(長江)의 노도(怒濤)였다. 뒷 물결이 앞 물결을 밀어내기도 했다. 4번 승강장 약 3000㎡가 물질로 흥건해졌다.
험한 일인데 6년 이상 버틴 베테랑들
“환풍기 좀 틀어 주세요.”
이 반장이 역무실에 알렸다. 이날 낮 비가 내렸다. 습도가 높아 바닥 건조가 더뎠다. 영하 10도의 바깥 기온이 쏟아져 내려왔다. 그런데도 기동반의 이마에 땀이 맺혔다.
“비켜요~.” 유형순씨의 지청구에 취재진은 한발씩 물러났다. 밀대에 이어 마포가 나타났다. 덜 마른 바닥을 싹싹 밀었다. 취재진도 마포를 들었다. “어휴, 저거 저거… 일꾼들 왔다고 좋아했는데, 우리 일이 더 생겼네.” 양수영씨가 웃으며 ‘시범’을 보였다.
“힘을 빼야 해요. 그래야 힘이 가죠.”
“일부러라도 웃어야 해요. 그래야 일하죠. 그렇게 해서 살아가는 거죠.” 김유심(57)씨가 마포를 승강장에 비비며 말했다. 이병수 반장은 “정말 절박해야 버틸 수 있는 직업”이라며 “생각보다 험한 일이라 이직률이 높은데, 이 사람들은 6년 이상 버티고 있는 베테랑”이라고 말했다. 연순옥씨는 “청소하는 일을 하찮은 직업이라고 생각하는데, 우리가 깨끗하게 만든 지하철역 승강장과 화장실을 고객들이 기분 좋게 들어갈 것을 생각하면, 자부심이 솟아난다”며 “선한 일이 바로 이런 직업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오전 5시, 이 반장은 역 안을 다시 점검했다. 이들은 이를 ‘순회’라고 표현했다. 청소가 부족한 부분이 있는지, 물기는 다 말랐는지 살펴보는 것. 오전 5시36분. 신도림역에서 자고 있던 어제의 막차이자 오늘의 첫차가 출발한다. 깔끔해지고 뽀송뽀송해진 4번 승강장으로 출근하는 남녀들이 뛰어 내려왔다. 그 ‘볼트와 조이너스’들이 잠든 사이에, 신도림역에는 무슨 일이 있었다. 우렁각시가 왔다 갔나 보다.
김홍준·신수민 기자 rimr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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